12월이 접어들면 기름값이 떨어진다고 해서 기다렸습니다. 12월에 접어들었습니다. 기름값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름집에서 일하는 분들과 기름집을 찾아가 기름 한 통 사 와서 보일러 통에 채울 사람들 마음은 무겁습니다. 어찌어찌 기름을 얻어서 보일러를 돌립니다. 영 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은 날씨이지만, 작은 방에서 옷을 껴입고 웅크리고 있어도 허연 입김이 나옵니다. 한 해 두 해 따뜻해지고 있는 날씨이니, 지난날과 견주면 기름값은 적게 나온다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치솟는 물건값을 대는 일이란 늘 벅찹니다. 그래도 우리들 살아가는 이곳 남녘땅에서는 ‘비싸기는 해도 기름을 장만할’ 수 있고, 보일러를 돌릴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도 혜택 받는 곳은 가스로 집을 덥힐 수 있습니다. 지금쯤, 남녘보다 훨씬 춥고 서늘할 북녘땅 사람들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요. 금강산이나 개성 나들이를 해도 만나거나 부대낄 수 없는 그 북녘사람들 삶은 어떠할까요. 옷밥집 걱정이 없는 잘사는 사람이 아니라, 옷밥집 모두 걱정스러운 못사는 사람들 형편은 어떠할까요.

 지난 월요일, 서울 나들이를 하며 용산역 앞을 지날 때, 장갑 낀 손으로 딸랑딸랑 종을 흔들며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하고 외치는 구세군 자원봉사자들을 보았습니다. 이분들 뒤로는 으리으리하게 올려세운 용산역 새 건물과 번쩍번쩍 불빛이 빛나는 새 전자상가 건물이 버티고 있습니다. 문득, 저 큰 건물 바깥벽에 붙인 ‘장식 전구’ 불을 끄고 전기를 아껴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종로거리에서, 또 어느 번화한 거리에서 ‘성탄절 맞이’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아 켜 놓는 전구불을 줄여서 ‘이 세상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사라지고 모두모두 넉넉히 나누면서 살아갈 때까지 성탄절 맞이를 안 하면서 수수하게 살겠다’고 외치는 기업이나 정부기관이나 교회는 없을까 하는 생각.

 2001년 어느 날, 광화문에 있는 ‘북한자료센터’에서 북녘 어린이들이 쓰는 교과서를 구경한 적 있습니다. 지금은 이때보다 살림이 더욱 나빠졌을 텐데, 북녘 어린이들 교과서는 시커먼 갱지였고 그나마 잘못 넘기면 찢어질까 걱정스러울 판이었습니다. 이런 교과서나마 아이들 앞에 하나씩 돌아갈까요. 1980년대까지는 북녘에서 책을 찍어서 중국 연변으로 보냈다는데, 이제는 원고뭉치를 연변으로 보내어 책을 찍은 뒤 북녘으로 들인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들 남녘나라에서는 공짜신문이 넘치고 어마어마한 광고종이가 버려지며, 헤일 수 없이 많은 종이들이 이면지로도 안 쓰이며 쓰레기가 되는데, 이대로 세월이 더 흘러가면 북녘사람들 문화며 학술이며 교육이며 사회며 어디까지 굴러떨어질까요. 1992년을 마지막으로 더 못 찍고 있는 북녘 국어사전인 《조선말 대사전》입니다. 정치꾼이 만나고 북녘 살림살이 북돋는 공장을 짓기는 하지만, 책을 새로 찍을 수 없는데 ‘남북 문화 주고받기’는 어찌 하지요. 남녘땅에서도 북녘책을 자유로이 찾아보는 꿈을 꾸고 싶은데, 국가보안법을 몰아낸다 해도 손에 쥘 수 있는 북녘책이 남아 있을는지. (4340.1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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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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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농부의 밥상
- 글 : 안혜령
- 사진 : 김성철, 이혜영
- 펴낸곳 : 소나무(2007.2.5.)
- 책값 : 11000원


 

 이 책 하나 30 ― ‘아파트 밥상’을 떠나 ‘농사꾼 밥상’으로
 : 안혜령 씀, 《농부의 밥상》



 〈1〉 나누는 밥


 새벽 일찍 잠에서 깹니다.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드니 새벽 일찍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밤늦게까지 일손을 붙잡는다든지 술 마시거나 논다고 법석을 떤다든지 하면, 마땅히 새벽에 일어나지 못합니다.

 옥상마당으로 나와서 새벽별을 올려다봅니다. 새벽달도 봅니다. 새벽하늘은 아직 어둡습니다. 이 어둠을 뚫고 전철이 지나갑니다. 아, 이 새벽에 훨씬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군요. 전철을 모는 기사가,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


.. 이 푸성귀들은 모두 이 집 텃밭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맘먹고 재배하는 왕고들빼기를 빼면, 나머지는 한 번 씨뿌려 둔 채 굳이 돌보지 않아도 절로 잘 자란다 … 이렇듯 갖가지 푸성귀를 철따라 두루두루 먹으려면 무엇보다 “심기를 골고루” 해야 한다. 식물도 사람처럼 일대기가 있어 맛있는 때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  〈15∼16쪽〉


 잠깐 새벽바람을 쐰 뒤 방으로 들어옵니다. 부엌으로 가서 전기밥솥을 열고 밥 한 숟가락을 뜹니다. 우걱우걱. 며칠 된 밥은 말라비틀어지고 있습니다. 밥을 할 때면 한두 끼니 먹을 만큼만 해야 하는데. 콩과 누런쌀 불리기에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로 자꾸 여러 끼니 먹을 만큼 하다 보니, 며칠 묵히면 이렇게 되고 맙니다.


