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도서관 - 도서관에서 보내는 일주일 날마다 시리즈
강원임 지음 / 싱긋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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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5.25.

인문책시렁 434


《날마다, 도서관》

 강원임

 싱긋

 2025.4.12.



  우리나라에 태어난 ‘책숲’은 ‘우리’가 누릴 곳이지 않았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총칼로 쳐들어오면서, ‘그들(총칼을 쥔 이웃나라 사람들)’이 이곳에서 누리려는 책터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선 ‘배움숲’도 우리가 누릴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총칼로 짓밟으면서, ‘그들(총칼을 휘두르는 이웃나라 사람들)’이 이녁 아이를 보내어 가르치는 배움터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나름대로 책숲과 배움숲을 누리고 나누고 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즐길 터전으로 삼되, 이러한 곳을 가리키는 이름은 여태 ‘그들말(일본제국주의·군국주의 용어)’이라는 굴레에서 맴돌아요. 1945해 뒤로 이럭저럭 여든 해쯤 흘렀으니 이제는 그냥그냥 써도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여든 해나 흘렀으니 이제는 슬기롭고 참하게 우리말로 새롭게 이름을 붙이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도서관》은 집 가까이 있는 여러 책숲을 즐겁게 드나들면서 보거나 듣거나 겪거나 배운 바를 단출히 풀어냅니다. 곰곰이 보면, 서울이나 서울곁이나 큰고장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책숲도 배움숲도 넉넉하며 느긋이 누립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책숲도 배움숲도 드물거나 멀어요.


  저는 진작부터 “우리집 책숲”을 꾸렸습니다. 인천에서 나고자라는 동안에 다닐 만한 책숲이 없기도 했고, 2010해에 인천을 떠나서 전남 고흥에 깃들 무렵에도 “집에서 걸어갈 만한 곳”에 책숲이 없었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모로 보면, 예부터 사람들 스스로 보금자리를 ‘보금숲·배움숲·일숲·놀이숲·노래숲’으로 삼았습니다. 언제나 보금자리부터 모든 길을 여는 첫자리요,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터전으로 일구었어요.


  누구나 집 가까이 걸어서 드나들 만한 책숲이 있으면, 이러한 나라는 아름길을 가리라 봅니다. 다만 하나 더 헤아려야 하는데, 책숲은 책을 안 가려야 합니다. 책숲은 ‘높책(추천도서·권장도서)’을 안 두어야 합니다. 책숲은 모든 갈래를 품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목소리를 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왼길과 오른길과 가운길을 고르게 품어야 책숲입니다. 배움숲도 마찬가지예요. 왼목소리와 오른목소리와 가운목소리가 고르게 어울리면서 함께살기라는 길을 밝힐 적에 비로소 ‘숲’입니다.


  책을 사고파는 집이기에 ‘책집’입니다. 책으로 배우고 익히며 나누는 곳이기에 ‘책숲’입니다. 보금자리를 책숲으로 가꾸면 ‘책마루숲’입니다. 그들말(일본제국주의·군국주의 용어)을 털어내자는 뜻도 있을 테지만, 이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을 언제 어디에서나 숲으로 마주할 적에 스스로 눈뜨고 깨어나게 마련입니다. 나무 한 그루 못 심는 곳이라면 ‘집’이 아니라 ‘돈터(부동산)’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쉰 해뿐 아니라 두온해(200년)를 보듬어서 아이가 물려받을 만한 곳이어야 ‘집’입니다. 빌려읽는 사람이 적대서 내팽개치는 데는 책숲이 아니라 ‘대여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대여점 언저리를 맴도는 도서관’입니다. 고루눈도 두루눈도 가운눈도 아니기에 ‘책숲으로 가닿지 못한 대여점’이기도 합니다. ‘백화점 문화센터 흉내’를 너무 내느라 막상 ‘왜 굳이 종이책을 건사하는 터전’으로 삼는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책숲일꾼과 책숲지기라면, 사람들이 빌려읽지 않는 책을 살펴서 ‘책글(감상문·소개글)’을 써서 알리는 노릇을 해야 맞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왼눈박이나 오른눈박이가 아니라 ‘두눈박이’라는 길을 천천히 거닐면서 ‘온눈사람’으로 피어날 길을 ‘숲에서 온 종이에 이야기를 담은 꾸러미인 책’으로 나누는 길을 펴야 맞습니다.


  책숲마실을 다니는 분이라면, 책집마실도 나란히 하면서 꾸준히 ‘책장만’을 할 수 있기를 바라요. ‘좋아하는 책을 사읽기’가 아닌 ‘새롭게 배우며 스스로 온눈을 뜨는 길로 북돋우는 길잡이책을 사읽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ㅍㄹ


나는 근처에 앉아도 괜찮을 이용자인가? 사실 나는 내가 피해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한다. (18쪽)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을 전멸 위기에서 구하려고 애썼지만 또 몇 년 뒤에도 학생들이 빌려보지 않는다면 그 책들은 또다시 폐기 대상 도서로 분류될 것이다. (23쪽)


이성으로만 해결하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분석하고 사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끝없는 애씀. 거기에는 일말의 사랑도 없었다는 사실. (41쪽)


