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배운다
우리는 날마다 배우면서 새롭게 삽니다. 저는 이 대목을 두 아이랑 함께 살아가며 늘 새삼스레 배웁니다. 두 아이가 아직 저한테 찾아오지 않던 무렵에는 이 대목을 어렴풋이 헤아리기만 했고, 곁님이 아직 저하고 보금자리를 짓지 않던 무렵에도 이 대목을 살짝 바라보기만 했어요. 오늘 큰아이 몸짓하고 모습을 오롯이 지켜보면서 아이들이란 언제나 “온몸으로 배운다”고 다시 배웁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늘 “온몸으로 배운다”고 할 테고요. 큰아이는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한참 잘 달리다가, 사이 쉼터에서 속을 게웠어요. 시외버스를 타기까지 이럭저럭 맑은 얼굴인가 싶었으나 속에 담은 응어리가 있었기에 이를 게움질로 드러냈더군요. 큰아이한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큰아이는 서울에서 고속버스역으로 가려고 전철을 갈아타는 길에 그만 지갑을 떨어뜨렸어요. 큰아이는 손에 지갑을 들고 걸었거든요. 큰아이 곁에서 곁님이며 할머니이며 여러 사람이 지갑을 손에 들고 다니지 말고 가방에 넣으라 숱하게 말했어요. 그렇지만 큰아이는 이 말을 내내 흘렸지요. 큰아이는 칠칠하지 않은 몸짓이 아니었어요. 다만 어쩌다가 손에서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큰아이가 제 손에서 지갑을 꼭 한 번 떨어뜨린 자리가 마침 전철을 탈 무렵이요, 전철을 탈 무렵에 아주 작은 틈에 지갑을 쏙 떨어뜨렸을 뿐입니다. …… 곁님은 집으로 돌아가서 지갑을 새로 짓자고 이야기합니다. 떨어뜨린 지갑에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고,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마련하여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버지는 철없던 무렵 대단히 칠칠맞지 못해서 사진기랑 가방이랑 숱하게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았다고 이야기합니다. …… 큰아이는 “어머니 아버지한테 돈 많이 모아서 주고 싶었는데.” 하면서 한참 울었어요. 시외버스역까지 닿는 동안 울음바다였어요. 큰아이는 일산이랑 서울을 거친 마실을 하는 동안 십만 원 가까이 돈을 모았답니다. 적잖은 돈이 있는 줄 아는 큰아이인 터라 아쉬움도 아픔도 클 수 있어요. 저는 큰아이한테 “네가 잃은 돈보다 열 곱이 넘는 돈을 곧 얻을 수 있어. 걱정을 잊어 보렴.” 하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우리한테는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것이란 없다고, 우리 곁에 알뜰히 있다가 사라지거나 놓치는 모든 것은 잃거나 잊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하는 흐름일 뿐이라고 이야기해 보았어요. 그런데 이런 말 저런 이야기는 모두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이나 이야기라기보다 바로 제가 저한테 들려주는 말이나 이야기이지 싶어요. 아이가 온몸으로 배우는 곁에서 어버이로서 꼭 배워서 새롭게 깨달을 대목이 있는 하루라고 느껴요. 사름벼리야, 네 가슴에는 한결같이 샘솟는 기쁨이라는 물줄기가 있단다. 이 물줄기는 네 눈물을 씻어 주고, 네 아쉬움을 달래 주면서, 네가 살아갈 앞길에 싱그러운 노랫결로 새로운 이야기를 속삭여 준단다. 가만히 눈을 감고 파란 하늘 같은 바람을 그리렴. 2017.10.1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