.. 더 갖기를 원하지도 않거니와, 있는 것 허투루 버리는 일도 없다. 이들이 오기 전 이곳에 살던 동광원 수녀들이 쓰던 걸레를 장금실 씨는 4년을 더 썼고, 찌글찌글한 양은 밥상 하나 물려받은 것을 20년째 탈없이 쓰고 있다 ..  〈20∼21쪽〉


 그제 낮, 이웃한 막걸리집에서 김장을 하신다기에 쭐래쭐래 찾아가서 일손을 조금 거듭니다. 저는 옆에서 사진을 찍고, 옆지기는 팔을 걷어붙이며 배추속 넣기를 합니다. 막걸리집 아주머니와 아저씨뿐 아니라 당신들 자식과 며느리까지 찾아와 해거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허리 아프도록 일을 합니다.

 막걸리집(낮에는 밥집으로만 하는 곳) 손님들 먹일 김치이면서, 당신들도 함께 먹을 김치이기 때문에 허투루 담지 않습니다. 젓갈도 넉넉히, 양념도 넉넉히.


.. 부인이 아쉬워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도구며 연장 뚝딱 만들어내는 그 재미가 공예품 만들어내는 것 못지않으니, 실제로 밖에서는 작품 대접 받는 옛 물건들이 이 집에서는 구석구석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살림살이다 ..  〈41∼44쪽〉


 저녁 나절, 자전거 모임으로 알게 된 아주머니가 놀러옵니다. 선물이라면서 큰 반찬통을 하나 내밉니다. 반찬통에는 잡채가 가득 담겼습니다. 어젯밤 한 시부터 부지런히 무치셨다고. 아이고, 선물이라 해도 이렇게나 많이. 맛을 보니 우리 입에 찰싹 달라붙도록 싱겁습니다. 잔치집에서 으레 먹는 잡채처럼 달거나 짜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잡채 한 젓가락에 김치 한 점에 밥 한 숟가락이면 속이 든든하겠어요.

 지지난주, 동네에 자리하고 있는 ‘지역 공동체 예술’ 운동을 하는 분들이 갓김치를 한 접시 선물해 주셨습니다. 당신들로서는 처음으로 손수 심은 푸성귀를 손수 거두어서 손수 해 본 김치였다는데, 손수 거두고 무치고 해서 그런지 아주 맛있다고 합니다. 저는 벌건 김치는 손을 못 대지만, 옆지기는 맛있다고 이야기합니다.


.. 또 하나, 죽전산 이 골짜기가 이삼 년 안으로 사라지는 것도 근심스러운 일이다. 이미 마을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효문공업단지’라는 것이 드디어 이 골짜기까지 확장해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삼 년 안에 이 댁은 근 삼십 년 만에 다시 이삿짐을 싸야 할 형편이다. 집이야 새로 구하면 될 터이나, 이십 년 동안 정성을 들인 논밭이 사라질 것이 마음이 아프다. 땅을 새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거니와, 가뜩이나 몸이 아프고 보면, 그야말로 “그놈의 농사” 이참에 그만두어야지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서운함을 이기지 못해 “농사 조만치라도 짓는 데 가야 짚공예도 하지” 생각도 한다 ..  〈58쪽〉


 하루 내 김치 담그느라 애쓴 옆지기도 달래고, 또 도서관으로 놀러온 자전거 모임 사람들하고 길게 이야기도 나누려고 신포시장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닭집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닭집 아저씨가 가재를 덤 안주로 건넵니다. 닭집 아저씨는 ‘우리가 시키지 않은’ 안주를, 그것도 ‘차림판에 없는’ 안주를 슬그머니 한 접시 내밀어 주시곤 합니다. 요리 솜씨 좋은 아저씨는 늘 웃으면서 칼질을 합니다. 오징어데침을 부탁하면 당신 가게 옆에 있는 물고기집에 가서 싱싱한 놈으로 사 와서 그 자리에서 손질해서 데쳐 줍니다. 저잣거리에 자리한 술집이니 이렇게 할 수 있겠지요.





 〈2〉 밥과 아파트


 그제, 도서관에 놀러온 한 분이 귤을 한 상자 자전거 짐받이에 묶어서 가지고 오셨습니다. 짧지 않은 거리를 가볍지 않은 귤상자를 매달고 오시다니.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귤을 까서 먹습니다. 냠냠짭짭 하다가 문득, 우리가 철따라 먹는 귤이며 능금이며 배며 딸기며 땅감이며 수박이며 참외며 복숭아며 살구며를,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거두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요즈음은 철을 따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열매들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나는 열매만으로도 우리 나라 사람들 배를 채울 만큼 될까요?

 인터넷 찾아보기를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은 25%쯤이라는군요. 쌀을 빼면 5%가 안 된다고 합니다. 해마다 떨어졌으니, 앞으로는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올라가지 않으리라 봅니다. 농사꾼이 되려는 사람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시골사람도 도시로만 나오고, 도시사람이 시골로 찾아가 농사꾼이 되려고도 하지 않는 한편, 도시에서 텃밭농사라도 짓는 사람은 너무 드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들은 감자며 양파며 파며 무며 배추며 호박이며 오이며 고추며 부추며 버섯이며 시금치며 얼갈이며 철없이 사서 먹고 있습니다. 집에서 밥을 하지 않고 바깥밥을 사먹는다고 해도, 밥집에서도 어디에선가 푸성귀와 곡식을 사 와서 할 테지요. 회사를 다니는 분들이 도시락을 싸 오지 않아서, 집에서 먹는 ‘쌀 부피(쌀 소비량)’가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밖에서 사먹는 ‘쌀 부피’는 적지 않아요. 어쩌면, 밖에서 사먹는 ‘쌀 부피’가 더 많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나라 농사꾼들이 거두어들이고 있는 쌀만으로도 우리 나라 도시사람들 밥그릇을 댈 수 있을까요. 그나마 ‘쌀 한 가지’만 놓고 보았을 때.


