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실

 


  봄날 골목마실에는 겨우내 말라죽은 풀포기 사이에 비죽비죽 산뜻한 빛으로 솟아난 꽃을 구경한다. 여름날 골목마실에는 꽃이 진 봄풀 짙푸른 잎사귀 빛나는 사이사이 드문드문 환한 여름꽃으로 맑은 골목길 누린다. 가을날 골목마실에는 느즈막하게 꽃을 피우기도 하는 꽃이랑, 하나둘 잎사귀 마르면서 누렇게 물드는 포근한 빛 맞아들인다. 겨울날 골목마실에는 쓸쓸한 꽃그릇에 배추포기 얹히거나 눈이불 내려앉은 하얀 이야기 듣는다. 철마다 다르고 달마다 다르면서, 날마다 다르고 아침과 낮과 저녁마다 다른 골목마실 누린다. 아이와 함께 골목을 거닐면서 우리 이웃들 삶을 찬찬히 느낀다. 4346.6.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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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책읽기

 


  애기똥풀을 나물로 먹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란다. 애기똥풀과 감자잎만큼은 섣불리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으레 들었기 때문이다. 약풀로는 쓰되 나물로는 안 먹는다고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리 식구들 먹는 풀 가운데 오늘날 여느 사람들 잘 안 먹는 풀 꽤 많다. 우리 식구들은 스스로 먹고 씹은 뒤 나물로 삼으니, 이 풀이 어떤 이름인지 그닥 살피지 않는다. 오직 내 몸을 헤아려 풀을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애기똥풀을 나물로 먹는 사람들도 이녁 몸을 헤아려 나물로 받아들였겠지.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애기똥풀은 잘 못 본다. 잘 안 보인다. 서울이나 인천에서는 애기똥풀 흔히 보았고, 충청북도 멧골자락에서도 애기똥풀은 쉽게 보았다. 온 나라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했는데, 왜 고흥에서는 잘 찾아보기 어려울까. 아직 우리 식구들 걸어다닌 곳이 그리 안 넓기 때문일까. 고흥에서 한창 애기똥풀 돋아 꽃이 필 무렵 논둑이랑 밭둑 모조리 갈거나 태우니, 찾아보기 어려울까. 4346.6.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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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06-08 15:48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 애기똥풀이 아니지 싶어요,
제가 정확한 명칭을 모르고 있는거 같아요. 그 품종 중에서 무엇인거 같은데...
다른 분들도 헛갈려서 확 드시면 안 되니, 페이퍼를 좀 고쳐야겠어요. 새똥풀인듯.

찾아봐야지....

파란놀 2013-06-09 00:06   좋아요 0 | URL
백초효소라 할 때에는
그야말로 온갖 풀을 골고루 섞어요.
섞이면 센 기운도 여린 기운하고 녹아들어
사람 몸에 좋은 기운이 돼요.

그리고, 염소나 소나 토끼나 노루나 사슴은
딱히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답니다.
모두 다 몸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고흥에서는 애기똥풀이
좀 보기 드문 풀이더라구요 @.@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형네 집 떠나 걷는다. 아이들은 바깥으로 나와서 뛰고 달리며 소리칠 수 있으니 즐겁다. 땀 흠씬 흘린다. 아이들한테 물을 먹인다. 동인천역에 닿는다. 전철을 탄다. 전철은 바람이 차다. 이윽고 영등포역에 닿는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물을 먹이며 쉬를 누인다. 기차에 오른다. 기차는 덥네. 시외버스는 되게 춥던데. 전철도 참 춥던데. 영등포역에서 순천역까지 달리는 기차에서 안내방송 자꾸 나온다. 냉방이 시원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자꾸 되풀이한다.


  땀이 흐르는 기차에서 생각한다. 숲을 밀어 아파트 늘리고, 멧자락 깎아 찻길 자꾸 만드니, 봄도 여름도 더울밖에 없다. 이런 날씨에 사람들은 부채 아닌 선풍기와 에어컨을 켠다. 나무그늘이나 숲바람 없으니, 석유와 우라늄 태워 전기를 빚고는 냉방기를 끝없이 돌리면서 더위를 식힐 뿐이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다시 겨울에도, 도시에서는 냉방기와 난방기를 돌릴 전기를 뽑느라, 또 전기를 뽑으려고 석유와 석탄과 우라늄 캐내느라 지구별을 갉아먹는다. 지구별 갉아먹을 적마다 내 살과 뼈와 마음 갉아먹는 줄 느끼지 못한다.


