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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ㅣ 문학의전당 시인선 268
송문희 지음 / 문학의전당 / 2017년 10월
평점 :
시를 노래하는 말 315
내 펄떡이는 왼쪽은 어디인가?
―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송문희 글
문학의전당, 2017.10.23. 9000원
견딘다는 것은 왼편에 몸을 기댄다는 것,
목련꽃이 왼편으로 기울고 동백꽃 왼편이 더 붉은 것도
봄의 심장이 왼편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송문희 님 시집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문학의전당, 2017)를 읽는데 책이름하고 같은 이름인 시를 읽다가 ‘왼편’이라는 낱말에 살짝 웃음이 납니다. 얼마 앞서 아이들하고 이웃님 자동차를 함께 타고서 나들이를 하는데, 자동차 길찾기 기계가 읊은 말을 큰아이가 물었어요. “아버지, ‘우회전’이 뭐야?”
우리 집 큰아이나 작은아이는 ‘우회전’을 모릅니다. ‘좌회전’도 모르지요. ‘직진’도 몰라요. 우리 집 아이들이 읍내에서 택시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더러 기사님한테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을 이끌어 보렴 하고 얘기하면, 아이들은 “왼쪽으로 돌고요”나 “오른쪽으로 가시고요”나 “바로 앞으로 가셔요”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왼쪽·오른쪽·바로 앞으로’라 말하면 기사님은 거의 못 알아듣습니다.
한 뚝배기면 속이 든든하고예 고기 몇 저름 다 지 몫이니
인정머리 없이 다투어 먹을 일 없고예
차려 먹기 귀찮은데 두세 끼니 걸러도 거뜬하지예
젤로 좋은 거는예, 속이 뜨뜻해져서
오래 살고 있는 내가 다 용서가 되는 거라예 (행복의 온도)
니 미신이라고 대충대충 대답만 하제
엄마 말 단디 듣거래이
니는 전에도 엄마 말 안 들어갔고…… (파랑주의보)
우리 몸에 피가 돌도록 펄떡이는 염통은, 심장은 왼쪽에 있다고 해요. 더러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데 거의 모든 사람은 왼쪽에 있다지요. 왼가슴, 왼손, 왼쪽, 이런 ‘왼’붙이 말을 떠올려 봅니다. ‘오른’이 붙는 말은 ‘바른쪽’이라고도 합니다. 오른쪽을 바른쪽이라 한다면, 왼쪽은 안 바른쪽이 될까요?
어릴 적에 학교에서 “‘바른손’을 들라”고 교사가 흔히 읊던 말을 문득 떠올립니다. 왜 오른손만 바른손이 되어야 했을까요? 왜 왼손잡이를 나쁘게 보는 말을 사회 곳곳에서 퍼뜨렸을까요? 오른가슴 아닌 왼가슴에 있는 펄떡이는 숨결을 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학교나 사회는 가로막으려 했을까요?
야가 오늘 제일 물올랐다 아이가
제값 받을라모 잘 모셔야제
손주 돌반지 하나 살라모 멀었다
금값이 하도 올라
열댓 번은 내다 팔아야제 (열무장수)
시장은 꽃밭
장미꽃 전대, 목단꽃 전대, 제비꽃 전대, 연꽃 전대
생선도 채소도 과일도 쌀도 양말도 커피도
꽃 한 다발씩 허리에 차고 있다 (꽃 전대)
시집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에 흐르는 꽃내음을 읽습니다. 돈주머니가 꽃밭이라는 이야기를 읽다가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시골 아지매나 할매 옷차림을 보면, 일옷이든 마실옷이든 으레 꽃옷이기 일쑤입니다. 그래요, 시골 아지매나 할매는 참말로 ‘꽃옷’을 입습니다. 꽃치마에 꽃바지입니다. 시골 아지매나 할매가 일하는 밭자락도 꽃밭이지요. 풀꽃이요 들꽃이요 남새꽃입니다.
이러면서 아지매나 할매가 짓는 살림은 ‘꽃살림’이로구나 싶어요. 꽃삶을 여밉니다. 꽃밥을 짓습니다. 꽃말을 아이한테 들려줍니다. 이모저모 꽃판이요 꽃마당이요 꽃누리인, ‘꽃집’이 되겠네요. 요즈음 떠도는 꽃길이 아니더라도 시골길을 꽃길로 가꾸는 아지매나 할매 손길이라고 할까요.
밥상 차릴 때에 한 잔
손님 오실 때 한 잔
살기 좋을 때 한 잔
살기 힘들 때 한 잔
한 시절 탈탈 다 털어 마시고
이제 한 모금 남은
아버지 (소주병)
내 펄떡이는 왼가슴을 묻습니다. 내 기운차게 뛰는 왼쪽은 어디인가를 묻습니다. 나이들어 힘을 잃고는 소주 한 병을 시렁 어디엔가 슬그머니 감추고서 한 잔씩 아주 달게 고마이 마시는 이웃님 늙은 아버지 모습을 그려 봅니다. 우리한테 가슴이 펄떡이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서로 가슴을 환하게 열어젖히면서 마주하는 너른 터는 어디일까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는 일을 그립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손을 맞잡을 마을을 그립니다. 차츰 왼쪽으로 기우는 시인이 걷는 걸음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나도 어쩌면 나 스스로 모르게 왼쪽으로 기울면서 살림을 짓지는 않나 하고 그려 봅니다. 왼가슴에 오른손을 얹어 봅니다. 오른가슴에 왼손을 얹어 봅니다. 두 손을 새롭게 맞잡고서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내가 빙긋 웃음을 지을 적에 똑같이 빙긋 웃음을 지으면서 두 팔을 벌려 안기려는 아이들을 마주봅니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하루가 즐거울 수 있다고 들려주는 시인이 아니더라도, 웃음 하나로 말 한 마디로 몸짓 하나로 하루가 즐거울 수 있지 싶어요. 한 해가 저물면서 새롭게 찾아오는 한 해에는 두 다리로 어떻게 서면서 펄떡이는 가슴을 느낄 적에 새삼스레 즐거울까 하고 조용히 꿈을 그립니다. 2017.12.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