.. 몸이 안 좋거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할 때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음식 해 본 사람은 누구라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니, 그이는 나아가 식구들 몸과 마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할 때면 늘 밝은 마음을 가진다 ..  〈77쪽〉


 인터넷으로 ‘식량자급률’ 숫자를 살펴보다가, 이 나라 신문 매체 가운데 한 곳도 빠짐없이 “낮은 식량자급률 걱정”과 “식량안보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도 봅니다. 그런데, 낮은 식량자급률과 식량안보를 걱정하는 모든 신문 매체가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외치지는 않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뿐 아니라 ‘쌀시장 개방’ 문제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다른 나라와 맺는 협정뿐 아니라, 나라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막개발을 놓고도 생각할 일입니다. 지금 온 나라는 ‘아파트 새로 짓기’가 엄청나게 물결치고 있습니다. ‘고속도로 새로 깔기’ 또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인천에서 도시엑스포를 하고, 2012년에는 여수에서 또다른 엑스포를 한다지요. 2014년에는 인천에서 아시아경기대회를 한답니다. 행정수도를 충청도로 옮긴다면서, 충청도 논밭을 시멘트로 갈아엎고 새로운 공공기관 건물과 공무원들 깃들 아파트를 올려세울 계획이 나와 있습니다. 인천에서는 도시엑스포니 아시아경기대회니 하면서, ‘지은 지 몇 해 안 되는 아파트와 몇 가지 공공시설’ 있는 자리를 빼고 모두 쓸어없앤 뒤 새로운 아파트로 올려세우는 정책을 안상수 시장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엑스포니 운동경기 세계대회니 하는 것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 시골과 산골까지도 아파트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논밭을 가리지 않습니다. 시멘트집은 강둑과 바닷가를 가리지 않습니다.


.. 산 끼고 바다 끼어 물산이 풍부한 지역인데, 안주인 최정화 씨는 “먹는 데 그렇게 신경 안 쓴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걸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간혹 손님들이 사 오는 고기를 맛보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생선 좀 사다 먹는 일도 있지만, “밭에서 나는 것도 다 못 먹는데, 고기까지 먹는다는 것은 없는 사람한테 부끄러운 일”이라 “배추, 고추,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오케이”라고 한다 ..  〈84∼85쪽〉


 한쪽에서는 ‘식량주권이 사라진다’고 입으로 외치고 손으로 글을 쓰는 우리들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식량주권을 지킬 논밭을 아파트로 바꾸려’고 몸으로 움직이고 머리로 돈벌이 셈을 하는 우리들입니다.


.. 옷을 서로 나눠 입고, 그 옷이 다 낡고 해지도록 외출복에서 평상복 또는 아동복, 작업복, 기름 닦는 걸레로 재활용되니, 소비가 미덕인 시대 정신에는 역행하는 것일지 모르나, 이름뿐인 생태주의보다 삶의 내용이 훨씬 알차다 ..  〈116쪽〉


 《즐거운 불편》(달팽이,2004)이라는 책을 쓴 일본 신문기자 ‘후쿠오카 켄세이’ 님은, 소비사회에서 아무 생각 없이 ‘많은 돈을 벌어서 많은 돈을 쓰고 많은 기계문명을 누리고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자기 몸과 마음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가 돌아보고자 ‘불편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하나씩 몸으로 옮겼습니다. 이분이 맨 처음 몸으로 옮긴 일은 ‘자전거 타기’이고, 맨 마지막 몸으로 옮긴 일은 ‘농사짓기’입니다. 우리로 치면, 서울에 살고 서울에 있는 큰 신문사를 다니는 사람인데,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기만이 아니라 농사짓기까지 해냅니다. 마지막 ‘즐거운 불편’을 이루어내면서 우리들한테 한 마디 합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하나씩 이루어 갈수록 즐거웠다’고, ‘무턱대고 목표에 이르려고 할 때면 나나 식구들이나 힘들었지만, 식구들과 함께 목표에 이르려고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그야말로 이런 즐거운 불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마지막까지 이루어 가는 동안 ‘불편’이 떨어져 나가서 ‘즐거운 삶’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3〉 학교와 아파트


 국민학교 적 동무가 숭의야구장 건너편에서 체육사를 합니다. 다음해에 다섯 살이 되는 딸내미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딸내미를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데, 동네에 마땅히 보낼 만한 곳이 없답니다. 녀석과 제가 나온 국민학교, 또 녀석네 어머님이 1회 졸업을 한 국민학교에 부설유치원이 있어서 그곳을 알아보니, ‘학교 선생님네 아이들만 받아요’ 한답니다. 답동성당을 끼고 있는 이름난 유치원은 집하고 가깝기는 하지만, 워낙 이름난 곳이라 먼 데에서 찾아와 줄서서 기다리는 곳이니 엄두가 안 납니다. 어렵사리 알아본 곳은 주안에 자리한 곳으로, 버스로 데려다준다고 하지만, 집에서 유치원까지 40분 거리. 내 동무 이야기라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모든 젊은 부부네 일이라고 느낍니다.


