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17. 다람쥐를 다람쥐라 못하다


  2017년 가을께 전남 고흥군 고흥읍에 있는 시외버스역 뒷간에 ‘아짐찬하요’라는 글월이 붙었습니다. 뭔 뜬금없는 글월인가 하고 쳐다보니, 사내들이 오줌을 눌 적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아짐찬하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고흥 바깥 전라말로는 ‘아심찬하다’로 씁니다.

  흔히 전라사람은 뭔 말을 할라치면 ‘거시기하다’라 한다고들 합니다. 고흥에서는 ‘거시기하다’라고는 거의 안 쓰고 ‘거석하다’라고 합니다. 사전을 살피면 ‘거석’을 경남말로만 다루는데, 경남말로만 여겨도 될까 아리송합니다.

  그리고 ‘거시기하다’는 전라말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온나라에서 두루 쓰는 말입니다. 고흥에서 흔히 쓰는 ‘거석하다’를 놓고 사전은 ‘거식하다’라는 표준말을 싣기도 합니다.

  더 헤아려 보면 ‘머시기’라는 말이 있고, 뭔가 뭉뚱그려서 말하는 자리라든지 또렷하게 안 떠오르지만 나타내고 싶은 말이 있을 적에 ‘무엇’이나 ‘거기’나 ‘그것’이나 ‘것’이나 ‘거’를 쓰곤 합니다. 고장마다 말씨가 살짝 다를 수 있어도 마음은 같을 터이니, 엇비슷한 말이 감칠맛나게 태어나고, 이런 감칠맛나는 말이 삶이나 넋을 한결 북돋아 주지 싶습니다.

mouse : 1. 쥐, 생쥐 2. [컴퓨터] 마우스
마우스(mouse) : [컴퓨터] 컴퓨터 입력 장치의 하나

  요즈음 셈틀을 안 쓰는 사람은 없다시피 합니다. 시골 할매나 할배를 뺀다면 참말로 거의 모든 사람이 셈틀을 씁니다. 셈틀을 쓸 적에는 두 손으로 글판을 두들길 테고, 한 손으로 작고 둥그스름한 뭔가를, 머시기를 쥐기 마련입니다. 이 머시기를, 또는 거시기를 뭐라고 할까요? 아니, 뭐라고 이름을 붙이면 어울릴까요?

  영어 이름 그대로 ‘컴퓨터’를 받아들인 이들은 ‘마우스’라는 영어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글을 치는 판을 놓고도 처음에는 ‘키보드’라는 영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더니, 요새는 ‘자판(字板)’이라는 한자말로 조금 손질해서 쓰곤 합니다.

  먼저 ‘판’을 놓고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윷판’ 같은 자리에서 쓰는 한국말 ‘판’을 받아들여, 글쓰기에서 새로운 자리를 여는 뜻으로 ‘글판’이라 해 볼 만합니다. 꼭 한자 ‘판(板)’만 써야 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셈틀’을 헤아려 봅니다. ‘셈 + 틀’입니다. 베틀이나 재봉틀처럼 사람이 손으로만 일하기에는 살짝 벅차서, 좀 수월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마련한 연장을 ‘틀’이라 해요. ‘셈’은 ‘생각’하고 뿌리가 같은 낱말이고, ‘세다(셈)’는 ‘헤다(헤아리다)’하고 뿌리가 같습니다. 컴퓨터라는 기계는 2진법으로 움직여요. 다시 말해서 2진법 숫자(세다) 얼거리요, 생각을 넓히는(헤다) 틀거리입니다. 이런 짜임새와 구실을 돌아볼 수 있다면 ‘셈틀’이란 낱말은 참으로 멋지고 알맞습니다.

  이다음으로 ‘마우스’를 살필게요. 영어사전을 살피지 않더라도 영어 쓰는 나라에서는 생쥐도 ‘마우스’요, 셈틀을 다룰 적에 손에 쥐는 거시기도 ‘마우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생각해 보아야지요. 생쥐이든 쥐이든 다람쥐이든 숲이나 들이나 구멍에서 사는 짐승도 온갖 ‘쥐’요, 셈틀을 다루면서 곁에 두는 머시기도 ‘쥐’라 할 만합니다. 그냥 ‘다람쥐’를 움직여 셈틀을 다룬다고 해도 됩니다. 또는 ‘다람이’라는 이름을 써도 되고, ‘잡이쥐(잡고 쓰는 연장이되 쥐처럼 생겼다는 뜻)’라 한다든지 ‘셈쥐(셈틀을 다룰 적에 쓰는 연장이되 쥐처럼 생겼다는 뜻)’라 한다든지 ‘손쥐(손으로 쥐고 움직여 셈틀을 쓰도록 하는 연장이되 쥐처럼 생겼다는 뜻)’ 같은 새말을 빚을 만해요.

