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아! 사람아 - 뭇 생명의 삶과 쉼터, 미래세대에게 빌려온 국립공원
윤주옥 지음 / 산지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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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1


지리산 국립공원 쉰 돌에도 철들지 못한 우리
― 지리산 아! 사람아
 윤주옥 글·사진
 산지니, 2017.10.23. 15000원


  지리산은 이 나라 첫 국립공원이며, 국립공원 이름이 붙은 지 어느덧 쉰 해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첫 국립공원이 ‘고작’ 쉰 해밖에 안 된다고 하니, 한국은 퍽 뒤늦은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어요. 일제강점기나 개발독재나 새마을운동이 있기는 했어도, 우리 보금자리를 우리 아이들도 아름다이 누릴 수 있도록 건사하는 데에 마음을 깊이 기울인다고 느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우리는 어느새 샘물이나 냇물이나 우물물을 잊어요. 샘물이나 냇물이나 우물처럼 맑고 시원한 물을 커다란 공장에서 뽑아올려 플라스틱병에 담아서 돈으로 사고파는 ‘한쓰임 먹는샘물(일회용 먹는샘물)’에 익숙합니다. 지리산을 첫 국립공원으로 삼던 무렵만 하더라도 웬만한 시골에서는 냇물을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있었어요. 도시에서도 오랜 마을에는 샘터나 우물터가 있었고요.


어르신이 어렸을 때는 지리산에 곰이 멧돼지보다도 더 많았다고 한다. 호랑이는 3마리쯤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 호랑이 이름이 지리산 순래봉이었다고 한다. 그의 할머니는 순래봉이 걸어가면 만복대 왕억새 위로 등걸이가 보였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고 했다. (17쪽)

부산에 가려면 우선 버스 타는 곳까지 나가야 하는데, 집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서 3시간쯤 걸린다고. 예전엔 1시간 반이면 갔는데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빨리 못 걷는다고 하신다. 새벽녘의 길 나섬. (24쪽)


  너무 지나친 막삽질 때문에 온나라가 끙끙거리는 탓에 맑은 물을 누구나 손쉽게 마시기 어려운 오늘날이에요. 이러다 보니 사람 발길이 없는 깊은 숲이나 바다에서 맑은 물을 따로 뽑아올려서 플라스틱병에 담아서 사고파는 일이 생기는데요, 이때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옵니다. 게다가 플라스틱병을 만들고 나르고 가게에 놓는 데에 드는 자원이 엄청나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거두어 다루는 데에도 끝없는 자원이 들고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물을 물려줄 만할까요. 앞으로도 플라스틱병에 담은 물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또는 막삽질로 망가뜨린 4대강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또는 두 손으로 떠서 언제나 누릴 수 있는 냇물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들은 어쩌면 ‘물이란 가게에 있는 것’이라고 잘못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 흐르는 물이 아닌 페트병 물만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우리가 마시는 물이란 모두 졸졸 흐르는 냇물이라는 대목’을 하나도 모를 수 있구나 싶어요.

  산문책 《지리산 아! 사람아》(산지니, 2017)는 지난 2000년부터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 일을 맡다가 2008년부터 서울을 떠나 지리산 어느 자락에 보금자리를 틀면서 살아가는 윤주옥 님이 온몸으로 만난 지리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삼을 키워 찌고 째서 삼아 삼베옷을 해 입었다. 비누는 없었고 짚을 태워 그 물로 빨래를 했다. 화장 같은 건 할 새도 없었다. 베로 짠 버선을 신고, 신발은 짚을 삼아서 신고 다녔다. 겨울에는 덧버선을 만들어 신었다 … 설날에는 돌도구통에 쌀을 찧어 손으로 비벼 만든 떡으로 떡국을 끓여 먹었다. (38쪽)

여순사건 후 산으로 들어온 빨치산들이 빗점으로 자주 내려왔다. 그들은 돌도구통에 방아를 찧어 놓으면 빼앗아 갔다. 안 빼앗기려고 치마 밑에 넣어둔 것까지 어찌 알고 가져가 버렸다. 시절이 하 수상하던 시절, 정부는 빨치산들에게 은신처와 먹을거리를 제공한다며 마을을 불태우고 마을사람들은 마을에서 쫓아냈다. 그녀 나이 열다섯 살 때였다. (39쪽)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이라는 이름을 듣는 분은 얼핏 이곳이 시민모임이 아닌 관제모임인 듯 잘못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나 ‘국시모’라고도 하는 이곳은 오롯이 시민 힘으로 살림을 꾸리면서 국립공원이 국립공원다울 수 있도록 힘쓰는 작고 알찬 모임이에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놓치거나 지나치는 일이 있으면 다그치고, 정부 기관이 잘하는 일이 있으면 북돋우는, 두 가지를 알맞게 이끌어 가는 곳이라고 할 만합니다.

  저는 지난 열다섯 해 즈음 국시모란 시민모임을 뒷배하는 숱한 이웃님 가운데 하나로 지켜보면서 이러한 일솜씨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국시모 일을 맡는 한 사람이자 지리산 둘레에서 즐거이 살림을 짓는 한 사람인 윤주옥 님이 ‘국립공원 지리산’하고 ‘삶자리 지리산’을 엮어서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이 책을 차근차근 읽어 내렸습니다.


지리산국립공원이 3개 도에 걸쳐 있으니 케이블카도 3개는 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욕망과 욕심의 끝을 보여주는 말들이다. (124쪽)

한 차례 훼손의 광풍이 휩쓸고 간 노고단에 군사시설과 통신시설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이다. 길이 생기고, 차량이 다니고, 사람 발길이 잦아지며, 노고단은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노고단 훼손의 결정타는 1988년에 건설된 성삼재 도로이다. (130쪽)


  길그림을 펼쳐 봅니다. 지리산 또는 지리산국립공원을 둘러싸고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가 맞물립니다. 그런데 시·군으로 치면 남원, 장수, 함양, 산청, 하동, 구례, 곡성, 이렇게 일곱 지자체가 맞물립니다. 지리산하고 매우 가까운 다른 지자체를 보면 진주, 광양, 순천이 있군요.