.. 공동체 회원이라고 해서 늘 마음이 하나일 수는 없다. 특히 돈이 되니까 유기농하겠다고 하는 이들을 대할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예컨대 강순희 씨는 “아직 미비한 것이 많다”지만 제 집에 없거나 모자라는 식품은 물론이고 일상용품까지 몽땅 한살림에서 구입해 쓴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 짐작되는데, 그이가 이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내 곡식은 비싸게 팔아먹겠다 하면서 남의 것은 비싸다고 안 먹는” 것이 결코 더불어 사는 자세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독거리면서 같이 가야” 된다는 마음이 너글너글하다 ..  〈151쪽〉


 인천 중구와 동구는 오래된 동네입니다. 개발업자들 말을 빌면 ‘구 도심’입니다. 동네사람들 말을 빌면 ‘오래된 삶터’입니다. 학교장과 공무원들이 보기에는 ‘땅 팔고 아파트 많은 곳으로 옮겨 가면 학교 장사가 잘될’ 듯하여, 초중고등학교 가리지 않고 하나둘 ‘아파트 새로 많이 올려세운 곳’으로 옮기는 곳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 동네에 오래도록 깃들고 있던 작은 집을 허물고 30층짜리, 50층짜리 아파트를 올려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우고들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자꾸만 다른 구로 옮겨 버리면서 이 동네에 아파트를 50층짜리로 새로 올려세운다고 할 때, 이 아파트에 와서 살 사람은 ‘아이가 없어야’겠어요. 아이가 있으면 유치원조차 보낼 수 없으니까요.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자꾸만 옮겨가니까요. 학교는 또 나중 문제라서, 그때가 되면 서울 강남 어디메에서 일어났듯이, ‘상고를 헐고 인문고로 바꾼다’는 소리, ‘서민들 작은 집을 쓸어내고 학교로 바꾼다’는 소리를 내놓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 김치를 담든 된장을 담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성”이다 … 담배며 고기보다 더 나쁜 것이 가공식품이라고 생각한다. 정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농약과 방부제, 온갖 화학조미료가 듬뿍 든 가공식품은 다른 무엇보다도 “피를 탁하게 하기” 때문이다 ..  〈174쪽〉


 제 삶터인 인천만 동네 쉼터라 할 수 있는 공원이 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일산 같은 곳에는 호수공원이 있고 분당 같은 곳은 강줄기를 따라서 공원이 마련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이런 데 말고, 바로 집 앞에 마련된 쉼터, 차소리와 차방귀 없이 느긋하게 쉴 수 있는 한편,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놀 수 있는 빈터는 얼마나 될까요. 아파트 놀이터는 사라지고, 아파트 주차장만 엄청나게 커진 오늘날,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또 어른들은 무슨 재미를 누릴까요. 집안에 들여놓은 ‘최신식 전자기기’들로? 인터넷으로? 풀 HD TV로? 널따란 아파트 집구석에 꾸며놓는 놀이기구나 책꽂이로?

 새로 짓는 아파트들 목숨이 기껏해야 스무 해나 서른 해입니다. 이 새로 지은 아파트들은 하나같이 ‘아토피 피부병’에 걸리기 좋은 집들입니다. ‘새집병’이 생길밖에 없는 아파트들인데, 이런 새 아파트들 값이 장난이 아니옵니다. 이런 집들에서 겨우 숨붙여 살 만하게 될 때면, ‘자, 이제 재개발합시다! 재개발하면 돈 돼요!’ 하고 외치고들 있습니다. 건축업자들이야 ‘돈 돼요! 돈!’ 하고 외친다지만, 이런 아파트에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돈이 된대요! 돈이!’ 하면서 얼싸안고 있습니다.


.. “숨통이 트인 삶”을 살게 되면서, 그는 돈은 벌지 못했지만 그 대신 자연 안에서 누리는 자유로운 삶이라는 더 큰 선물을 얻었으니 ..  〈203쪽〉

 





 〈4〉 《농부의 밥상》이라는 책


 《농부의 밥상》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농사꾼들이 즐겨먹는, 아니 날마다 먹는 밥상을 죽 돌아본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농사꾼들은, 남다른 뜻이 있어서 남다른 일을 하는 분들인데, 이분들이 아닌 여느 농사꾼들 밥상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덧붙여, 농사꾼이 아니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농사꾼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있는 분들 밥상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요.


.. 어렸을 때 입맛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푸짐이ㆍ꽃님이ㆍ아루ㆍ보리, 이름도 어여쁜 네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는 제 기억대로 만든 음식들을 상에 올린다 ..  〈224쪽〉


 우리가 차리는 밥상에 놓인 밥그릇과 반찬그릇은 바로 우리들이 먹으려고 차려 놓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먹이려고 차려 놓습니다. 우리 어버이들을 먹이려고 차려 놓습니다. 때때로 이웃사람들한테 나누어 주기도 하니, 나와 내 식구와 내 둘레사람들 모두 먹을 수 있는 밥과 반찬입니다.


.. 보약이 어디 산나물뿐이겠는가. 진수성찬이라는 것과는 무관하나, 밭에서 길러 제철에 먹는 싱싱한 채소들도 여태껏 병원 신세 져 본 적 없이 건강한 이 집 식구들의 보약일 게다 ..  〈89쪽〉


 우리들이 날마다 하는 일은 얼마나 우리 삶을 가꾸고 있을까요. 우리 아닌 사람들,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 집 식구들, 우리 동무들, 우리 이웃들한테도 도움이 되고 보람도 되며 즐거움도 나눌 만한 일이 되고 있을까요.

 우리들이 날마다 즐기는 놀이는 얼마나 우리 삶에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고 있을까요. 우리 아닌 사람들,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 집 식구들, 우리 동무들, 우리 이웃들한테도 웃음과 눈물이 나며 재미있어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즐길 만한 놀이가 되고 있을까요. (4340.1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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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은 ‘이명박’을 좋아해?
 ― 서울교대 학생들 설문받기를 보면서


 〈1〉 삶과 헌책방 문화


 지난 10월 첫머리에 서울교대학보를 엮는 기자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책과 도서관과 헌책방과 우리 말과 삶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조곤조곤 들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10월 29일치(397호) 서울교대학보에 헌책방 문화 이야기가 한쪽을 거의 통틀어서 실립니다.