방과 후에는 거의 매일 서고에 올라갔다. 늘 냉전중인 엄마아빠, 대화 상대가 안 되는 어린 동생들이 있는 집 대신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64쪽)


80대 가까이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나에게 다가와 강의 잘 들었다며 인사했다. “많이 배웠어요.” (96쪽)


온갖 것을 숫자로 판단하는 세상으로부터 도서관은 저항하려고 애쓴다. 몇몇 작은 서점만 해도 많이 팔린 책 순위를 올린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순위대로 책 구매를 한다. 한번 매겨진 순위는 잘 바뀌지 않는다. (159쪽)


+


《날마다, 도서관》(강원임, 싱긋, 2025)


나는 전국 도서관을 다니는 도서관 덕후는 아니다

→ 나는 온나라 책숲을 다니는 책숲바보는 아니다

→ 나는 온나라 책숲을 다니는 책숲순이는 아니다

→ 나는 온나라 책숲을 다니는 책숲벌레는 아니다

4쪽


서울 끝자락과 경기도 초입에 살아 양쪽 도서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 서울 끝자락과 경기도 어귀에 살아 두 책숲을 모두 다닐 수 있다

→ 서울 끝자락과 경기도 입새에 살아 두 책숲을 모두 누린다

8쪽


도돌이표 일상이 시작되는 월요일

→ 도돌이꽃으로 여는 달날

→ 도돌이길로 가는 달날

15쪽


휴관일을 잊고 갔다가 셔터가 내려진 도서관 앞에서

→ 닫는날을 잊고 갔다가 덧닫이를 내린 책숲 앞에서

→ 쉬는날을 잊고 갔다가 철커덕 닫힌 책숲 앞에서

15쪽


또 연체하는 죄를 저지르겠지만

→ 또 늦어 잘못하겠지만

→ 또 미루며 잘못하겠지만

29쪽


모두를 품는 환대의 공간으로 도서관을 꼽는 나는 이런 글들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 나는 책숲이 모두를 품는 곳으로 꼽기에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 나는 책숲이 모두를 반긴다고 여기기에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51쪽


필담을 주고받으며 킥킥대고 있다

→ 글씨를 주고받으며 킥킥댄다

→ 붓말을 주고받으며 킥킥댄다

61쪽


눈앞의 선율소리는 강렬했다

→ 눈앞 노랫소리는 뜨거웠다

→ 눈앞 가락노래는 대단했다

86쪽


누가 이렇게 나에게 심도 있는 질문을 던졌던가

→ 누가 이렇게 나한테 깊이 물어보았던가

→ 누가 이렇게 나한테 곰곰이 물었던가

102쪽


밤하늘에 청초하게 뜬 만월이 보인다

→ 밤하늘에 곱게 뜬 둥근달이 보인다

→ 밤하늘에 정갈히 뜬 보름달을 본다

115쪽


서치(書癡). 글 읽기에만 빠져 다른 일은 돌보지 않는 사람

→ 글바보. 글에만 빠져 다른 일은 돌보지 않는 사람

→ 책바보. 글만 읽어 다른 일은 돌보지 않는 사람

11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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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시절 - 가장 안전한 나만의 방에서
임후남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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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숲마실


책집지기를 읽다

26 경기 용인 〈생각을 담는 집〉과 《책방 시절》



  책집이란 잇는 쉼터입니다. 책집지기가 쓰거나 엮지 않았어도, 속에 담은 이야기가 빛난다고 여기는 책을 마을이웃하고 두루 나누려고 잇는 쉼터입니다.


  책집이란 속을 살피는 이음터입니다. 겉으로 번드레하게 꾸미는 책이 아닌, 속으로 흐르는 빛나는 씨앗을 살펴서 잇는 자리입니다.


  책집이란 들숲메를 잊거나 잃은 자리에 푸른바람을 한 줄기 일으키는 나들터입니다. 모든 종이책은 들숲메에서 왔습니다. 들이 없거나 숲이 없거나 메가 없다면 종이를 못 얻고 책을 못 묶습니다. 어느 책이건 푸른별에 들숲메가 우거지기 때문에 태어나게 마련입니다. 글 한 줄마다 푸르게 일렁이는 이야기가 깃드는 줄 알아보는 책집지기가 마을사람한테 조그맣게 푸른바람을 잇고 펴는 책집입니다.


  《책방 시절》은 경기 용인에 있는 〈생각을 담는 집〉에서 내놓은 조촐한 꾸러미입니다. 책집이면서 펴냄터인 ‘생각을 담는 집’이고, 시골에서 일구며 마주하는 하루를 자그맣게 담아냅니다. 책을 읽는 손과 책을 내려놓고서 일하는 손이 어울리는 길을 문득문득 옮겨적어요.


  ‘생각’이란 샘물처럼 새롭게 일으켜서 이곳에 생겨나는 씨앗을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집’이란 너나없이 누구나 아우르면서 포근히 깃드는 곳을 나타내는 우리말입니다. 저마다 보금자리에서 생각을 길어올리기에 마을이 빛납니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생각을 잇기에 만나고 헤어지면서 삶을 헤아리는 마음을 느낍니다.


