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9.30.


한가위를 앞두고 고흥에서 조용히 노닐며 일하려고 한다. 어제 마을 빨래터를 치우려다가 어제 하루는 읍내를 다녀오며 저잣마실을 하느라 짬을 못 냈다. 오늘 두 아이랑 함께 빨래터 나들이를 간다. 오늘도 두 아이는 야무지고 씩씩하게 일손을 잘 거든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일손을 잘 거들어서 사랑스럽지 않다. 이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하고 웃으며 함께 일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빨래터를 말끔하게 치운 뒤에 나는 담벼락에 앉아서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을 읽는다. 두 아이는 빨래터에 새롭게 고이는 물에 몸을 담그면서 논다. 처음 시집을 펼 적에는 책이름을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거의 모든 시마다 한자를 덧달기에 뭔 글을 이렇게 쓰는가 하고 아리송하다. 눈을 눈이라 하지 않고 ‘눈(目)’처럼 자꾸 쓰니, 한국말 ‘눈’이 뭔가 모자라거나 덜떨어지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기면(嗜眠)에서는 꿈도 불순하다”는 뭔 소리일까? 한국말로 수수하게 “졸 때에는 꿈도”라 하면 시가 안 되나? “겹겹 포개놓은”이나 “남긴 유품” 같은 겹말도 자꾸자꾸 나온다. 가만히 보면 시집에 붙인 이름부터 ‘느낌’이 아닌 ‘감(感)’이다. 시집을 덮는다. 아이들은 더 놀라 하고 집으로 먼저 돌아가서 밥을 짓는다. 콩밥을 끓이고 국수를 삶는다. 가을날 햇볕이 매우 따갑고 눈부시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