  더운 여름날 어찌해야 하는가? 전기 걱정만 하면서 발전소를 또 짓고 새로 짓자고 외쳐야 할까? 전기를 아껴쓰자고 홍보하고 광고하면 되는가?


  길은 오직 하나이다. 숲을 되살려야 한다. 풀밭과 흙땅을 되찾아야 한다. 석유도 우라늄도 전기도 없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누리는 삶을 생각해야 한다. 4346.6.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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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자전거를 말하다
김병만.최제남 지음 / 바이클로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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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5

 


즐겁게 자전거 탑니다
― 달인, 자전거를 말하다
 김병만·최제남 지음
 바이클로지 펴냄,2011.6.5./15900원

 


  자전거로 달리는 즐거움을 누린 사람은 자전거를 즐겁게 탑니다. 자전거로 달리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사람은 자전거를 좀처럼 타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걷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두 다리로 기쁘게 걷습니다. 두 다리로 걷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사람은 좀처럼 두 다리로 나들이를 다니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몰아 돌아다니는 재미를 누린 사람은 자동차를 싱싱 몰아 어디로든 다녀요. 이와 마찬가지인데, 자동차를 몰며 재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굳이 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


.. 매니저를 두고 사서 고생이라는 주변 말들은, 자전거로 자동차를 앞서는 희열을 떠올리며 가볍게 무시한다. 녹화를 위해 여의도까지 나는 자전거, 매니저는 자동차로 경주를 하면 내가 먼저 도착하기가 일쑤다. 꽉 막힌 도로에 갇힌 매니저는 내가 중간에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리라 의심하지만, 자전거로 25분이면 충분하다 ..  (19쪽)


  나는 2009년에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 펴냄)라는 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2009년에 내놓은 이 책에 담은 글은 2006∼2007년 사이에 자전거마실 다니며 썼습니다. 묵은 글을 엮었다 할 수 있는데, 예전에는 자전거마실 다니면서도 막상 ‘자전거로 마실 다니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어요. 2006년에 접어들어 비로소 ‘자전거로 다니는 이야기’를 썼어요. 왜냐하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 퍽 많고, 자전거모임 꽤 많은데, 정작 ‘자전거로 누리는 즐거움’이라든지 ‘자전거로 달리는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안 보였어요. 아니, 아예 안 보였다 할 수 있어요. 자전거꾼도 자전거모임도 온통 ‘자전거 업그레이드’하고 ‘자전거 여행’하고 ‘자전거 정비’ 이야기만 맴돌았어요.


  내 자전거 이야기책 펴낸 출판사에서는 2004년에 《즐거운 불편》이라는 책을 앞서 내놓았어요. 일본 어느 신문기자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바꾼 이야기를 담은 책이 《즐거운 불편》이에요. 이 책을 쓴 일본 신문기자는 모든 삶을 ‘즐겁게’ 맞아들여 누리는데, 둘레에서는 모두 이녁을 ‘굳이 불편하게 살려 한다’고 바라본대서, 책이름을 이렇게 붙였다고 해요.


  《즐거운 불편》을 쓴 일본 신문기자는, 맨 처음에는 ‘자전거 출퇴근’이었지만, 하나씩 이녁 삶을 바꾸면서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어요. 나중에는 식구들 먹을거리를 텃밭농사로 길러 보자고 생각하고, 아예 논농사까지 생각하며 참말, 모내기도 하고 가을걷이도 스스로 합니다. 신문기자로 바쁜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텃밭을 일구느냐 궁금해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뜻을 세우고 꿈을 키우면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자전거 출퇴근’만 뜻을 세워서 할 만한 일이 아니라,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해서 가장 정갈하고 좋은 삶 일구겠다는 뜻을 스스로 세워서 할 만한 일이에요.


  곧,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 누리는 사람이라면, 자전거에서 그치지는 않으리라 느꼈어요. 자전거를 타면서 교통과 환경과 도시를 다시 생각합니다. 교통과 환경과 도시를 다시 생각하면서, 내 삶과 일과 이웃을 다시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가를 다시 생각하고, 내가 참으로 사랑하며 누릴 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요.


  ‘자전거 출퇴근’을 하더라도, 생각과 삶은 자전거에서 그치지 않아요. 생각은 곳곳으로 갈래를 뻗어요. 그런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분들이 쓰는 자전거 이야기책은 너무 틀에 박혀요. 새로운 생각이나 넓어진 마음이나 깊어진 사랑을 좀처럼 담지 못해요.


