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모금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말은 모두 우리 어버이가 스스로한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얘야, 방을 좀 치워야 하지 않겠니?”는 어버이로서 세간을 얼마나 살뜰히 건사하느냐를 돌아보도록 스스로 하는 말이에요. “얘야, 동생한테 말을 곱게 하면 좋을 텐데?”는 어버이로서 문득 아이한테 안 고운 말을 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되새기는 말이지요. 우리 집은 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스스로 물을 따라서 마시도록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한두 살 즈음이나 서너 살에는, 또 예닐곱 살이 되더라도 아이들은 곧잘 물을 쏟거나 흘릴 뿐 아니라, 때로는 물병이 손에서 미끄러지며 째쟁 소리를 내며 깨지기도 해요. 아이가 스스로 물을 따라서 마시도록 하는 데까지 얼마나 숱하게 걸레질을 하고 깨진 물잔이나 물병을 치워야 하는지 몰라요. 밥그릇에 붙은 밥알 하나가 흙지기 땀방울을 비롯한 숲내음이 오롯이 깃든 먹을거리라면, 물잔에 따르는 물 한 방울은 우리를 둘러싼 온 지구가 서린 마실거리가 되겠다고 느낍니다. 파란 하늘을 담은 물 한 잔을 파란 물병에 받아서 파란 물잔에 따릅니다. 아이가 물 한 모금 마시는 몸짓을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2017.10.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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