  서울이라면 북적대는 사람들이 바쁜 일손을 쉬는 책집이 있을 만합니다. 시골이라면 철마다 어떻게 해바람비가 다르게 흐르는지 읽고 느껴서 나누고 누리는 책집이 있을 만합니다. 그리고, 종이책에 담은 삶이 아니더라도, 눈으로 담는 삶과 손으로 짓는 삶과 다리로 누비는 삶과 온몸으로 맞이하는 삶을 이야기로 들려주고 들을 만합니다.


  마을에 책집이 있기에 마을사람으로서 스스로 가꾸는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는 실마리를 나눕니다. 마을에 나무와 숲정이가 있기에 아이들이 숨을 돌리고 어른들은 일손을 쉴 수 있습니다. 마을에 이야기가 있기에 아이어른이 함께 자라면서 배우는 나날을 일굽니다.


《책방 시절》(임후남, 생각을담는집, 2024.7.5.)


ㅍㄹㄴ


무는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큼직하게 자라 허연 몸통을 드러내지요. 그 모습을 보다 보면 헤벌쭉 입이 벌어집니다. (11쪽)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스스로도 즐겁지 않았던 그것을 또 자식에게 시키는가 하는 일입니다. 그 자식 역시 즐겁지 않은 일을, (33쪽)


저는 책방에 있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책방은 모두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저만의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41쪽)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렇게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낯선 세상에 혼자 태어났지만 가족을 만나고 사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영행을 받아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처럼요. (106쪽)


아직 서울에서 일하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심심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서울이 그립지 않으냐고.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145쪽)


돌아가신 후에야, 제가 나이들고 나서야 엄마의 삶이, 아버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내 부모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149쪽)


+


시골의 밤은 캄캄합니다

→ 시골은 밤이 캄캄합니다

→ 시골밤은 캄캄합니다

4쪽


밝은 햇살이

→ 밝은 해가

5쪽


사실 제가 먹는 것보다 다른 사람 주는 게 훨씬 더 많거든요

→ 막상 제가 먹기보다 다른 사람한테 훨씬 많이 주거든요

→ 정작 저보다 다른 사람한테 훨씬 많이 주거든요

12쪽


몸을 움직이며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 몸을 움직이며 일하기를 즐깁니다만

→ 몸을 움직이며 일하면 즐겁습니다만

12쪽


손톱 끝이 새까매집니다

→ 손톱 끝이 새까맙니다

17쪽


초겨울 햇살이 참 좋습니다

→ 첫겨울 해가 참 따뜻합니다

35쪽


긴 설 연휴 중입니다

→ 설에 길게 쉽니다

→ 설말미가 깁니다

41쪽


누군가가 농사짓는 밭은 조심스러워

→ 누가 짓는 밭은 거리껴서

49쪽


타인에 대해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 남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남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59쪽


“늙은 오이 먹어요?” … 큼지막한 노각 네 개를 받아들고

→ “늙은오이 먹어요?” … 큼지막한 늙오이 넷을 받아들고

74쪽


이렇게 쓰는 것이 좋다, 라는 식의 강의가 아닌 첨삭을 하다 보니

→ 이렇게 쓰면 낫다고 들려주기보다 손질을 하다 보니

76쪽


단감일까 대봉일까 아님 토종감일까

→ 단감일까 불퉁감일까 아님 텃감일까

→ 단감일까 장두감일까 아님 텃감일까

84쪽


이제 평지가 된 길을 따라

→ 이제 반반한 길을 따라

→ 이제 고른 길을 따라

90쪽


심폐소생술을 한참 하자 검붉었던 입술이 회복됐고

→ 숨살리기를 한참 하자 검붉던 입술이 살아나고

→ 숨을 한참 불어넣자 검붉던 입술이 낫고

133쪽


무를 뽑을 때의 쾌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요

→ 무를 뽑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워요

→ 무를 뽑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신나요

137쪽


그 김치를 다 먹을 리 만무합니다

→ 그 김치를 다 먹을 수 없습니다

→ 그 김치를 다 못 먹습니다

13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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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 - 이 세상 모든 워킹맘에게 바치는 6년 차 책방지기의 행복 찾기 프로젝트
이혜미 지음 / 톰캣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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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숲마실


책집지기를 읽다

24 경기 광주 〈근근넝넝〉과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



  적잖은 분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대중화시키다’일 텐데, ‘대중화시키다’가 일본말씨이기보다 이 말씨는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눈썰미이기 때문에 으레 거북합니다. ‘무지렁이(못배운이)’가 모르는 터라, 무지렁이를 일깨우려는 뜻으로 이른바 ‘운동권’이 입에 달고 살던 일본말씨가 ‘대중화시키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를 글에 얹어서 노래로 나누려는 글살림을 펴려는 자리라고 한다면, ‘나눔’을 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노래나눔’을 하면 됩니다. “시문학을 대중화시킬 허들을 넘는다”가 아니라, ‘허들’처럼 ‘턱’이 높은 영어도 걷어내고서, “누구나 노래살림으로 넘나드는 길을 나누는 하루”를 글마당으로 열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길게 이야기를 풀어내어 쓰는 글이든, 단출하게 이야기를 추슬러서 여미는 글이든, 모두 글입니다. 마음을 담은 말을 고스란히 그리기에 글입니다. 저마다 일군 삶은 마음에 켜켜이 담아 왔고, 이 마음을 말로는 술술 풀어내지만 정작 글로는 그리기 어렵다고 느끼는 숱한 이웃이 있습니다. ‘삶 → 마음 → 말’까지는 다다랐어도, 그만 ‘글턱’을 거의 못 넘으십니다. 글턱을 넘은 이웃도 “문학인처럼 시인처럼 소설가처럼 에세이스트처럼 멋있게 꾸며야 할 텐데” 하는 굴레에 갇힙니다.


