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의 삶
최준영 지음 / 푸른영토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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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적·-의’ 털라면서도 정작 털지 못하네요
― 동사의 삶
 최준영 글
 푸른영토, 2017.11.5. 14800원


  《동사의 삶》(푸른영토, 2017)이라는 책은 글쓴이가 어느 자리에 ‘명사’로 왔으면 하고 부른 일 때문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글쓴이 최준영 님은 ‘명사(名士)’가 아닌 ‘동사(動士)’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자리는 갈 수 없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그러니 《동사의 삶》은 이름값이나 머무르거나 고인 삶이 아닌 ‘움직이는 낮은 자리’에서 짓는 이야기를 다루려는 책이라고 밝혀요.


좋은 문장이란 흔히 발로 쓴 문장이거나 진심이 담긴 문장이라고 하죠.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상투성의 함의를 벗기 힘든 말이죠. 내 생각에 좋은 문장이란 깊은 사유 혹은 의식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문장이에요 … 결국 좋은 문장이란 여러 사람이 좋다고 하는 문장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이에요. (30쪽)


  움직이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하고 궁금하게 여기며 책을 폅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발로 쓴 글은 좋은 글”이라는 말은 뻔한(상투성) 말이라면서, 이녁한테 내키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움직이는 삶을 말하려 하면서 ‘움직임(발로 쓴)’으로 펼치는 글이 좋은 글이 아니라면?

  최준영 님은 ‘깊은 생각(사유)’이나 ‘깊은 마음(의식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밝힙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우리가 발로 삶을 디디지 않고서 깊은 생각이나 마음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깊은 생각이나 마음은 어느 자리에서 길어올릴까요. 훌륭하다는 책을 많이 읽으면 생각이나 마음이 깊어질까요. 책만 읽고 안 움직이는 삶에서 참으로 깊은 생각이나 마음을 길어올릴 만할까요.

  최준영 님은 곧 말을 바꾸어 ‘오늘(지금) 내 마음을 움직이는 글(문장)’이 좋은 글이라고 밝힙니다. 아무튼 ‘움직이다’라는 말로 돌아옵니다. 다만, 글쓴이가 스스로 움직여서 삶을 지어낸 글이 아닌, 읽는이가 스스로 마음을 움직이면 좋은 글이라고 밝힌 셈입니다.

  이 말은 틀리지는 않다고 느껴요. 널리 알려지거나 훌륭하다는 글도 오늘 내 마음에 끌리지 않다면 나로서는 좋다고 느끼기 어렵거든요. 어설프거나 엉성한 글이라 하더라도 오늘 내 마음에 닿는 어떤 결이나 느낌이 있으면 좋다고 느낄 테고요. 그렇지만 최준영 님이 밝히는 ‘좋은 글’ 이야기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이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삶을 지으면서 한 올 두 올 길어올린 깊은 생각이나 마음을 담는 몸짓을 살짝 업신여기거나 밀치는 느낌이 깃드는구나 싶습니다.


공부에는 끝이 없어요. 다만 계속 이어감으로써 비로소 머릿속에 작은 공간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에요. (36쪽)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가 아니에요. 그것을 통해 아이의 시간의식, 역사의식, 자기의식과 같은 고차적 의식 내지 고등정신 기능을 일깨우고 아이의 뇌가 정신적 문법을 재생산하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죠. (47쪽)


  《동사의 삶》이라는 책은 글쓴이가 머리말부터 마지막 쪽까지 ‘움직이는 삶’을 담은 책인 듯 보였지만, 정작 처음부터 끝까지 퍽 어려운 말이 줄곧 흐릅니다. 움직이기보다는 고인 글이라고 할까요.

  아이한테 책을 읽히는 살림을 놓고서 쓰는 말도 퍽 어렵지요. 우리가 ‘움직이는 삶’일 적에 이렇게 말할 만한지 아리송해요. 아이한테 책을 읽으면서 아이가 스스로 오늘과 어제와 나를 새롭게 돌아보면서 생각을 슬기롭게 살찌우면서 말을 새롭게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내면 좋을 텐데요.

  글쓴이는 글을 쓸 적에 세 가지 몹쓸 녀석을 털어내야 한다면서 ‘것·-적·-의’를 손꼽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것·-적·-의’를 털어내자고 밝힌 글에 ‘것·-적·-의’가 버젓이 나와요.


문장에서 ‘것’이라는 지시어를 남발하는 습관은 좋아 보이지 않아요. 서술어에서도 그렇거니와 그 외 문장성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가능하면 ‘것’은 생략하거나, 바꿀 필요가 있는 거죠. (173쪽)

습관적으로 명사 뒤에 ‘적’을 붙이게 되죠. 강의 중 안 붙여도 된다고 했더니 항의까지 하네요. (182쪽)

3번, 6번, 7번의 경우 ‘와의, 와의, 에서의’ 등의 이중조사를 쓰고 있는데요, 이건 정말 지양하면 좋겠어요. (183쪽)

조사 ‘-의’의 반복을 피하라. (184쪽)


  “‘것’은 생략하거나, 바꿀 필요가 있는 거죠”는 “‘것’은 빼거나, 바꾸어야지요”로 손볼 만합니다. “습관적으로 명사 뒤에 ‘적’을 붙이게 되죠”는 “버릇처럼 ‘적’을 붙이지요”로 손볼 만해요. “7번의 경우 ‘와의, 와의, 에서의’ 등의 이중조사를 쓰고 있는데요”는 “7번은 ‘와의, 와의, 에서의’ 같은 이중조사를 쓰는데요”로 손볼 만하고요. “조사 ‘-의’의 반복을 피하라”는 “토씨 ‘-의’를 되풀이하지 마라”로 손보고요.

  글쓴이 최준영 님이 《동사의 삶》이라는 책을 쓰기로 하셨다면 조금 더 움직이는 삶을 드러내 주면 좋으리라 봅니다. 가만히 보면 책이름에도 ‘-의’를 넣어 “동사의 삶”이라 했어요. 글에서 ‘-의’를 털어야 알맞다면 “동사라는 삶”이나 “동사 살림”이나 “동사로 살다”처럼 적을 만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글쓴이 삶보다는 다른 책에서 따온 글이 대단히 깁니다. 어느 꼭지는 아예 다른 책에서 따온 글로만 채웁니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삶이 아닌, ‘읽고 따온’ 삶이로구나 싶어요.

  조금 덜 읽어도 좋으니 조금 더 움직여 본다면 좋겠어요. 조금 덜 따와도 좋으니 스스로 기쁘게 움직이며 지은 삶을 수수하게 담아내 본다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때에 비로소 움직이며 살아가는 즐거운 이야기가 꽃을 피우리라 생각해요. 2017.11.2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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