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은 그만 - 할머니 손에 자란 배우의 맨주먹 정신
가자마 도루 지음, 문방울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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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3


배고파 풀꽃을 뜯어먹으며 하늘만 보던 아이
― 엄살은 그만
 가자마 도루/문방울 그림
 마음산책, 2017.7.20. 12000원


저녁이 되고 여기저기서 음식 냄새가 풍기면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조금만 더 놀자”라고 졸라도 “엄마가 저녁 준비하고 기다린대” “엄마한테 혼나”라면서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24쪽)


  넘어져서 아픈데, 부딪혀서 다쳤는데, 맞아서 부었는데, 자빠져서 골이 띵한데,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 같은 소리를 들으면 얼떨떨합니다. 얼떨떨하다가 부아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무섭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 “엄살 부리지 마!” 같은 소리를 어릴 적부터 듣고 자라지는 않았나 하고 돌아봅니다. 예전에는 집이나 학교나 마을에서 아이를 때리는 짓이 참 흔했어요. 아무래도 뒤숭숭한 나라 탓에 집이며 학교이며 마을이며 온통 뒤숭숭한 흐름이 그대로였구나 싶은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엄살’이라는 말은 함부로 할 말은 아니지 싶습니다.


원체 지나간 일에는 관심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과거는 과거일 뿐, 중요한 건 오늘을 필사적으로 사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40쪽)

야단을 맞아도 힘껏 달려 골목 모퉁이만 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렸다.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다. 해와 바람에 이끌려 공원이나 자갈밭으로 가면 늘 새로운 발견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60쪽)


  가자마 도루라는 일본 배우가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배우(또는 모델이나 연기자)를 놓고서 한동안 ‘잘생겼다’라든지 ‘멋지다’라고만 여겼다는데, 나중에 이 배우가 이녁 어린 삶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았을 적에 하나같이 눈물바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어린 날을 보내고 아무렇지 않게 옛일을 말할 수 있나 싶어 놀라기도 했다지요.

  이야기책 《엄살은 그만》(마음산책, 2017)에 나오는 어린이(글쓴이가 어릴 적 모습)는 매우 어릴 적에 어머니가 집을 떠납니다. 얼마 뒤에 아버지도 집을 나갑니다. 아직 학교에 들지 않은 어린이는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하고 아버지 모두 없는 집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이 아이를 가여이 여긴 할머니하고 할아버지가 늙은 몸으로 어떻게든 아이를 돌보려고 합니다.


돈은 돌고 돈다. 하지만 진짜 돌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인정이다. 사람을 정으로 대하면 그 정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77쪽)

정말 분했던 이유는 가난하다고 놀림을 당해서가 아니다. 열성으로 길러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정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96쪽)

화이트데이 때는 공원에서 주워 하얗게 색칠한 솔방울로 보답했다. 가방에 달 수 있게 실에 꿰어 목걸이로 선물했다. (100쪽)


  《엄살은 그만》에 나오는 어린이는 저녁에 밥을 지어서 기다리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집이 그립기도 했지만, 뭘 잘못해도 꾸짖거나 나무랄 어버이가 없기에 더욱 집안이 쓸쓸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받는 연금으로 살기에는 턱없이 돈이 모자라니, 작아도 너무 작은 집에 있을 수도 없기에, 늘 냇가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학교에 들고 나서는 빈터나 옥상에 올라 하늘바라기만 했다고 해요. 도시락을 쌀 수 없고, 주전부리를 할 돈이 없으니 물로 배를 채우고, 이 풀 저 풀 뜯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메뚜기를 튀겨서 먹을 수 있다고 떠올라서, 사마귀를 잡아서 먹어 보기도 했다지요.

  가난한 살림집 어린이는 비록 가난하지만 할머니가 들려주는 말을 곰곰이 새깁니다. 가난하면서도 꿋꿋하고, 가난하지만 이웃을 헤아릴 줄 아는 할머니 모습을 늘 가만히 지켜보고 생각에 잠겼다고 합니다. 어쩌면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서 못 배운 살림을 바로 할머니한테서 배운 셈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이를 어루만지는 사랑이 없이 저마다 배고픔을 털어내려고 집을 나갔다면, 그래도 끝까지 아이 곁에 남은 할머니가 아이한테 착하면서 참다운 마음을 씨앗으로 심어 준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직접 맛보자 공복감이 웬만큼 사라졌다. 그때부터 공원의 꽃이나 잡초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 특히 아침 이슬을 머금은 보랏빛 나팔꽃은 은은한 단맛이 났다. 튀겨 보면 어떨까 싶어 그렇게 해 봤더니 정말 맛있었다. (121쪽)