  글턱(허들)은 낮출 일도 없앨 일도 없습니다. 그저 삶을 나누는 말을 우리말씨로 수수하게 그리면 넉넉합니다. 노래쓰기(시창작)를 ‘대중화시키’는 ‘문학활동’이 아닌, 집살림을 일구듯 글살림을 수수하게 짓는 ‘글나눔’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를 읽었습니다. 경기 광주에서 마을책집 〈근근넝넝〉을 일구는 책집지기님이 ‘엄마 + 그림책 + 책집 + 마을 + 삶’이라는 다섯 가지 얼거리에 ‘순이’라는 길을 헤아리면서 짚는 나날을 들려줍니다. 아이를 낳기까지 미처 돌아보지 못 한 대목을 차분히 돌아본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고서 책집을 여는 사이에 막상 살펴보지 못 한 곳을 하나하나 되새긴다고 합니다. 마을에 책집이 하나 있는 터전이 어떤 씨앗 한 톨인지 새삼스레 느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더 많은 사람’은 큰책집이나 누리책집에서 책을 사읽습니다. 아무래도 ‘더 적은 사람’이 마을책집까지 다리품을 팝니다. 그런데 마을책집으로 다리품을 팔 적에는 ‘책 너머’를 만나게 마련이에요. 우리는 조각(지식)만 얻을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글쓴이가 담아낸 삶을 돌아볼 책이고, 엮은이가 나누려는 손길을 헤아릴 책이며, 왜 애써서 종이꾸러미를 손수 넘기면서 줄거리를 알아내야 하는지 짚을 책입니다.


  더욱이 여느 글책과 그림책은 아주 다릅니다. 여느 글책을 100벌이나 1000벌을 되읽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느낌글을 쓰든 안 쓰든 어느 책이나 으레 너덧 벌을 읽고, 열스무 벌을 아무렇지 않게 되읽습니다. 이렇게 되읽더라도 어느 책을 통째로 알아본다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그저 귀퉁이를 살짝 맛볼 뿐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림책을 적어도 2000벌쯤 읽습니다. 따분하거나 억지스러운 그림책이라면 너덧 벌 넘기다가 집어치우지요.


  요즈음 새로 나오는 그림책을 보면, 아이들이 1000벌이나 3000벌을 되읽을 만큼 줄거리와 이야기를 짜는 그림지기나 글지기는 잘 안 보입니다. 얼추 너덧 벌쯤 재미나게 읽다가 잊어버릴 만한 그림책이 넘칩니다. 뜻깊은 목소리를 가르치려고 하는 그림책도 넘칩니다. 막상 어린이가 1000벌을 훌쩍 넘도록 되읽으면서 마음을 사랑으로 가꾸고 생각을 꿈으로 지피도록 북돋우는 그림책은 뜻밖에 적습니다.


  모든 아이는 천천히 자랍니다. 모든 아기는 천천히 목을 가누고 뒤집고 서고 걷습니다. 하루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종알종알 말을 터뜨리는 아기는 없습니다. 아주 느긋이 자라는 아기요, 어린 나날도 그야말로 천천히 뛰놀고 노래하면서 보냅니다. 그래서 그림책이라고 할 적에도 이러한 아이 자람결에 맞추어서 “적어도 열두 해를 내내 자리맡에 놓고서 즐길 꾸러미”로 엮어야 ‘그림책답’습니다만, 이런 그림책이 갈수록 사라지거나 아주 안 나오다시피 한다고 느껴요.


  집안일을 돌아봅니다. 설거지나 가름(소분)쯤은 한집을 이루는 다른 사람한테 얼마든지 얘기해서 맡길 수 있어요. 한 사람이 모두 해내려고 하면 으레 고단해서 지나치기 쉽습니다. 저는 으레 집에서 모든 일을 말없이 혼자 다하기 일쑤이지만, 이제는 곧잘 무엇무엇을 얼른 마무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얘기합니다.


  미루고 미루는 까닭이란, 뭐 내가 혼자 끝까지 해낼 몫이라는 마음이 너무 큰 탓일 텐데, 아이들도 무럭무럭 크는 길이라면 아이들이 얼마든지 집일을 조금씩 나누어 맡으면서 엄마아빠 살림길도 익힐 뿐 아니라 그동안 아이로서 얼마나 누려 왔는지 배우는 밑거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말을 하니까, 아무리 말소리가 일본사람스럽지 않더라도 굳이 안 가다듬어도 된다고 느껴요. 다 다르게 말을 하는 사람이 나란히 어울리면서 즐거울 터전이며 살림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 하든 못 하든 나부터 나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즐겁게 살아가는 씨앗 한 톨을 심는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느낍니다.