.. 요즘 학생들, 학교신문 참 안 보죠? 토론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주고받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 이루어지면 읽기가 힘들어요. 그렇게 안 읽다 보면 네 해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중요한 걸 놓치고 말지요. 그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매체가 있는데 자기 스스로 놓치고 있어요. 저도 예전에는 책을 읽을 때, 안 좋아하는 책은 안 봤지만 지금은 안 좋아하는 책들도 더듬어 봐요. 내가 안 좋아한다고 해서 나한테 도움이 되는 얘기가 없는 건 아니니까요. 책읽기는 자기 삶을 바꾸는 일이거든요. 책읽기는 책에 담긴 줄거리를 자기만 뽑아먹는 게 아니에요. 그 책을 쓴 사람하고 그 쓴 원고를 책으로 묶은 사람하고 묶여져 나온 책을 파는 책방사람들하고 팔린 책이 다시 버려진 다음에 주워모으는 사람, 그 주워모은 책을 다시 되파는 사람, 이 모두와 같이 이루어져요. 이게 ‘헌책방 문화’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문화예요 .. <학보에 실린 제 말>


 서울교대라는 곳을 2000년 봄인가 여름에 한 번 가 본 적 있습니다. 그때 그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서 어떤 책이 꽂혔고 어떤 책을 학생들이 즐겨 빌리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학보 기자님한테 ‘요즘 서울교대 도서관은 어떻습니까?’ 하고 여쭈어 봅니다. 찬찬히 이야기를 들어 보는데, 2000년 그때하고 거의 달라진 낌새는 없고, 외려 나빠졌을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여덟 해라는 시간이 흘렀다면 그만큼 새로 나오는 좋은 책(교육 밭뿐 아니라 여러 갈래를 두루 헤아려)이 그만큼 쌓였을 텐데, 그만큼 쌓였을 좋은 책을 갖추자면 학교도서관은 크기를 넓혀야 합니다. 또한, 새로 나오는 책뿐 아니라 판이 끊어져 사라진 자료와 책도 모아야 하니, 학교도서관은 해마다 조금씩 살림을 키워야 해요. 그렇다면, 서울교대 학생들은 어디에서 책을 읽을까요? 아니, 책을 읽기나 할까요?


.. 수십 년 동안 제대로 된 독자를 만나지 못해서 읽히지 못한 책이 있어요. 헌책방에 가면 내가 첫 번째 독자가 되는 그런 책이 꽤 있어요. 그런 책들도 있기 때문에 헌책방은 새책방 구실도 하고 있어요. 그러면 도서관에서 책을 버리면 이 책이 어디로 갈까요? 헌책방으로 가겠지요. 아마 수천만 수억 권이 될 겁니다. 여러 공공단체에서 자료로 갖고 있는 책들이 있어요. 자료를 새로 사야 하는데 우리 나라는 자료실을 잘 안 넓히거든요. 그 넘치는 책들을 버릴 수밖에 없어요. 빌려가지 않는 순위와 오래된 것, 그게 버리는 기준이 돼요. 안 빌려보는 책이라고 해서 그 책이 버려져야 하는 책은 아니잖아요. 이를테면 백과사전이나 국어사전은 사서 보거나 도서관에 가서 보고 말지, 빌려가서 집에서 보지 않을 테네 대여율은 0이겠지요. 그 무거운 책을 어떻게 빌려가겠습니까. 그러면 그 책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헌책방밖에 없어요. 그런 대목에서 헌책방은 새책방 구실도 하고 도서관 구실도 하고 있어요 ..


 서울교대학보를 엮는 기자님은 ‘학교를 마친 뒤 교사로 일하지는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교대를 나오고 교사가 되지 않겠다니? 아주 뜻밖인 생각이라, 그러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여쭈니, 아직 갈피를 잡지 않아서 찾아보고 있답니다.

 그렇지요. 교대를 나오는 바로 그때부터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고, 또한 교대를 나온다고 모두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아요. 길찾기는 지금 곧바로 할 수 있으나, 시간을 두고 두루두루 우리 세상을 부대끼고 구석구석 삶터를 두 발로 밟아 나가면서 몸으로 느껴 차근차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면서 하나같이 100점만 맞아야 하지 않듯이, 90점도 좋고 70점도 좋고 30점도 좋고 0점도 좋듯이, 우리 삶에 100점이란 어디에 있겠습니까.


.. 헌책방 문화라고 따로 규격이 있지 않고, 헌책방을 여는 그 동네에 어떤 문화가 이루어져 있는 가운데 그 둘레에서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따라 문화가 달라져요. 동네사람들이 동네 새책방에서 사는 책이 동네 헌책방으로 들어가게 되거든요. 학생들한테 어떤 헌책방을 따로 추천할 수는 없고, 무엇보다도 먼저 가까운 헌책방에 가면 좋아요. 집이나 학교에서 가까운 곳으로. 동네 헌책방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잖아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느낀 다음에야 동네 헌책방에 있는 책을 느낄 수 있고, 다른 헌책방에 가서도 비로소 느낄 수 있어요. 그 다음은 스스로 다 찾을 수 있어요. 처음에는 한두 시간쯤 헌책방에 머물며 책을 살피셔요. 눈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그렇게 책을 만지고 차례를 살피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헌책방 문화에 빠져 있을 겁니다 ..


 우리들이 사는 곳은 지구라는 별이고, 아시아라는 땅덩이이고,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이며, 한겨레라는 피붙이이고, 무슨 시고 도고 하여 나뉘어진 곳에서 어느 동네나 어느 마을 어느 집입니다. 나와 함께 내 이웃이 있고, 내 이웃들한테도 다른 이웃이 있습니다. 모두 하나하나 이어져 있어요. 책읽기라고 한다면, 나부터 해서 내 식구며 동무며 이웃을 느끼고, 내 식구와 동무와 이웃한테 또다른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고 식구가 되는 사람도 함께 느끼는 길잇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일본 간다 헌책방거리만 이야기하면서 우리네 헌책방 문화를 북돋울 수 없습니다. 미국이 어떻고 유럽이 어떻고 떠벌이면서 우리 삶터나 사회나 교육이나 문화나 정치를 가꿀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형편이 어떠한지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시나브로 가꿀 수 있어요.



