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24


 빈그릇 놓는곳


  ‘무상급식’이라는 말을 어른들이 으레 써요. 나라를 이끄는 어른도, 공무원이나 교사인 어른도, 아이를 둔 어른도 이 말을 흔히 써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이 말을 안 씁니다. 모르지요. 초등학교에 들고 나서 얼마쯤 지나야 비로소 어렴풋이 생각할 텐데, ‘급식실’이라는 말도 낯설면서 어려울 만합니다.


  ‘무상(無償)’은 “어떤 행위에 대하여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음”을 뜻하고, ‘급식(給食)’은 “식사를 공급함. 또는 그 식사”를 뜻한대요. 사전에서 뜻을 살펴도 풀이가 안 쉽습니다. “대가나 보상이 없이 식사를 공급함”이 ‘무상급식’일 텐데, 아이들은 이를 얼마나 알아들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함부로 쓴다는 대목을 얼마나 알까요.


  사전에서 ‘급식비(給食費)’를 찾아보면 “식사를 공급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풀이합니다. 이 말도 뜻풀이가 어렵습니다. 알맞지 않다고 여길 수 있어요. 더 헤아린다면 ‘밥값’이라고 하면 쉬우면서 또렷한데, 학교나 사회나 정치에서는 ‘밥값’을 행정말이나 전문말로 안 삼아요.


  학교에서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밥값을 걱정하지 않고 밥을 먹도록 하는 일을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면 어울릴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누구나 고르게 배울 뿐 아니라, 누구나 넉넉히 먹고서 느긋하게 배움터를 다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누구나밥’이나 ‘골고루밥·고루밥’ 같은 이름을 그려 봅니다. 배움터에서 배우는 아이하고 어른 누구나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누구나 배우고 누구나 먹는다는 뜻으로 ‘누구나밥’처럼 한 낱말로 지어도 됩니다. 돈으로 가르지 않고 골고루·고루 나눈다는 뜻에서 ‘골고루밥·고루밥’이라 지어도 되고요.


  누구나 밥 한 그릇을 즐겁게 먹고서 빈그릇을 “빈그릇 놓는곳”에 얌전히 갖다 놓기를 바라요. ‘퇴식구·퇴식대’나 ‘식기 반납함·식기 반납대’ 같은 어려운 이름이 아닌 “빈그릇 자리”나 “빈그릇 칸”에 상냥히 놓기를 바라요. ‘잔반통’ 아닌 “남은밥 자리”나 “남은밥 놓는곳”에 남은밥을 놓고요. 2018.3.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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