  집과 마을에서 아이들과 곁님과 이웃하고 수수한 살림말을 더 자주 주고받다 보면, 츠키맘 님이 걱정하시는 말결도 아주 부드럽게 천천히 바뀔 만하다고 느껴요. 모든 일은 안 서두를 적에 어느새 이루니까요.


  다시 그림책과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를 되새깁니다. 엄마뿐 아니라 아빠가 나란히 그림책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요. 엄마아빠라는 자리에 서기 앞서, 스무 살 젊은이가 그림책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열여섯 살 푸름이도 ‘그림책은 애들만 보는 책’이 아닌 줄 알아차리기를 바랍니다. 저마다 마음에 사랑씨앗을 심도록 북돋우기에 그림책이고, 누구나 꿈을 짓는 생각씨앗을 온몸에 드리우도록 손길을 내미는 그림책입니다.


  이제까지는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로 걸어온 길이라면, 이제부터는 “함께(엄마랑 아빠랑 모두랑) 그림책을 사랑해”로 걸어가는 길일 수 있기를 바라요. 함께 걷고, 함께 보고, 함께 말하고, 함께 생각하기에, 우리 보금자리부터 사랑으로 돌보게 마련입니다.


ㅍㄹㄴ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이혜미, 톰캣, 2024.12.30.)


진짜 불안했던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항상 불안했다. (17쪽)


정말 너무 비싼 책이라면 망설이긴 하겠지만, 사람들은 가격과 상관없이 책이 마음에 들면 구입한다. (43쪽)


하다못해 책방 주인이 되기 전의 나만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라고 아이에게 성탄절 관련 책을 사준 적도 없거니와, (57쪽)


책방을 오픈한 뒤 그림책 활동가들이 추천하는 책이나 그림책 커뮤니티에서 계속 언급되는 책들은 보면 왠지 이 책이 우리 책방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주문을 넣었다. (90쪽)


《미스 럼피우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내 책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매고 있지 않았을까.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에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까. (125쪽)


+


주변 사람이 하는 일, 그러니까 그 사람의 업에 대해

→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 둘레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 가까운 사람이 하는 일을

6쪽


예전의 나는 돈을 많이 벌수록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 나는 예전에 돈을 많이 벌수록 즐거우리라 여겼다

8쪽


아이가 세 돌에 가까워질 무렵

→ 아이 석 돌이 가까울 무렵

→ 아이 석 돌에 이를 무렵

15쪽


휴가 사용도 자유로운, 워킹맘으로서는 꽤 괜찮은 조건의 회사에 다녔지만

→ 마음껏 쉴 수도 있어 일엄마로서는 꽤 넉넉한 일터에 다녔지만

→ 느긋이 쉴 수도 있어 일순이로서는 꽤 훌륭한 일터에 다녔지만

15쪽


지금은 아이 둘도 혼자 케어할 수 있는 남편이지만

→ 이제는 아이 둘도 혼자 돌볼 수 있는 짝지이지만

→ 요새는 아이 둘도 혼자 다독이는 곁님이지만

15쪽


나이를 먹을수록 독서량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 나이를 먹을수록 적게 읽었다

→ 나이를 먹을수록 책을 멀리했다

→ 나이를 먹을수록 글그릇이 줄어들었다

22쪽


생각지도 못 하게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 생각지도 못 하게 눈물바다였다

→ 생각지도 못 하게 목이 메었다

25쪽


강의의 핵심은 자영업은 사람 모으는 방법을 알아야 성공한다는 것이었다

→ 사람 모을 줄 알아야 가게를 차려 돈을 번다고 한다

→ 사람을 잘 모아야 가게가 잘될 수 있다고 한다

29쪽


집이 마음에 들어 그거 하나 보고 연고도 없는 이곳에 정착했다

→ 그저 집이 마음에 들어 밑뿌리도 없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 오직 집이 마음에 들어 밑동도 없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33쪽


동네에서도 끝자락 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유동인구도 적고 조용했다

→ 마을에서도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사람도 적고 조용했다

→ 마을 끝자락에 있기에 발걸음도 적고 조용했다

36쪽


책의 주문을 확인하는 데만 수일이 걸렸다

→ 시킨 책을 살피는 데만 여러 날 걸렸다

47쪽


첫 월세는 아까웠지만 실전으로 부딪힌 첫 창업의 수업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첫 달삯은 아깝지만 맨몸으로 치른 첫 배움삯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 첫 달삯은 아깝지만 부딪혀서 배운 새길삯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50쪽


책방 오픈 일을 12월 19일로 정한 건 나름의 전략적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 책집 첫날을 12월 19일로 잡았는데, 내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다

→ 책집 첫단추를 12월 19일로 잡은 속내가 있다

→ 책집 여는 날을 12월 19일로 잡은 뜻이 있다

→ 책집 첫걸음을 12월 19일로 잡으며 여러모로 살폈다

56쪽


이것 또한 샘플북이 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 이 또한 미리꽃이 있기에 씩씩하게 말할 수 있다