 〈2〉 이명박을 좋아하는 서울교대 학생들



 엊그제, 서울교대학교 11월 26일치(398호)가 도서관으로 왔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제17대 대통령선거, 당신의 선택은?〉이라는 기획기사가 보입니다.  11월 19일과 20일, 이틀에 걸쳐 350 사람한테 설문받기를 한 결과를 싣습니다. 설문받기를 한 사람들 가운데 84.8%는 이번 대통령선거에 선거를 하겠다고 대답을 하는 한편, 자기가 밀어주고 싶은 후보를 다음처럼 밝힙니다.


 ┌ 없다 : 37.5
 ├ 이명박 : 28
 ├ 문국현 / 이회창 : 11.6
 ├ 정동영 7.2
 ├ 권영길 3.2
 ├ 이인제 0.8
 └ 그밖에(박근혜) 1.7


 다음 설문으로, “대통령 후보를 볼 때 중점을 두는 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 정책 : 42.4
 ├ 청렴성(도덕성) : 19.2
 ├ 업적 : 10.2
 ├ 정치 성향 : 13.5
 ├ 추진력 : 12.1
 └ 그밖에(인간성) : 2.5


 이렇게 나옵니다. 다섯 번째로 물은 말은 “자기가 밀어주는 후보를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입니다.


 ┌ 하나도 모른다 : 11.5
 ├ 모른다 : 24.5
 ├ 보통이다 : 42.1
 ├ 알고 있다 : 18.5
 └ 아주 잘 안다 : 3




 설문받기에서 자기가 대답하는 “보통이다”는 얼마나 알고 있다는 뜻일까요. 안다는 뜻일까요 모른다는 뜻일까요.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식을 조금 들었다는 뜻일까요. 조금 번거로울 수 있으나, 설문받기를 하면서, 자기가 밀어주는 후보가 내놓은 공약을 ‘시험 문제’처럼 내면서 제대로 아는가 모르는가를 따져 보면 어떨까 싶어요. 이렇게 한다면, ‘진짜로 아는지 어설피 아는지 잘못 아는지 하나도 모르는지’가 뚜렷이 드러날 테니까요.

 학생들이 밝힌 ‘자기 깜냥’을 그대로 믿는다고 하면서 생각해 봅니다. ‘모른다’가 “36%”이고, ‘안다’는 “21.5%”입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내가 밀어주는 대통령 후보에서 가장 무게를 두어 살피는 대목’은 “정책(42.4%)”이라고 합니다. 정작 그 후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해 왔고 어떤 정책을 내놓고 있는지 모르면서, 그 후보가 얼마나 “깨끗한지(청렴-도덕)”, 그리고 “무슨 업적이 있는”지, “추진력은 얼마나 올바르고 알맞게” 보여주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마지막 물음으로 “학생들 자기 정치 성향이 어떠한가?”를 묻습니다.


 ┌ 진보 : 3.7
 ├ 중도개혁 : 22.4
 ├ 중도 : 44.3
 ├ 중도보수 : 21
 └ 보수 : 8


 이 설문받기를 놓고, 서울교대 사회과교육과 김용신 교수는, “학생들이 지지하는 후보들을 보면 진보 진형이라 할 수 있는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의 지지도는 합쳐도 18%를 상회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는 우리 대학 학생들의 정치적 성향이 중도보다는 중도보수 성향에 가까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개혁’이며 무엇이 ‘중도’이고 무엇이 ‘보수’일까요. 학생들은 자기 정치 성향이 어떠하다고 느끼기에 ‘진보-중도-보수’라는 말을 쓸까요.


 〈3〉 책 안 읽는 유권자와 대통령후보


 그제부터였나, 제가 사는 동네에도 대통령후보 걸개천이 내걸렸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에 살면서 대통령후보들이 내놓고 있는 정책이나 공약이 무엇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신문을 펴고 텔레비전을 켜도 후보들 정책검증이나 공약 꼼꼼한 풀이가 담기지 않습니다. 무슨무슨 의혹, 무슨무슨 통합, 무슨무슨 지지율, 무슨무슨 방송토론 문제, …… 알맹이를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제가 조금 바지런히 움직여서 대통령후보들 인터넷방에 하나하나 들어가 구석구석 헤집으면서 공약과 정책을 살필 수 있겠지요. 그래, 저는 이렇게 해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분들은 어쩌지요? 집에 컴퓨터 없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인터넷은커녕 자판 두들기기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쩌지요? 움직이기 힘든 어르신들을 부축해서 투표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투표하러 가기 앞서 후보들 정책과 공약을 차근차근 들려주면서 스스로 헤아리도록 이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서울교대 학생들 또한(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새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 1번으로 ‘경제 정책’을 꼽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경제란 무엇인가?’를 밝혀 말하지 않습니다. 연봉 많이 받을 수 있는 일자리 얻으면 경제가 살까요? 경기부양책을 쓰면 경제가 살까요? 아파트 많이 짓고 여름ㆍ겨울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 아시안게임, 문화축제 들을 끊임없이 끌여들여서 새 건물 짓고 홍보활동 펴면 나라살림이 나아질까요? 무엇보다도, 우리한테는 “얼마쯤 되는 돈이 있어야 먹고살 만할 뿐 아니라 즐겁게 살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 살림은 ‘어느 만큼이 되어야 한다’는 금긋기부터 하고 나서 ‘경제를 살리든’ 무엇을 하든 해야 하지 않을는지요. 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넉넉한 집 평수가 얼마쯤인지부터 금긋기를 해 놓고 나서 아파트 재개발을 하든 옛동네 간직하기를 하든 해야 하지 않을는지요.

