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내가 할게 - <책과아이들> 25년의 기록
이화숙.강정아 지음 / 빨간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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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숲마실 2024.7.30.


책집지기를 읽다

13 부산 〈책과 아이들〉과 《서점은 내가 할게》



  책집은 책집지기가 합니다. 책손은 책집을 마실합니다. 책집지기는 책을 살펴서 고르고 갖추면서 알립니다. 책손은 책을 살펴서 장만하고 읽습니다. 책집지기는 책을 더 많이 읽는 일꾼이 아닙니다. 책집지기는 ‘스스로 못 읽은 책’을 눈썰미로 느껴서 알아보는 몫입니다. 책손은 책을 더 많이 사는 자리가 아닙니다. 책손은 ‘언제나 새로 배울 책’을 기쁘게 맞아들여서 즐겁게 삭이고는 두런두런 이야기로 지피는 몫입니다.


  굳이 모든 책손이 ‘새로 나오는 모든 책’을 하나하나 짚고 훑으면서 챙겨야 하지 않습니다. 구태여 모든 책집지기가 ‘어떤 책이 아름다울는지 가늠해야’ 하지 않습니다. 좀 어설프거나 엉성한 책을 갖출 수 있고, 좀 섣부르거나 서툰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어떤 삶을 담습니다. 그저 삶을 담는 책입니다. 좋은삶을 담기에 좋은책이 아니고, 나쁜삶을 담아서 나쁜책이 아닙니다. 다 다르게 배우는 책입니다. 노무현이 쓰건 이명박이 쓰건 박근혜가 쓰건 문재인이 쓰건, 그저 ‘누가 쓰는 책’입니다. 우리는 ‘누구’라는 이름이 아니라, ‘책에 깃든 숨결’이 민낯인지 거짓인지 허울인지 알맹이인지 씨알인지 알아보고 가누면서 가릴 줄 알면 됩니다.


  이름값만으로 책을 살피거나 챙기거나 사거나 읽으면, 언제나 허울을 스스로 들쓰면서 그만 거짓부렁에 속습니다. 책은 이름값이 아닌 줄거리하고 알맹이로 읽어야 맞습니다. 이름난 글바치가 낸 책이라지만, 정작 후줄근할 뿐 아니라 눈가림과 거짓말이 춤출 수 있습니다. 누가 쓴 책인지도 모르고, 펴낸곳조차 낯설다고 하지만, 막상 아름답고 알차면서 눈부신 책일 수 있습니다.


  부산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을 오래오래 일군 책집지기가 남긴 《서점은 내가 할게》입니다. 대단하지 않은 책이면서, 곰곰이 읽을 책입니다. 추켜세울 책이 아니면서 가만히 새길 책입니다. 왜 “책집은 내가 할게” 하고 속삭일까요? 책집이란 무엇이기에, 왜 책집을 열어서 꾸리고 가꾼다고 소근거릴까요?


  책집이 있는 마을은 안 무너집니다. 책집이 없는 마을은 무너집니다. 책집마실을 안 하는 사람이 우두머리(대통령·시장·군수·구청장) 따위를 맡으면, 그곳은 무너집니다. 책집마실을 하는 수수한 이웃이 마을을 이루면, 그곳은 알뜰살뜰 즐겁게 살림빛을 잇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힐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하고 어버이가 책을 읽으면 돼요. 어른하고 어버이는 쇳덩이(자동차)를 멈추고서, 아이 손을 잡고 마실을 하거나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책을 읽으면 됩니다. 책은 대단한 곳에서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구태여 책숲(도서관)에 가서 읽을 책이 아니라, 집에서 읽으면 될 책이요, 버스나 전철에서 읽으면 즐거운 책입니다. 들마실을 가서 도란도란 어울리다가 혼자 떨어져서 해바라기를 하며 즐기면 아름다운 책입니다.


  우리는 ‘추천도서’가 아닌 ‘책집에 있는 책’을 읽으면 됩니다. ‘손길이 깃든 책’을 읽으면 돼요. ‘손길’이란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글쓴이 손길입니다. 둘째, 책집지기 손길입니다. 셋째, 먼저 책을 알아보고서 읽은 이웃책동무 손길입니다. 부산 거제동 한켠에 마을책집이 있으니, 사뿐히 책마실을 누려요. ‘어떤 책을 사서 읽을까’ 하는 마음은 내려놓고서, ‘내가 마실하는 책집에 꽂힌 책’을 천천히 돌아보고 둘러보고서 서너 자락쯤 골라서 사읽으면 됩니다. 마실길 한 걸음에 서너 자락이나 한두 자락을 사면 돼요. 자주 마실하면 됩니다. 시골에서 지내느라 책집마실이 뜸할 수밖에 없다면 잔뜩 살 수 있을 테지만, 책집이 곁에 있으면 슬금슬금 자주 마실하면서 천천히 골마루를 거닐면서 눈길을 틔우기에 서로 반짝반짝 빛납니다.



《서점은 내가 할게》(강정아·이화숙 이야기, 빨간집, 2022.1.31.)



사실 그때 수원에 〈초방〉 같은 책방이 있었으면 해서 나도 책방을 해볼까 맘을 낸 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언니가 한다니까 단박에 ‘난 행복한 이용자가 되어야지’로 맘이 바뀌더라고요. 서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우리 동네에 서점이 필요했던 거였어요. (24쪽)


아이를 키우는 주부에게 서점의 접근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교대 앞으로 옮긴 건데, 데려와도 막상 아이들은 책방에 관심 없는 경우가 많아요. 찡찡거리는 모습들을 보니까 마당이라도 있으면 아이들이 들락날락할 건데 싶었어요. (43쪽)


한동안 모 출판사에서 나온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이 굉장히 인기였어요. 그래도 저희 책방엔 입고하지 않았어요. 저희가 보기엔 그리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었거든요. (232쪽)


일본 교수들이 교대에서 워크숍을 하고 내려가다가 “여기 책방이 있네” 하고 들어왔는데, 뒤따라온 한국 교수가 “어, 여기 서점이 있었네?” 한 거죠. 교대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못 보셨던 거예요. (238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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