.. 대부분의 자출족은 자전거는 타지만 정작 자전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 쉽사리 버려지는 자전거 때문에 커다란 환경 문제가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관리 소홀로 버려지는 자전거가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얘기다 ..  (127, 248쪽)


  김병만·최제남 님이 쓴 《달인, 자전거를 말하다》(바이클로지,201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책 겉에 ‘개그장인 김병만이 직접 말하는 자전거, 그리고 나’라는 글월 적힙니다. 연예인이면서 자전거로 일터를 오간다는 김병만 님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김병만이 말하는 자전거 정비와 수칙’ 이야기는 있지만, ‘나(김병만)와 자전거’라 할 만한 이야기는 없다고 느낍니다. 248쪽에 걸친 책인데, 김병만 님이 생각하는 자전거라든지, 김병만 님이 바라는 자전거 문화라든지, 김병만 님이 바라는 자전거 정책이라든지, 김병남 님이 스스로 자전거를 즐기거나 누리는 이야기는 8쪽쯤 될까 싶고, 240쪽에 걸친 이야기는 ‘자전거 정비와 수칙’과 얽힌 자료와 정보입니다.


.. 유럽을 갔을 때였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세계적인 역사 유적지나 박물관이 아니라 거리에서 자유롭고 당당한 자전거였다 … (지하철역) 자전거 거치대와 빈약한 햇빛 가림막 정도로만 설치되어 있어서 아쉽다. 지금처럼 사방이 뻥 뚫린 형태는 비가 많은 우리 나라 실정에 맞지 않다. 비가 내리면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때문에 형식적인 전시물 같은 인상이다 ..  (20, 33쪽)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많은데, 막상 사진을 즐기는 이야기를 쓰는 분이 매우 드뭅니다. 사진을 더 예쁘게 찍거나 잘 찍도록 꾀하는 길 다루는 책만 많습니다. 사진기 다루는 수칙에서 벗어나는 사진책이 아주 적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 많지만, 정작 자전거를 즐기는 이야기를 쓰는 분은 왜 이리 드물까요. 자전거를 더 멋스럽게 타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지만, ‘자전거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책이 몽땅 자전거를 정비하는 길이나 더 잘 타는 길만 다룬다면, 굳이 새로운 자전거책 쓰거나 내놓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자전거를 즐깁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 다른 자전거로 하루하루 기쁘게 웃고 달립니다. 기쁜 웃음과 즐거운 땀방울 그득 서린 ‘자전거를 사랑하는 이야기’와 ‘자전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올 두 올 적바림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6.6.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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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의 <자전거와 함께 살기>, 마무리 글에 이런 말을 하셨지요`?
망가지지 않은 딱 하나, 삼천리 R-7을 처남에게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신 이야기.
'자전거를 어떻게 사랑하며 함께 살까?'하는 꿈을 조금씩 이루게 해 준 자전거였기에,
비록 좀 헐기는 했어도 기꺼이 이 녀석을 어린 처남에게 선물하신.

그때는 벼리가 기저귀를 차고 있던 때였는데
이제는 날마다, 동생과 숲과 나무와 꽃과 그림과 글씨를 쓰고 그림책을 보며
나비처럼 새처럼 춤추며 즐겁게 놀고 있네요.~*^^*

파란놀 2013-06-08 14:39   좋아요 0 | URL
늘 좋은 빛을 보며
서로 좋은 생각
누린다면...

참 아름답겠지요...
 

[시로 읽는 책 5] 마음에 걸린 일

 


  언제나 모든 일은 마음에 걸린 일이기에
  마음을 어느 만큼 어떻게 쓰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좋은 하늘과 맑은 바람 즐거이 누려요.

 


  마음을 기울이면 아무리 시끄러운 곳에서도 멧새와 개구리와 풀벌레와 매미와 제비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어요.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고즈넉한 숲에 깃들어도 숲노래를 한 가지조차 알아채지 못해요. 마음을 기울이니, 내 둘레 살가운 이웃들 사랑스러운 꿈을 느껴요. 마음을 못 기울이니, 내 옆지기 생각이나 뜻이나 느낌을 하나도 알아채지 않아요. 마음을 기울이니까 어느 책을 읽더라도 가슴이 넉넉하게 벅차올라요. 마음을 안 기울이니까 책은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가슴이 외려 오그라들거나 쪼그라들어요. 4346.6.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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