  모두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영어로 ‘마우스’가 두 가지를 가리키듯, 한국말로 ‘다람쥐’가 두 가지를 가리켜도 즐겁습니다. 또는 한국사람 나름대로 슬기를 뽐내어 새로운 낱말을 지어도 즐거워요.

  전주마실을 하던 얼마 앞서 문득 “‘이무로운’ 사이”라는 말이 귓등을 스칩니다. 곁에 앉은 분들이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이 말을 쓰는데, 이제 전라살이 여덟 해쯤 되는 저한테는 낯설면서 낯익은 말입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인천 바닷가라서 ‘이무롭다’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어쩐지 ‘이물·고물’이 퍼뜩 떠오르지만, ‘무르다’라든지 ‘물’이라는 낱말도 함께 떠오릅니다. ‘허물없다’라든지 ‘사이좋다’라고만 하기에는 살며시 결이 다른 ‘이무롭다’를 혀에 얹으면서 새삼스럽네 싶습니다.

  마치 ‘살갑다’하고 ‘슬겁다’가 뜻으로는 같다고 하더라도 결로는 달라서 혀에 감기는 이야기가 가만히 벌어지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겨레도 매한가지일 텐데, 영어라면 o 다르고 i 다르다 할 테고, 한국말에서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쓰는 말은 품사나 맞춤법이나 문법이라는 이름으로는 가르거나 따질 수 없는 남다른 맛이 있어요. 서양 말법에 맞추어 과거형이나 현재진행형이나 동사나 형용사를 잘게 따져서는 말맛을 살리지 못한다고 할까요. 한국말은 예부터 임자말하고 꾸밈말하고 풀이말, 이렇게 크게 세 갈래로 나누던 말이기에, 이러한 결에 따라 이야기꽃을 살릴 적에 아이도 어른도 말을 한결 푸근하면서 무던히 익히거나 주고받을 만하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자장면’이라 한들 ‘짜장면’이라 한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한테도 이웃한테도 ‘짜장국수’라고 말합니다. ‘냉면’이란 말도 잘 안 써요. 저는 ‘찬국수’라고 합니다. 예부터 한국사람이 즐겨먹은 국수라면 ‘잔치국수’라는 이름이 있지요. ‘막국수’란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는데, 하나는 투박하게 삶은 국수라면, 다른 하나는 이제 갓 삶은 국수입니다. 그래서 막걸리도 이처럼 ‘투박하게 거른 술’ 하나하고 ‘이제 바로 거른 술’ 두 가지로 읽을 만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술이란 빨리 삭이지 못하는 마실거리이거든요. 마실 술이 되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막걸리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마실 수 있어요.

  어쩌면 ‘막-’이라는 낱말은 투박한 맛하고 이제 바로 담근 맛을 아우르는 낱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막’하고 ‘갓’은 서로 쓰임새가 아주 부드러우면서 새삼스레 갈릴 테고요.

  이 대목까지 생각줄을 이었으면 바야흐로 새롭게 말 몇 가지를 짓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막국수’에다가 ‘갓국수’를 쓸 수 있습니다. ‘갓’이라는 낱말은 투박한 결까지 담지는 않으니 ‘갓국수’라고 하면 그야말로 이제 바로 건진 뜨끈한 국수만을 나타낼 이름이 됩니다. 술을 놓고는 ‘갓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갓 지은 밥이라면 ‘갓밥’입니다.

  생각을 하기에 새로운 살림을 가꿉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남이 시키는 일만 하기 마련입니다. 생각을 스스로 하려 하지 않으면, 남이 시키는 일만 할 뿐 아니라 모든 살림을 돈으로 사다가 쓰는 얼거리가 됩니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해도 나쁘지는 않고, 모든 살림을 돈을 치러 사다가 써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때에는 나다움이란 없기 마련이에요. 남이 시키는 일만 할 적에 나다움이란 없지요. 공장에서 똑같이 찍은 것을 돈으로 사다가 쓰는데 나다움이 싹틀 자리란 없어요.

  ‘나다움’은 ‘아름다움’하고 이어집니다. 우리가 뭔가 보고서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이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곳(거기·거시기)에만 있는 멋’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거시기 잘 모르겠지만 아름답네” 하고 느낄 적에는 스스로 새롭게 길을 열면서 환하게 웃음짓는 모습이라는 뜻이에요.

  아이들한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가르치기 앞서, 아이들이 저마다 ‘아이다움’을 살릴 수 있도록 마음을 북돋우고 가꾸는 길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른들도 스스로 새롭게 생각하고 하루를 짓는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 좋겠습니다. 고장말이란, 사투리란, 텃말이란, 스스로 제 보금자리를 새롭게 짓는 사람이 저마다 손수 지은 즐거운 말입니다. 2017.12.1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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