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1.18.


토요일 낮에 택배가 왔다. 토요일에 오는 택배는 더없이 고맙다. 우리야 시골사람이라 요일 없이 살지만, 요일에 맞추어 일하시는 분들이 토요일에까지 짐차를 달리시니. 낮에는 유자를 땄고, 저녁에는 밥을 지으면서 그림책을 편다. 오늘은 밥하면서 느긋하게 책을 읽으려고 저녁거리 밑손질을 모두 마쳐서 손에 물을 안 묻히고 냄비가 끓기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움직인다. 밥냄비도 국냄비도 천천히 끓고, 나도 천천히 간을 보면서 저녁을 짓는다. 《이제 나는 없어요》라는 그림책을 읽는데, 이제 이 지구라는 별에서 자취를 감춘 여러 숲짐승 이야기가 흐른다. 이제 지구에 없으나, 저 하늘나라에 있으나, 또 사람말을 하지 않으나, 이 그림책 《이제 나는 없어요》는 사라진 숲이웃이 사람한테 어떤 말을 짤막히 남기고 싶은가를 가만히 헤아리면서 들려준다. 책을 다 읽을 무렵 저녁짓기를 마친다. 큰아이만 배고프다 해서 큰아이 혼자 밥상맡에 앉아 수저를 들고, 나는 그림책 줄거리를 더 돌아본다. 이제 지구에 없는 이웃이란? 아직 지구에 있는 이웃이란? 여기에 우리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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