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를 읽는 큰아이는
큰아이가 어제부터 《하이디》를 읽습니다. 그동안 만화영화로만 보던 작품인데, 드디어 큰아이한테도 만화영화가 나온 바탕인 글로 빚은 문학을 읽도록 내어줍니다. 한참 망설였어요. 완역판이라는 《하이디》는 틀림없이 ‘완역’이기는 하되, 번역은 다 했어도 글씨나 말씨는 제대로 가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법 두툼한 이 《하이디》를 아이에 앞서 먼저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 책은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몽땅 뜯어고치지 않고서야 도무지 말이 될 수 없구나 하고요. 이렇게 하자면 번역보다 오히려 더 힘든 일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한테 ‘고전’이 될 만한 문학이라고 한다면, 더 빨리 완역을 한다는 데에 마음을 쓰기만 하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이 문학이 참다이 고전이 될 수 있도록 ‘직역 말씨’나 ‘번역 말씨’를 ‘한국 말씨’가 되도록 숱하게 고치고 가다듬고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이래저래 망설이다가 아버지가 살짝 글손질을 한 책을 큰아이한테 읽히기보다는 글손질을 안 한 책을 읽히기로 합니다. 일부러 한 권 더 장만했습니다. 아이가 책에서 어설피 받아들인 말씨는 나중에 아버지가 찬찬히 짚어 주면 될 테고, 아이로서는 어떤 책에서나 줄거리를 제대로 살펴서 읽도록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다만 엉성하거나 어설픈 번역은 제발 끝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10.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