그 뒤로 매주 작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강둑에 가면 핫도그 가게 부부가 웃으면서 나를 맞아 주었다. “이야, 오늘도 와 줬구나.” 사실 양배추를 써는 일은 딱히 필요없었을 것이다. 내 사정을 눈치채고 그냥 베푸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아주머니 아저씨의 마음을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사랑이 넘치는 이웃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가끔 신을 만났다. 그렇게 느껴지곤 한다. (147∼148쪽)


  엄살을 부리고 싶어도 엄살을 부릴 만한 그늘이 없던 어린이는 참말로 곧게 자랍니다. 어쩌면 이 어린이는 툭하면, 아니 아침부터 밤까지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구름하고 벗삼고, 바람이랑 동무한 터라, 구름처럼 하얀 마음에다가 바람처럼 싱그러운 넋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뛸 듯이 기뻤다는 글쓴이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등학생 나이부터는 드디어 ‘곁일(알바)’을 할 수 있었대요. 적은 돈이지만 살림에 보탤 수 있고, 글쓴이도 비로소 배고픈 나날을 조금은 털 수 있었답니다.

  돈이 없으니 대학교는 생각조차 안 한 채 곁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지내던 어느 날, 곁일을 하던 곳에서 ‘모델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서, 그러면 일삯을 얼마 받는지를 묻고는, 살림돈에 보탬이 되겠구나 싶어서 얼결에 모델을 했는데, 뜻밖에 몹시 사랑을 받았다고 해요.

  곰곰이 돌아보면, 글쓴이는 어릴 적부터 거의 못 먹고 자라서 비쩍 마른 몸이었다는데, 비쩍 마른 몸이되 언제나 들이나 냇가에서 하늘바라기를 했으니 얼굴이 매우 맑았으리라 봐요. 아마 이런 젊은이는 드물었겠지요. 모델이 되려는 공부나 훈련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삶에서 우러나온 고운 낯빛이나 몸매인 사람은 드물었겠지요. 억지로 몸매를 날씬하게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으나, 저절로 날씬한(?) 몸매인 사람은 참말 보기 힘들었겠지요.


그저 슬퍼서 눈물만 흘렀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나를 키우고 응원해 주던 할머니에게 해 드린 것도 없이 뭐 하고 살았나 싶어 회한의 눈물이 온몸을 덮쳤다. 그 이후로 내 사전에서 ‘언젠가’ ‘조만간’이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190쪽)


  《엄살은 그만》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글쓴이는 모델로 꽤 잘나가면서 돈을 넉넉히 벌어 이제 가난한 살림은 끝이로구나 하고 여겼대요. 그런데 모델로 꽤 잘나가다 보니 너무 일이 많아 바쁜 나머지 할머니를 보기 어려운 하루였답니다. 돈을 잘 버는 기쁨으로 ‘돈 쓸 틈마저 없었을’ 텐데, 한창 바쁘게 일하던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서 ‘돈을 잘 버는 살림’이란 또 뭔가 하고 크게 뒷통수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돈을 아무리 번들 느긋하게 쓸 수 없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어요. 그토록 어렵게 어린 나날을 보내는 동안 저를 돌본 할머니하고 느긋하게 지내지 못했다면, 잔뜩 그러모은 돈이란 무슨 뜻이 있겠어요.

  책 하나에 흐르는 줄거리만 좇는데에도 찡하면서 애틋합니다. 글쓴이 어제하고 오늘을 맞대어 본다면,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았으면 오늘도 오늘 같지 않았구나 싶어요.

  어제 괴롭거나 슬펐더라도 오늘까지 괴롭거나 슬프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까지 괴롭거나 슬프더라도 모레에는 다른 삶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엄살은 그만”이라는 말은, 우리 삶을 괴로움이나 슬픔에 허덕이도록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느낍니다. 어제를 지나 오늘을 걷는 하루를 더욱 씩씩하게 내딛으면서, 우리한테 다가올 모레에는 새로운 길을 열겠다는 몸짓이지 싶어요.

  넘어졌어도 툭툭 털고서 일어나 방긋 웃는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저도 어른으로서 넘어지거나 부딪히거나 깨지거나 얻어맞거나 자빠지는 일을 치를 적에 “엄살은 그만”이라는, “다시 웃는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씩씩하게 살자고 생각을 추스릅니다. 2017.12.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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