→ 이 또한 보임책이 있기에 의젓하게 말할 수 있다

65쪽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마저도 사치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틈이 없는 사람한테는 이마저도 배부를 수 있는 줄 안다

81쪽


이유에 대해 오만 가지를 생각해 보며 초조해했다

→ 까닭을 숱하게 생각해 보며 걱정했다

85쪽


그저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 그저 달리 좋아할 뿐이다

→ 그저 마음이 다를 뿐이다

91쪽


책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수업을 들었다

→ 책집을 차리면서 이모저모 많이 배웠다

→ 책집을 열기까지 여러모로 많이 들었다

111쪽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밤에 열리는 심야책방은

→ 한 달에 하루, 쇠날 밤에 여는 별빛책집은

→ 한 달에 하루, 쇠날 밤에 여는 밤책집은

→ 한 달에 하루, 쇠날 밤에 여는 별밤수다는

145쪽


영유아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에게 나 홀로 고요히 책을 읽는 시간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나 홀로 고요히 책을 읽는 짬은 드물다

→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나 홀로 고요히 책을 읽는 틈은 밭다

146쪽


육아 휴직 한 번 하고는 다들 복직하지만

→ 아기쉼을 하고는 다들 돌아가지만

149쪽


총도 방패도 없이 전쟁터에 나온 병사처럼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 맨몸으로 싸움터에 나온 사람처럼 까마득하기 그지없었다

157쪽


당분간 무인책방으로 운영을 해야 하나

→ 한동안 열린책집으로 꾸려야 하나

→ 좀 스스로책집으로 해야 하나

157쪽


뭔가 방법이 생기겠지. 그렇게 애써 긍정회로를 돌렸다

→ 뭔가 길이 생기겠지. 그렇게 애써 밝게 여겼다

→ 뭔가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애써 가볍게 여겼다

157쪽


비가 샌 거나 단순히 천재지변 핑계만 댈 일은 아니었다

→ 비가 새거나 그저 물벼락 핑계만 댈 일은 아니었다

→ 비가 새거나 그저 벼락 핑계만 댈 일은 아니었다

194쪽


그 임대인은 바뀐 게 하나도 없네

→ 그 집지기는 하나도 안 바뀌었네

→ 그 집임자는 바뀌지 않았네

196쪽


책방에 있다 보면 많은 엄마들을 만나게 된다

→ 책집에 있다 보면 엄마를 숱하게 만난다

→ 책집에 있다 보면 엄마를 자주 만난다

289쪽


20대 초중반밖에 안 된 창창한 나이였는데

→ 스물 언저리밖에 안 된 밝은 나이인데

→ 스물 조금 넘은 눈부신 나이인데

30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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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내가 할게 - <책과아이들> 25년의 기록
이화숙.강정아 지음 / 빨간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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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숲마실 2024.7.30.


책집지기를 읽다

13 부산 〈책과 아이들〉과 《서점은 내가 할게》



  책집은 책집지기가 합니다. 책손은 책집을 마실합니다. 책집지기는 책을 살펴서 고르고 갖추면서 알립니다. 책손은 책을 살펴서 장만하고 읽습니다. 책집지기는 책을 더 많이 읽는 일꾼이 아닙니다. 책집지기는 ‘스스로 못 읽은 책’을 눈썰미로 느껴서 알아보는 몫입니다. 책손은 책을 더 많이 사는 자리가 아닙니다. 책손은 ‘언제나 새로 배울 책’을 기쁘게 맞아들여서 즐겁게 삭이고는 두런두런 이야기로 지피는 몫입니다.


  굳이 모든 책손이 ‘새로 나오는 모든 책’을 하나하나 짚고 훑으면서 챙겨야 하지 않습니다. 구태여 모든 책집지기가 ‘어떤 책이 아름다울는지 가늠해야’ 하지 않습니다. 좀 어설프거나 엉성한 책을 갖출 수 있고, 좀 섣부르거나 서툰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어떤 삶을 담습니다. 그저 삶을 담는 책입니다. 좋은삶을 담기에 좋은책이 아니고, 나쁜삶을 담아서 나쁜책이 아닙니다. 다 다르게 배우는 책입니다. 노무현이 쓰건 이명박이 쓰건 박근혜가 쓰건 문재인이 쓰건, 그저 ‘누가 쓰는 책’입니다. 우리는 ‘누구’라는 이름이 아니라, ‘책에 깃든 숨결’이 민낯인지 거짓인지 허울인지 알맹이인지 씨알인지 알아보고 가누면서 가릴 줄 알면 됩니다.


  이름값만으로 책을 살피거나 챙기거나 사거나 읽으면, 언제나 허울을 스스로 들쓰면서 그만 거짓부렁에 속습니다. 책은 이름값이 아닌 줄거리하고 알맹이로 읽어야 맞습니다. 이름난 글바치가 낸 책이라지만, 정작 후줄근할 뿐 아니라 눈가림과 거짓말이 춤출 수 있습니다. 누가 쓴 책인지도 모르고, 펴낸곳조차 낯설다고 하지만, 막상 아름답고 알차면서 눈부신 책일 수 있습니다.


