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최측의농간 시집선 3
심재휘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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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3


할머니 디딜방아에 깃들던 바람소리는
―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심재휘 글
 최측의농간, 2017.10.25. 8000원


대숲이 빛나는 오후에
외할머니의 디딜방아 밟는 소리
동굴에 숨어 듣기가 좋았으나 정작
매혹적이었던 것은 동굴이 내는
바람소리였습니다 (동굴 속의 산책)


  부엌에 서서 밥을 지을 적에는 오로지 밥내음이나 국내음을 맡습니다. 도마에 얹어서 손질하는 먹을거리 냄새를 맡고요. 다른 데에는 눈길도 마음도 쓰지 않습니다.

  아이들 곁에 누워서 이마를 쓸어넘길 적에는 아이들이 밤에 새근새근 잘 자기를 바랍니다. 하루를 신나게 놀았으니 느긋하게 꿈나라를 누비면서 새롭게 기운을 얻어 아침에 기쁘게 일어나기를 바라요. 이밖에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 합니다.

  때때로 몸이 아파서 드러누운 날, 문득 제 몸을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할 적에는 이 일만 생각하고, 저 일을 할 적에는 저 일만 생각해요. 이러면서 몸을 따로 생각한 적은 없지 싶어요. 몸이 아파 아무것도 못 하고 밥술조차 못 뜨는 동안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저를 이루는 몸은 무엇이고, 이 몸이 무엇을 바라는가를 귀여겨듣기로 합니다. 몸이 내는 소리를 들으려 하고, 몸이 끙끙대면서 조금씩 낫는 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나는 노상 자판기에 기대어
캔 속의 코카콜라가 얼마나 남았는지
들여다본다 참 맑은 그 어둠의 바깥은
봄날이었고 아 그날
내게 내어준 바람의 한쪽 어깨는
넓고 편안했다고 함부로 기억할 것이다 (기울어 있는)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최측의농간, 2017)을 읽습니다. 몸이 튼튼하다고 여기던 때에는 제법 세게 부는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니 하지요. 몸이 아프다고 여길 때에는 살며시 부는 바람에도 후들후들합니다. 잔바람조차 좀처럼 못 견딥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도 이와 같습니다. 어른한테는 대수롭지 않다 싶은 바람에도 아이들은 춥습니다. 어른으로서는 대단하지 않게 지나칠 만한 일도 아이들은 오래도록 매달립니다.

  아프거나 여린 사람한테는 ‘알맞다 싶은’ 세기를 찾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파서 밥은커녕 죽조차 못 먹는 사람한테는 알맞다 싶은 끼니란 따로 없습니다. 몸이 아닌 마음이 아프거나 여린 사람한테도 알맞다 싶은 쓸쓸함이란 따로 없을는지 모릅니다.


제 속의 빛들을
온 힘으로 소진하는
저 나무들의
붉고 찬란한 예감 (지상의 가을)

영동고속도로 길가의 자작나무들
흰 몸들 내가 타관에서 시들어갈 때
이따금 나를 찾아와 주고는 하였는데 (자작나무 흰 몸)


  시인 한 사람은 쓸쓸하다고 느낄 적에 으레 나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아마 시인이 나고 자란 강원도 어느 멧골에서 늘 마주하던 나무를 떠올렸구나 싶어요. 그리고 고향마을로 돌아갈 적마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마음을 달랬을 테고요.

  나무가 있어 집을 짓고 종이를 얻어요. 나무가 있어 불을 지피고 책걸상을 짜요. 나무가 있어 한겨울 드센 바람을 막아 주고, 나무가 있어 한여름 뙤약볕을 막아 줍니다.

  그리고 이 나무는 곧잘 우리 마음을 포근히 달래거나 다독여 주면서 우람하게 자랍니다. 저 숲에서, 저 깊은 멧골에서, 때로는 도시 한복판 찻길에서, 골목집 조그마한 마당 한쪽에서, 나무는 저마다 씩씩하게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뻗으면서 사람들한테 속삭입니다. 쓸쓸하다고 느낄 적에는 이 품으로 오렴, 하고요.


바람의 몸을 하고
바람소리로 중얼거리는 기둥 없는 집
기둥은 누워도 기둥이고
허공의 기왓장은 여전히 지붕이고
올해 아버지는 잃을 것 없는 일흔이시다 (오래된 한옥)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을 적바림한 시인은 시집 앞자락에서 어릴 적에 할머니가 디딜방아를 찧을 적에 ‘방아질 소리’보다 ‘바람소리’를 들었다고 밝힙니다. 시집을 마무리짓는 뒷자락에서는 이제 잃을 것 없이 일흔이 된 아버지 몸에서 휭휭 퍼지는 ‘바람소리’를 듣는다고 밝혀요.

  두 바람소리는 닮은 듯하면서 다릅니다. 또 다른 듯하면서 닮아요. 디딜방아를 찧는 할머니한테서 바람소리가 흐르고, 일흔으로 접어든(2002년 무렵에 이 나이였을 테고, 이제는 훨씬 많은 나이로 접어들었겠지요) 아버지한테서 바람소리가 흐른다면, 시인한테서는 어떤 바람소리가 흐를까요. 그리고 시를 읽는 우리 마음자리에서는 어떤 바람소리가 흐를 만할까요.

  저는 이레 즈음 아무것도 못 먹으면서 끙끙 앓는 동안 새삼스러운 바람소리를 들어 봅니다. 뼈마디 사이에서 불거지는 바람소리, 머리카락 사이에서 흩어지는 바람소리, 이마에서 등허리로 흐르는 바람소리, 또 빈 배이지만 아이들 곁에 누우면 저절로 자장노래를 부를 기운이 샘솟는 바람소리를 느낍니다. 2017.12.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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