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대전에서 나오는
알뜰살뜰 잡지 <월간토마토>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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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1
부산이웃을 다달이 만나면서 ‘산복도로’라는 일본말씨를 어떻게 풀어내면 새길을 열 만할까 하고 한참 돌아보았다. 이 이름 하나를 놓고서 열 해째 씨름하던 엊그제 문득 ‘가마메’라는 땅이름에서 귀띔을 얻는다. 고장마다 고장말에서 실마리를 얻고, 고을마다 고을말에서 수수께끼를 찾는다.
가맛길
우리나라 ‘부산’을 우리말로는 ‘가마메·가마뫼’라고 한다. 이 이름에 깃드는 ‘가마’는 ‘가마솥’일 텐데, 가마솥 생김새는 고스란히 멧갓·멧자락이다. 가마메(부산)에는 다른 고을에는 드문 멧길이 있으니, 이 멧길을 일본말씨로 ‘산복도로(山腹道路)’라 하는데, 굳이 일본말을 쓸 일은 없다. ‘가마메’라는 이름을 그대로 살려서 ‘가맛길’이나 ‘가맛재’라 할 만하다. ‘가맛마루’나 ‘가맛고개’라 해도 어울린다. 여러 고을에 있는 멧길은 그냥 ‘멧길’이라 해도 되고, ‘언덕길·언덕마루’나 ‘잿마루·재빼기’나 ‘고갯길·고갯마루’라 할 수 있다.
가맛길 (가마 + ㅅ + 길) : 메·언덕이나 높은 데를 넘어서 다니는 길. 가마솥을 보면 뚜껑이 메·언덕·재·고개를 닮았다고 여길 만하기에, 가마처럼 솟거나 높은 데를 넘는다고 여길 만한 길을 가리키는 이름. (= 가맛고개·가맛재·가맛마루·고개·고갯길·고갯마루·고개앓이·멧길·멧비탈길·묏길·묏마실·비탈·비탈길·비알·비알길·언덕·언덕땅·언덕마루·언덕바지·언덕배기·오르막·오르막길·재·잿길·잿마루·재빼기. ← 구릉丘陵, 구릉지, 산길山-, 산복山腹, 산복도로山腹道路, 산마루山-, 영嶺, -령嶺, -치峙, -현峴, 경사傾斜, 경사면, 고지高地, 고지대, 산山, 성城)
넉줄고
우리나라에서 짓지 않은 살림이기에 우리말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쓰거나 다루거나 누린다면, 이제는 우리 살림으로 여겨 우리 나름대로 알맞게 이름을 붙일 만하다. 누가 활을 쥐고서 줄에 슥슥 그어 가락을 타는 모습을 지켜본 일고여덟 살 아이가 “나도 저거 켜 보고 싶어!” 하고 외칠 적에 문득 생각한다. 일고여덟 살 아이한테는 우리가 새로 지은 이름을 들려주든, 이웃나라에서 지은 이름을 들려주든 매한가지이다. 두 이름을 다 알려주어도 즐겁다. 모름지기 모든 이름은 손수 살림을 지은 사람들이 아이들한테 물려줄 사랑을 헤아리면서 지었다. 이웃나라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니, 넉 줄을 켜는 ‘고’를 떠올린다. 우리한테 ‘거문고’가 있으니. 또는 활을 쓴다는 뜻으로 ‘활고·활가락’이나 ‘가락활’을 떠올려 본다.
넉줄고 (넉 + 줄 + 고) : 줄을 넷 대어 활로 슥슥 그으면서 소리를 내는 살림. 가운데를 잘록하게 넣고 길둥근 꼴로 나무를 짜서 짓는다. 깊고 넓고 높게 여러 소리를 낼 수 있다. (= 가락활·활가락·활고. ← 바이올린violin, 제금提琴, 사현금四絃琴)
오늘눈
바로 여기에 있는 이날이 ‘오늘’이다. 지나간 날은 ‘어제’이고, 다가올 날은 ‘모레’이다. 우리는 어느 날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눈길이 다르다. 오늘 이곳에서 바라보는 ‘오늘눈’이라면, 지나간 날에 지나간 그곳에서 바라보려는 ‘어제눈’이며, 앞으로 맞이할 새날을 어림하는 ‘모레눈’이다.
오늘눈 (오늘 + 눈) : 오늘이라는 눈. 오늘 보는 눈. 오늘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바라보는 마음·길·삶·넋·모습·자리. 바로 여기에서 둘레를 느끼고 보면서 생각하는 마음·길·삶·넋·모습·자리. (= 오늘길·오늘보기·오늘하루·오늘날. ← 현재의 방향, 현재의 관점, 현재의 정책, 현재, 지금, 현세대, 현대, 현대사회, 지금의 시대, 현시기, 현시대, 현시점, 현실, 현세現世, 현실세계, 현실감각, 당대, 현재진행, 근대近代, 근래, 근자)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