 더 많은 돈, 더 많은 옷, 더 큰 집, 더 비싼 밥과 술, 더 크고 빠른 차, 더 좋은 전화기와 사진기에 몸이 달아 있느라 아이들을 학원에 줄줄이 보내고 있으니 살림살이 구멍나고, 이 아이들을 대학교에다가 유학도 보내느라 그동안 쓴 돈이 엄청나게 많으니, 더욱 높고 큰 회사에 취직시키려고들 하고, 걱정없는 쇠밥그릇 일자리를 얻게 하고 싶어서 고시공부를 시키고 있지 않은지요.

 자기 삶을 가꿀 수 있도록,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한 번 주어진 자기 목숨을 고이 여기면서 추슬러 나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참된 가르침과 배움은 어디로 밀려나 있을까요. 책 한 권 읽지 않고 있는, 아니 자기 마음밭을 살찌울 책 하나 손수 책방 나들이를 하며 애써 고른 뒤 온몸으로 곰삭이며 읽어내고 있지 않는 우리들 유권자이기에,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람들도 마음밭 일구는 책 하나 가슴에 안으면서 이 나라 사람들을 살뜰히 굽어살피지 못하는 입에 발린 ‘서민’ 소리와 구름보다 높이 붕뜬 정책들과 살갗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들만 쏟아내고 있지 않은지요.

 “책이 모든 것”이 아니라, “책은 우리 삶”으로 느끼는 가슴이 없기에, 자기가 걸어갈 길이 ‘돈-이름-힘’이 아닌 ‘사랑-믿음-나눔’이 되고 있지 못하기에, 헛발린 이야기와 소식들이 넘쳐나기만 하고, 이 넘쳐나는 물결에 휩쓸리며 정치에 등돌리고 투표에 손놓고 자기가 하는 일마저도 자기 자신을 가다듬으며 살려주는 일이 아니라, 한낱 돈뭉치만 쥐어들려는 데로 흘려가 버리지는 않는지.

 머지않아 초등학교 교사가 될 서울교대 학생들은, 앞으로 자기가 가르칠 이 나라 아이들한테 ‘너희들이 가장 무게를 두어 생각할 대목은 이런 거야’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가르칠까 궁금합니다. (4340.1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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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없다만
 ― 대통령 후보가 쏟아내는 말을 새겨듣는 귀를



 책을 보면서 참으로 여러 가지를 느끼지만, 참말로 여러 가지를 못 느끼기도 합니다. 백 번 듣느니 한 번 가는 편이 낫다는 금강산 구경이듯, 백 번 읽고 생각하느니 한 번 해 보느니만 못한 책읽기입니다. 그래서 책 한 권 읽지 않았어도 올바르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요. 머리에는 지식을 집어넣지 않았으나 몸으로는 ‘그것이 지식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즐겁게 늘 하며 살거든요.

 책이나 글을 쓰는 사람을 그이가 써낸 책과 글로만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만나 보고 겪어 보고 부대끼고 일을 함께 해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나든 겪든 부대끼든 일을 함께 하든 그 사람이 지닌 온갖 모습 가운데 몇 가지만 느끼거나 알 수 있지, 모든 모습을 다 알거나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남 이야기를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예부터 내려오지요.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남 이야기’는 그 사람이 지닌 온갖 모습 가운데 몇 줌 안 되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걸림돌이 있지요. 우리는 글을 쓰거나 책을 낸 사람을 모두 다 만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나라밖 사람도 몹시 많지요. 이런 사람들은 어쩌지요? 그네들이 남겼다고 하는 책 한두 권, 또는 글 몇 조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임을 헤아려야 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모진 고문을 받고 억눌려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픈 말을 다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이가 고문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먹고살 형편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모릅니다. 추운 곳에서 벌벌 떨면서 겨우 글 한 줄 썼는지, 배불리 먹고 놀면서 대충 몇 글자 휘갈겼는지, 남한테 들은 이야기를 마치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듯 써제겼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을 몸소 만나고 부대끼는 가운데 그 사람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을 몸소 만나고 부대끼면서 그이를 더 잘 안다고 한다면, 그이를 만나 보지 않고도 잘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될 수 있어야 참다운 앎이라고 봅니다. 만나 보고 나서 ‘아, 이랬구나’ 한다면, 그이를 만나지 않고 글이나 책만 보았을 때에는 ‘잘못 알거나 비뚤어지게 생각하거나 어떤 굽거나 치우친 생각으로 그이를 바라보았다’는 이야기지요. 더구나 ‘글이나 책을 보니 참 형편없는 사람이군’ 하고 생각해 버리면서, 그 사람을 몸소 만나려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그 사람’은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자기를 엉뚱하게 바라보고, 잘못 아는 한편, 비틀어진 이야기로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한테 시달릴 수 있습니다. 또, 우리 현실을 보면 이런 잘못되고 비틀리고 엉뚱한 말이 대단히 많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차분하게, 느긋하게 숨 좀 돌려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즐기려고 태어났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며 즐거움을 손수 맛보고, 이웃하는 이들한테도 즐거움을 선사하고 나누면서 서로 오순도순 살아가려고 태어났습니다. 책 한 권 읽든 글 한 줄 읽든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리면서 자신이 참답게 살아갈 길을 헤아리면 참으로 좋겠지요. 자기가 오늘 손에 쥐고 읽는 책을 펴낸 사람 됨됨이가 이러하느냐 저러하느냐를 따지기 앞서, 그이가 온삶을 바쳐서 일구어 낸 책 하나에 어떤 알맹이가 담겼는지, 어떤 줄거리가 살아숨쉬는지 느낄 수 있으면 더욱 좋고요.

