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철학 - 문재인 정부에 보내는 한 철학도의 물음
황광우 지음 / 풀빛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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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촛불을 들자 나라가 바뀌다
― 촛불 철학
 황광우 글
 풀빛, 2017.6.30. 16000원


  ‘청소년헌장’을 정부에서 막 내놓을 즈음을 떠올립니다. 1990년이지 싶은데, 그때 중학교 3학년이던 저는 청소년헌장이 막 나온 일을 놓고 학교에 따졌습니다. 나라에서 청소년헌장을 내놓았다고 하는데 왜 우리(청소년)한테 그 헌장 줄거리를 안 알려주느냐고 물었어요. 신문이나 방송에 청소년헌장을 내놓았다는 말만 있을 뿐 정작 줄거리가 무엇인지 적힌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학교에서는 중3이 고등학교 입시 공부를 안 한다며 꾸지람만 했습니다. 담임 교사도 다른 교사도 그저 제 머리통을 출석부로 때리거나 비아냥거리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서 한 달 가까이 청소년헌장 줄거리를 찾아서 알려 달라고 하니, 나중에 되어서야 딱 이레만 건물 문간에 종이로 옮겨적은 청소년헌장을 붙여놓았습니다. 이레 뒤에는 떼어서 없애더군요.


실업과 시험 사이에서 우리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다. 25만 명이 공무원 시험에 몰렸다. 경쟁률이 50대1이다. 한 명의 합격자를 위해 49명이 낙오되어야 하는 이것은 시험이 아니다. 죽음의 행진이다. (9쪽)

독재집단이 국민을 꼬신 당근, 그것은 성장이었다. 박정희는 성장이라는 전쟁의 맨 선두에 서서 이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 행세를 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박정희가 선택한 전략은 불귱형 성장전략이었고 … 박정희와 그의 군부집단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구실삼아 대한민국을 거대한 병영으로 바꾸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목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았고, 교사들은 독재자의 지침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독재의 충직한 하인이 되었다. (22, 23쪽)


  ‘애버트 인권상’을 받은 촛불잔치를 떠올립니다. 숱한 사람들이 골골샅샅 촛불을 들고 모인 자리는 촛불모임일 수 있고, 촛불집회일 수 있으며, 촛불혁명일 수 있습니다. 얼마 앞서 독일에서 애버트 인권상을 한국 촛불한테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제 마음속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촛불잔치를 했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총이나 칼이 아닌 촛불을 들었어요. 주먹다짐이나 발길질이 아닌 노래를 불렀습니다. 촛불 한 자루를 두 손으로 고이 쥐고서 노래 몇 마디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평화로운 나라를 꿈꾸는 뜻을 빌었지요. 그래서 이러한 자리에 모인 우리들이 저마다 ‘잔치’를 했구나 싶어요. 즐거운 잔치라고 할까요. 어두컴컴하고 갑갑하며 고단한 나날에도 즐겁게 모여서 어깨동무를 한 잔치마당이었다고 느낍니다.


만일 전두환 정권이 농민의 정권이었다면, 우선적으로 농어민의 애간장을 녹이는 농가 부채를 탕감했을 것이다. 만일 전두환 정권이 노동자의 정권이었다면, 말로만 산업전사라 공치사할 게 아니라 최소한 산업재해로 불구가 된 노동자의 복지에 앞장섰을 것이다. (66쪽)

전두환 시절에도 그렇게 많은 전경들이 새까맣게 깔리지 않았는데,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밑에서 1750명의 노동자가 일터를 잃고 전경이 공장을 점거하는 폭압이 자행되고 있었다. (174쪽)


  황광우 님이 쓴 《촛불 철학》(풀빛, 2017)이라는 책을 새삼스레 읽었습니다. 우리가 두 손 모아 뜻을 밝힌 촛불이란 무엇이었을까 하고 돌아본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우리가 촛불 한 자루를 들고서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짚고, 우리가 촛불 한 자루를 들고서 이 땅에 새롭게 심기를 바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를 다루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삼성이 벌여온 뇌물 공여의 테이프에 의거하여 비리를 폭로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였다. 더욱 노회찬 의원은 법사위 소속 의원이 아니던가? 그런데 노 의원이 관련 인물을 공개하자, 검찰은 오히려 노 의원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여 버렸다. 고소한 이는 고교 동창 황교안. 잡으라는 범인은 잡지 않고 잡으라고 신고한 의원만 족친 애꿎은 사건이었다. 결국 삼성 X파일에 담긴 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노회찬 의원은 대법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MB 정권하에서 말이다. (155쪽)


  오랜 독재정권을 몰아낸 자리에 들어선 새로운 정치 지도자도 예전 독재자하고 엇비슷하게 전투경찰을 끌어모아서 노동자를 억눌렀습니다. 새롭게 나라를 가꾸겠다고 한 정치 지도자도 ‘삼성 장학금’을 받은 일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안타까우나 우리 민낯입니다.

  정치 우두머리를 바꾸었대서 나라가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투표 하나만으로는 나라가 아름답게 설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나라를 바꾸려면 정치 우두머리 한두 사람이나 몇몇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줄 우리 스스로 뒤늦게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촛불이란, 나라를 바꾸려면 우리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은 몸부림이지 싶습니다. 마을과 집과 고을도 함께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깨달은 몸짓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요.


