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춰 주는 글쓰기
나는 내가 맞추고 싶은 대로 맞추면서 글을 쓰는구나 싶다. 그런데 나만 이렇게 하지 않는다. 누구나 스스로 맞출 수 있는 만큼 맞출 뿐이다. 아이 입맛에 맞추어서 밥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막상 아이한테 오롯이 맞출 수 없다. 아이가 좋아하는 결을 살펴서 가장 가까이 맞추되, 우리 힘이 닿는 데까지 할 뿐이면서, 우리 스스로 익숙한 틀에서 맞춘다. 아이가 먹는 모든 밥은 낯익지 않다. 언제나 낯선 밥을 마주한다. 이러면서 아이 나름대로 스스로 좋아하는 결을 찾고, 아이 스스로 몸을 살찌우면서 마음을 가꾸는 살림을 깨닫는다. 글을 쓰는 이는 글을 읽는 이한테 맞출 수 있을까? 아마 거의 아무것도 못 맞출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밥도 글도 다른 모든 살림도, 지어서 주는 쪽에서는 지어서 주는 이가 살아온 결대로 할 수 있을 뿐이다. 밥이든 글이든 다른 살림이든,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받아들이는 이 나름대로 삭이거나 갈무리하거나 걸러서 받아들일 뿐이다. 맞춰 줄 수 없으니 맞춘다는 생각은 아예 안 해야지 싶다. 나누고 싶은 꿈이나 뜻이나 마음이나 사랑이나 생각이 무엇인가에 제대로 힘을 쏟아서 담아내야지 싶다. 읽는 자리에서는(먹는 자리에서는) 무엇을 받아들여서 스스로 새롭게 꿈이나 뜻이나 마음이나 사랑이나 생각을 지으려 하는가에 힘을 쏟을 노릇이고. 2018.1.1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