  이 지자체마다 관광객을 더 많이 끌어모으겠다면서 하늘차(케이블카)를 놓는다고 나선다면, 하늘차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길을 더 닦겠노라 한다면, 관광단지나 휴양시설이나 골프장을 지리산 언저리에 마련하겠노라 한다면, 산을 더 깎거나 냇가에 시멘트를 부어 자전거길을 닦겠노라 한다면, 지리산이나 지리산국립공원은 우리가 사랑할 만한 아름다운 멧자락으로 이어가기는 어려우리라 느껴요.

  국립공원뿐 아니라 국립공원이 아닌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냇물이 아름답다면, 사람 손길이나 발길이나 때를 함부로 안 탔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자동차나 삽차가 함부로 치고 들어오지 않기에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냇물이 아름다우며 정갈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지리산 피아골에 댐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들의 무지막지한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모순덩어리 국가에 대항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177쪽)

국립공원제도를 만든 미국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한 곳도 없다. (186쪽)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비용은 작게는 600억 원에서 많게는 10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1년 예산과 맞먹는 돈이다. 이 돈이 케이블카 건설에 사용되지 않고 교육·복지 예산으로 쓰인다면 이게 오히려 지역 경제에 도움 되는 일 아닐까? (187쪽)


  《지리산 아! 사람아》를 쓴 윤주옥 님은 이 나라 공무원하고 개발업자한테 묻습니다. “지리산 피아골에 댐을 세우겠다는 생각”은 참으로 어떤 머리하고 마음으로 끌어냈는지 궁금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있지요, 이 나라 공무원하고 개발업자 분들한테 안된 말씀이지만, 이분들은 지리산국립공원에 댐을 세우겠다는 무시무시한 계획에 앞서도,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인 여러 곳에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세우려고 하는 계획을 뽑아내기도 했어요. 제가 사는 전남 고흥에도 국립공원 마을이나 국립공원하고 가까운 곳에 지자체가 자꾸 위해시설을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불거집니다.

  무엇보다 4대강사업이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요? 한 사람 머리에서만 나왔을까요? 아니지요. 우두머리 한 사람을 둘러싼 숱한 공무원하고 개발업자가 함께 내놓은 끔찍한 막삽질이었다고 생각해요.

  막삽질을 벌이려 하면서 수백 억이나 수천 억이나 수 조에 이르는 돈을 매우 쉽게 끌어모아서 쓰는 나라나 지자체예요. 그러나 이 돈을, 이 엄청난 돈을, 교육이나 복지에 제대로 쓴다면, 또는 그만 한 돈을 굳이 더 세금으로 걷지 말고 사람들한테 돌려준다면, 이 나라는 좋은 사회와 고운 마을과 맑은 숲을 차분히 지킬 만하리라 봅니다.


7배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초토화된 노고단 정상부는 1991년부터 10년간 전면 통제되었다. 성삼재도로의 포장을 결정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성삼재도로 포장이 지리산국립공원 생태계와 이용 행태를 바꾸고, 1100미터 높이의 성삼재가 도떼기사장으로 변할 것이란 사실을. (208쪽)


  《지리산 아! 사람아》는 앞쪽에 지리산 할머니 할아버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태어나고 자란 지리산하고 얽힌 이야기를 오롯이 할머니 할아버지 삶에 맞추어 들려주어요. 지리산 범 이야기이며, 오롯이 손수 지은 살림으로 먹고살았다는 이야기는 고되면서도 평화롭구나 싶습니다. 지리산에서 밥·옷·집을 모두 손수 지으며 조용히 살던 분들한테는 전쟁무기도 총칼도 없이, 오직 낫하고 호미하고 쟁기하고 도끼로 살림을 지었으리라 느껴요.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고 절구를 찧을 뿐이면서도 아이들한테 살림짓기를 제대로 물려주고 그 터를 오롯이 가꾸었구나 싶습니다.

  이 책 뒤쪽은 지리산을 둘러싼 안쓰러운 막삽질을 마주하면서 이 추레한 흐름을 끊을 길을 찾으면서 마음이 아픈 이야기가 나옵니다. 추레한 흐름이 아닌, 아름다운 국립공원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국립공원 이름이 아니어도 아름다울 우리 마을을 저마다 사랑할 수 있기를 비는 뜻을 담아요.


국립공원과의 동행이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많은 사람과 함께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취하는 과정에서 그 아름다움이 끌어들이는 그림자, 국립공원의 아픔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리산 관통도로, 계곡 내 취사, 불법 산행, 사람들의 발길에 허옇게 드러난 바위와 흙, 무단 채취, 밀렵, 댐과 케이블카, 골프장……. 국립공원은 어딜 가나 신음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게 국립공원이 아름다워서였다. (6쪽)


  국립공원에 막삽질을 들이대려는 이들은 늘 ‘국립공원이 아름다우니 잘 개발해서 돈을 버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답니다. 그런데 국립공원은 왜 국립공원일까요? 국립공원이 국립공원일 수 있는 까닭이란 뭘까요?

  우리 이제는 철든 사람이 되어야지 싶어요. 지리산 국립공원 쉰 해라면, 사람 나이로도 쉰 살인 셈이에요. 쉰 살이라는 나이에 이르도록 우리는, 우리 정치 사회 문화 교육은, 얼마나 철이 들었는지 조용히 물어보고 싶습니다. 2017.12.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글에 붙인 사진은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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