알고 보니 베트남전쟁은 광기에 찬 미국인들의 침략전쟁이었고, 박정희는 달러 몇 푼을 받으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미국의 침략전쟁에 총알받이로 팔아먹은 것이었더구나. 그것이 자주 독립의 자세이고, 인류 공영에 이바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래시계 세대들은 기만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강자에게는 굽실대고 약자에게는 으르렁거리는 노예근성을 베트남 땅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262쪽)


  《촛불 철학》을 쓴 황광우 님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터무니없다 싶은 일을 낱낱이 적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 저런 뜬금없는 일, 그런 바보스러운 일 들을 가만히 읽다 보니, 모두 하나로 맞물리는구나 싶어요.

  무엇인가 하면, 나라에서는 청소년을 입시에 가두거나 옥죄려 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도 아이가 청소년 즈음 되면 이제 더는 책을 안 읽히고 입시학원이나 입시교재만 곁에 둡니다. 나라도 여느 사람들도 청소년이 생각을 새롭게 지펴서 삶을 새롭게 갈고닦는 길하고 등지도록 내모는 얼거리예요. 사회에 눈을 감고 입을 닫으며 귀를 막도록 내몬다고도 할 만해요.

  그런데 촛불잔치에 누가 모였을까요? 골골샅샅 촛불잔치에 어떤 사람이 잔뜩 모였을까요? 바로 청소년입니다. 입시공부가 아닌 삶짓기를 헤아린 청소년이 참으로 많이 모였어요. 서울에서뿐 아니라 전라도 고흥 같은 자그마한 시골에서까지 시골 청소년이 저희끼리 푼푼이 돈을 모아서 버스를 빌려 서울 광화문까지 달려가곤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참으로 희한한 나라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해마다 20조여 원을 투입하고 있고,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해마다 자식들 학비로 20조여 원을 부담하고 있는데도, 교육 문제 하나 제대로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답답한 현실이다. (305쪽)


  전남 고흥은 요즈막에 ‘경비행기 시험장’을 군 행정에서 끌어들이려고 하는 일 때문에 몸살을 앓습니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갯벌을 다시 바다로 돌리는 일에 마음이며 힘이며 돈을 쓰지만, 고흥에서는 갯벌을 메운 땅을 다시 바다로 돌리는 일에는 마음도 안 쓰는데다가, 이 자리에 ‘경비행기 시험장’을 끌어들이겠다며 벌써 100억이 넘는 돈을 썼다고 하며, 더욱 어마어마한 돈을 쓰려 한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시골 군인 고흥에서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서 촛불을 들거나 1인시위를 합니다. 나라뿐 아니라 작은 지자체도 아름답기를 바라기 때문에 촛불을 들거나 1인시위를 합니다. 돈에 휘둘리는 정책이 아닌, 즐겁고 아름다운 제살림을 찾기를 바라는 뜻에서 작은 두 손을 모아 촛불을 들거나 1인시위를 합니다.


지금 180만 명이 무엇 때문에 군사적 대결을 벌이고 있는가? 러시아의 남침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요, 일본의 북침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다. 무언가? 그것은 같은 동포들끼리 서로의 목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군대에서 그 추운 겨울밤 새벽 2시에 경계근무를 설 때, 왜 나는 이 무모한 대결의 노예로 서 있어야 하는지 치를 떤 적이 있다. (349쪽)


  우리 사회가 민주하고 평화를 바라보려면 어른도 어른대로 민주하고 평화를 생각해야 하지만, 어린이하고 청소년이 민주하고 평화를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입시하고 대학교만 바라보는 물결이 아니라, 제 삶을 바라보고 제 고장을 바라보며 제 꿈을 바라보는 물결이 일렁여야지 싶습니다.

  작은 지자체 시골 청소년이 굳이 서울로 나아가지 않아도 작은 시골자락에서 꿈을 지피며 펼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서울 청소년이 서울을 벗어나 작은 시골에 깃들어 새롭게 꿈을 키울 수도 있어야지 싶습니다. 끝없는 다툼질을 내려놓고, 새롭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이야기책 《촛불 철학》은 우리 어른들한테 한 가지를 묻습니다. 이 나라가 참말 민주나 평화가 맞는지 묻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켜보거나 헤아리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한테 한 가지를 물어요. 청소년마다 꿈이 무엇이고 사랑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느냐고 물어요.

  촛불 한 자루를 든 모든 사람이 함께 받은 인권상이란, 민주도 평화도 꿈도 사랑도 늘 우리가 스스로 짓고 가꾸며 찾을 수 있다는 대목을 잘 밝혀 주리라 봅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자그마한 촛불잔치가 퍼지기를 빕니다.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는 기쁜 잔치가 퍼지기를 빕니다. 대학교에 가지 않고도, 고등학교나 중학교만 마치고도, 모든 젊고 푸른 벗님이 꿈하고 사랑을 키울 수 있는 싱그러운 마을을 바랍니다. 2017.12.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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