 그러니 우리들은 꽤나 힘써야 합니다. 마음을 찬찬히 기울여 주어야 합니다. 눈길을 넓히고 눈높이를 알맞게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비록 몸소 만날 수 없이 멀리 떨어진 사람이라 해도, 마음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글을 곰곰히 되새기고 곱씹으면서 읽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 글이든, 자기가 느끼기에 얻을 만하고 배울 만한 구석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무개가 속임수를 쓰는지 뒤에 덮어놓거나 가리거나 숨기는 무엇이 있는가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만나도 참모습을 모르게 되기 일쑤입니다. 수많은 책을 냈어도 자기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고요. 어떤 속셈과 이익에 따라서 글장난을 치는지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글을 쓰건 책을 내건, 그이들 삶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뭇사람뿐 아니라 그이 스스로한테도 더없이 아름답고 즐거운지도 헤아려 볼 수 있으면 한결 좋습니다.

 글만 읽어서, 책만 보면서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해서 ‘제대로 알려고 애쓰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느슨하게 풀어 놓아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애쓰며 살잖아요. 제대로 받아들이기 벅찰 수 있기에 늘 곁에 놓고 되씹고 곱씹잖아요. 몸소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깊이 살피며 힘껏 돌아보아야 좋습니다. 글로만 보든 몸소 얼굴 마주하며 만나게 되든, 어느 때나 한결같이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기 잣대를 세우고, 둘레에서 퍼뜨리는 질낮은 허튼소리나 헛소문에 휘둘리지 않아야 좋습니다. 귀는 열되 파리나 모기가 꾀어서는 안 되며, 입을 열되 가래나 침을 마구 뱉아서는 안 됩니다.

 새 대통령 뽑는 날을 한 달쯤 앞두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숱한 말이 쏟아지고 있고, 숱한 사건과 소식이 넘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말잔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든지, 아예 귀를 틀어막든지, 자기가 보고픈 모습만 보려고 한다면, 새 대통령이 뽑히고 나서 또 다섯 해 동안 지긋지긋하게 이맛살 찌푸리며 살아야 할 뿐 아니라, 갖은 나쁜법이 되살아난다든지 국가보안법이 다시 또아리를 튼다든지 한미자유무역협정보다 끔찍한 일들이 터져나온다든지 하는 소용돌이에 끊임없이 휘둘릴 수 있습니다. (4338.11.12.흙/4340.11.29.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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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입니다. 이 글을 속으로 잘 삭이면서 받아들여 주실 분들이 꼭 한 분은 있으리라 믿으면서, 알라딘 서재에도 함께 걸쳐 놓습니다.






 
 엊저녁, 책상셈틀을 끄고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섭니다. 먼저, 집 앞에 있는 헌책방에 들러서 책을 잠깐 구경하고 귤 세 알 얻어먹습니다. 이곳 인천 배다리를 가로지르는 ‘너비 50미터 길이 2.41킬로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밀어붙이려고 하는 종합건설본부장이 아침에 찾아와서는, ‘내년 초에 공사를 재개할 것입니다’ 하고 말하기에, 헌책방 아주머니께서 ‘여기는 인천이라고요,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곳이 아니라고요!’ 하고 외쳤답니다. 인천시 공무원과 개발업체 사람들은, 골목집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이곳을 책상머리에 앉아 길그림으로만 보면서, ‘시 재정에 도움이 안 되는 곳이라 시 재정에 도움이 될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올려세워야 한다’는 자기들 생각을 대놓고 지역신문에 말하고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나옵니다. 예닐곱 해 앞서까지만 해도 극장이 있던 터 옆으로 난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일제강점기 때 제국주의자들이 인천 항구를 거쳐 서울로 가던, 그리고 조선땅에서 빼앗은 물건을 일본으로 실어나를 때 지나다니던 쇠뿔고개길(우각로)을 걷습니다. 조금씩 살이 빠지는 보름달을 올려다봅니다. 차 다니는 길로 잠깐 나왔다가 손수레도 들어설 수 없는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창영동 골목길을 빠져나온 다음, 숭의동 달동네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이달 첫머리, 숭의동 골목집 할배 할매가 감을 따던 나무 앞에 섭니다. 까치밥 네 알 남았습니다. 뚱뚱한 사람은 지나가기 힘들 비좁은 골목을 사뿐사뿐 빠져나가고, 꽤나 비알이 져서 고양이도 굴러떨어질지 모를 길을 지나갑니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 굴다리 밑으로 나오니 야구장 앞. 예순 해 가까이 된 이 ‘숭의 야구장’을 2008년 1월에 허문다는 인천시장 지시사항을 들어 보면, 야구장을 허물고 축구전용구장을 짓는다는데, 여기에 쓰인다는 돈은 10조에 가깝습니다. 야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 야구장 건너편에 있는 체육사로 찾아갑니다. 국민학교 적 동무가 장사를 하는 집. 어제 징허게 술을 퍼붓느라 오늘 아침 이불에서 벗어나기 싫었다는 녀석은 하루 내 갤갤대다가 이제 일 마치고 들어갈 때가 되었다고. “연말이면 죽어야 돼. 업체 사람들하고 주말마다 술 마셔야 하니까. 화요일까지 죽어 있다가 목요일에나 정신을 차려. 그나저나 너, 두꺼운 책 낸 거 있다며? 나중에 그것 좀 갖다 줘 봐라, 보게. 아니다, 내가 너네 집에 갈게.”

 찬바람 부는 골목으로 다시 나와서 걷습니다. 야구장 둘레에 있는 닭집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열네 살》이라는 만화책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고, 옆지기는 《동 키호테의 탈출》이라는 프랑스 그림쟁이 데생책을 보면서 콜라를 마십니다. 여러모로 칭찬과 추천을 받는 책들이지만, 책방 나들이를 해서 두 손으로 집어들어 펼쳐 넘기며 우리 마음에 드는가 안 드는가를 헤아리기 앞서까지는 참말로 읽을 만한지 그냥 지나쳐도 좋을 만한지 알 수 없던 책들을 안주 삼아서 술 한잔을 마십니다. (4340.11.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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