  부산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을 오래오래 일군 책집지기가 남긴 《서점은 내가 할게》입니다. 대단하지 않은 책이면서, 곰곰이 읽을 책입니다. 추켜세울 책이 아니면서 가만히 새길 책입니다. 왜 “책집은 내가 할게” 하고 속삭일까요? 책집이란 무엇이기에, 왜 책집을 열어서 꾸리고 가꾼다고 소근거릴까요?


  책집이 있는 마을은 안 무너집니다. 책집이 없는 마을은 무너집니다. 책집마실을 안 하는 사람이 우두머리(대통령·시장·군수·구청장) 따위를 맡으면, 그곳은 무너집니다. 책집마실을 하는 수수한 이웃이 마을을 이루면, 그곳은 알뜰살뜰 즐겁게 살림빛을 잇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힐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하고 어버이가 책을 읽으면 돼요. 어른하고 어버이는 쇳덩이(자동차)를 멈추고서, 아이 손을 잡고 마실을 하거나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책을 읽으면 됩니다. 책은 대단한 곳에서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구태여 책숲(도서관)에 가서 읽을 책이 아니라, 집에서 읽으면 될 책이요, 버스나 전철에서 읽으면 즐거운 책입니다. 들마실을 가서 도란도란 어울리다가 혼자 떨어져서 해바라기를 하며 즐기면 아름다운 책입니다.


  우리는 ‘추천도서’가 아닌 ‘책집에 있는 책’을 읽으면 됩니다. ‘손길이 깃든 책’을 읽으면 돼요. ‘손길’이란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글쓴이 손길입니다. 둘째, 책집지기 손길입니다. 셋째, 먼저 책을 알아보고서 읽은 이웃책동무 손길입니다. 부산 거제동 한켠에 마을책집이 있으니, 사뿐히 책마실을 누려요. ‘어떤 책을 사서 읽을까’ 하는 마음은 내려놓고서, ‘내가 마실하는 책집에 꽂힌 책’을 천천히 돌아보고 둘러보고서 서너 자락쯤 골라서 사읽으면 됩니다. 마실길 한 걸음에 서너 자락이나 한두 자락을 사면 돼요. 자주 마실하면 됩니다. 시골에서 지내느라 책집마실이 뜸할 수밖에 없다면 잔뜩 살 수 있을 테지만, 책집이 곁에 있으면 슬금슬금 자주 마실하면서 천천히 골마루를 거닐면서 눈길을 틔우기에 서로 반짝반짝 빛납니다.



《서점은 내가 할게》(강정아·이화숙 이야기, 빨간집, 2022.1.31.)



사실 그때 수원에 〈초방〉 같은 책방이 있었으면 해서 나도 책방을 해볼까 맘을 낸 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언니가 한다니까 단박에 ‘난 행복한 이용자가 되어야지’로 맘이 바뀌더라고요. 서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우리 동네에 서점이 필요했던 거였어요. (24쪽)


아이를 키우는 주부에게 서점의 접근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교대 앞으로 옮긴 건데, 데려와도 막상 아이들은 책방에 관심 없는 경우가 많아요. 찡찡거리는 모습들을 보니까 마당이라도 있으면 아이들이 들락날락할 건데 싶었어요. (43쪽)


한동안 모 출판사에서 나온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이 굉장히 인기였어요. 그래도 저희 책방엔 입고하지 않았어요. 저희가 보기엔 그리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었거든요. (232쪽)


일본 교수들이 교대에서 워크숍을 하고 내려가다가 “여기 책방이 있네” 하고 들어왔는데, 뒤따라온 한국 교수가 “어, 여기 서점이 있었네?” 한 거죠. 교대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못 보셨던 거예요. (238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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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흔들리다
김미자 지음 / 낮은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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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숲마실 2024.3.21.


책집지기를 읽다
17 《그림책에 흔들리다》와 당진 〈그림책꽃밭〉



  지난 2019년 8월에 이르러 충남 당진 한켠에 〈그림책꽃밭〉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책집이 태어납니다. 책집이름 그대로 ‘그림책 + 꽃밭’입니다. 그림책으로 이루는 꽃밭이요, 그림책을 읽는 삶이 꽃밭으로 싱그럽다는 뜻일 테고, 그림책을 읽고 짓고 나누는 모든 손길을 꽃빛으로 물들인다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저를 낳고 돌본 어버이는 당진군 합덕면에 오래집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버이 시골집에 자주 찾아갔지만, 어느 해부터인가 더는 가지 못 했습니다. 우리 어버이하고 시골집 어른들하고 무슨 실랑이가 있은 듯하다고 어림했으나, 어른들 일 탓에 합덕 피붙이를 만날 수 없기에 몹시 서운했습니다. 예전에는 인천에서 당진으로 가자면, 먼저 서울 영등포로 가야 했고, 그곳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 돌고돌았습니다. 다른 시골도 매한가지일 텐데, 시골로 가는 길은 으레 자갈길에 흙길이요, 한참 시외버스를 달리고 보면 다들 멀미를 하고 게우느라 파리했어요. 시외버스를 탈 적에는 다들 비닐자루를 여럿 챙겼고, 시외버스 앞자락에는 ‘게울 적에 쓸 비닐자루’를 대롱대롱 잔뜩 달았습니다.

