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시 거리나무 책읽기

 


  논밭이거나 들이거나 멧골이던 곳을 갈아엎어 새도시로 만든다. 새도시가 되면, 이제껏 자라던 풀과 나무를 몽땅 베어 없앤다. 땅을 고르게 펴고, 시멘트기둥을 박은 뒤, 아파트를 죽죽 올린다. 아파트가 서면 건물 사이사이 자동차 다닐 찻길을 닦는다. 찻길까지 모두 닦고 전봇대를 다 박으면, 바야흐로 찻길에 맞추어 나무를 사다가 심는다.


  새도시에는 으레 벚나무를 심는다. 이 나라 이 땅에도 벚나무는 자랐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벚나무는 ‘일본사람 좋아한다’ 해서 한동안 멀리하더니, 어느새 ‘벚꽃구경’이나 ‘벚꽃놀이’를 도시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찻길 옆에 벚나무를 차곡차곡 심는다.


  그런데, 버찌씨를 심어 아주 어릴 적부터 지켜보는 벚나무는 아니다. 제법 자라서 곧 꽃을 피울 만한 큰나무를 옮겨심는다. 도시사람은 씨앗 한 톨에서 나무로 자라는 줄 지켜볼 틈이 없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빨리빨리 꽃을 보거나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한두 해만에 뚝딱 하고 새도시가 서듯, ‘나무를 심었’으면 곧바로 꽃구경이나 꽃놀이를 해야 하는 줄 여긴다.


  이럭저럭 커다란 나무를 옮겨심은 만큼, 이 나무들은 잘 자란다. 머잖아 나뭇줄기가 전깃줄을 건드릴 테고, 가로등 키를 넘으리라. 이때, 도시 공무원은 어떻게 하려나. 나뭇줄기 뭉텅뭉텅 베려나. 나뭇가지 샅샅이 자르려나.


  도시계획을 짜면서 전깃줄과 전봇대를 어떻게 하고, 나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제대로 살피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느낀다. 나무 몇 그루쯤 돈으로 다시 사서 심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는구나 싶다. 왜 그럴까. 왜 이토록 나무를 모르며, 나무를 아낄 줄 모르는데다가, 나무를 사랑하지 않을까. 대학교 졸업장에다가 대학원 학위에다가 외국 유학까지 갖추었다 하더라도, 막상 풀 한 포기 어떻게 나고, 나무 한 그루 사람살이에 어떻게 이웃이 되는가를 느낀 적 없기 때문이 아닐까. 어릴 적부터 풀씨나 나무씨 한 톨 심은 적 없는데다가, ‘밥’이란 바로 ‘풀열매(‘벼’라고 하는 풀이 맺는 열매)’인 줄 느끼지 않으면서, 영양소로서 배를 채우기만 한 탓이 아닐까.


  도시사람은 나무그늘을 누리지 않는다. 높은 건물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그늘처럼 여긴다. 도시사람은 나무그늘을 바라지 않는다. 건물에 깃들면 에어컨 빵빵하니, 나무그늘도 나무바람도 쐬지 않는다. 도시사람은 나무그늘이 어떤 노래 들려주는지 깨닫지 않는다. 나무 밑에 선다 하더라도 찻길마다 자동차 그득한 나머지, 나뭇잎 살랑이며 들려주는 노래에다가, 나무와 풀숲에 깃드는 풀벌레가 베푸는 노랫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4346.9.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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