  어버이 시골집 어르신은 합덕이랑 삽교에 있었지 싶은데, 언젠가 수덕사까지 온집안이 마실을 갔다가 제가 까무룩 곯아떨어져서 시골집 어르신이 집까지 머나먼 길을 업어서 걸어왔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네 시간이 넘었다더군요.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었을 텐데, 어르신 등에 안겨서 죽은 듯이 잠든 일은 떠오를 듯 말 듯 꿈같습니다.

  시골집 언니랑 누나는 으레 저를 데리고 멧자락을 넘고 바다로 갔어요. 멧숲에서 개암나무를 찾아내어 “자, 먹어 봐. 과자보다 훨씬 맛있어.” 하고 건네는데, 아작 깨물 적에 퍼지는 시원한 알맛은 마흔 해쯤 지난 오늘에도 새삼스럽습니다.

  그림책이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고 누리고 나눌 수 있도록 깊고 넓게 이야기를 다스린 꾸러미입니다. 글을 배운 적 없는 할매도 그림만으로도 줄거리를 읽을 수 있으며, 한글을 모르는 이웃사람도 스스럼없이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당진 〈그림책꽃밭〉을 언제 찾아갈 수 있으려나 손꼽는데, 2024년에 이르도록 좀처럼 당진마실을 하지는 못 합니다. 당진마실을 하는 날에 《그림책에 흔들리다》 느낌글을 쓰자고 생각했는데, 이러다가는 느낌글을 내내 못 쓸 수 있겠지요.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부엌일을 하나도 안 하는지 모르겠으나, 어버이한테서 제금을 난 1995년에 이르도록 우리 아버지는 설거지를 아예 한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만난 2016년까지도 아버지라는 분은 설거지를 통 안 했을 뿐 아니라, 라면조차 못 끓이는 줄 압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거들어 부엌일을 할라치면 “사내녀석이 고추 떨어진다!”는 꾸지람을 들었는데, 이때마다 언니는 “고추 떨어져도 되니까, 부엌일 거들지 않으려면 아버지는 암말을 마셔요!” 하고 큰소리를 치며 둘이 싸웠습니다.

  아마 우리는 밑마음을 못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밑마음을 못 바꾸어도 됩니다. 밑마음을 가꾸면 되거든요. 숲바람을 맞아들이면서 가꿀 노릇입니다. 들바람을 쐬면서 가꿀 수 있습니다.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가꿀 만하지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길에,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습니다. 똥오줌기저귀를 빨래하고 삶고, 밥을 끓이고, 집안을 치우고, 이러면서 바깥일을 하고, 낱말책(국어사전) 쓰는 일을 했습니다. “그 집은 가시내가 뭘 하나?” 하고 따지는 분이 제법 많았는데, 집일이건 밖일이건, 맡아서 할 사람이 하면 될 뿐입니다.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돌볼 적에 아이들이 사랑을 물려받을 수 있어요. 이러는 하루 한켠에 그림책도 만화책도 나란히 놓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밭을 누리기에 즐겁습니다.

  그림책에 흔들리는 길에 문득 하늘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그림책을 품는 길에 가만히 들꽃을 쓰다듬습니다. 쉰 살에도 일흔 살에도 아흔 살에도, 그림책을 읽고 쓰고 노래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과 나라와 별은 푸르게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앙금도 멍울도 생채기도, 남이 아닌 내가 스스로 어린이 곁에서 살림씨앗을 한 톨 심을 적에 천천히 녹이고 풀 만하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그림책에 흔들리다》(김미자 글, 낮은산, 2016.5.10.)



그림책 한 권이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지는 않지만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일은 참 많습니다. (15쪽)

유정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나는 또 한 번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노력했다. 유정이에게 예쁜 분홍색 원피스를 사 입히고 새로 산 학용품 하나하나에 이름을 써서 붙였다. 신입생이 되는 딸아이에게 기울이는 나의 정성은 곧 아이를 향한 엄마의 기도라고 믿었다. 기억하건대 입학식 날 아침에도 유정이는 내가 사 준 옷이 싫다고 입을 빼물었다. (44쪽)

평소 집안일을 도맡아 할 때는 일이 많아 투덜거렸는데, 그 일을 하지 말라고 하니 마치 내 귀한 것을 빼앗긴 것처럼 아쉬웠다. 여태 내가 하던 일을 안 하고 지켜보는 것도 어렵지만, 그 일을 하느라 서툰 식구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는 게 더 힘들었다. (124쪽)

아이들과 어울려 재미나게 놀지 못하다가 엉뚱하게 밥 타령이나 하는 남편, 모처럼 가족 나들이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우울한 나, 이 둘 사이에 놓인 아이들 역시 즐거울 리가 없다. 이 나들이에서 얻은 게 있다면 동물원에서 서로 다른 방에 갇힌 동물들처럼, 남편과 나 역시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17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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