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13. 가위손을 쥐고 꽃길을 걷고


  책을 부치려고 봉투질을 하다 보면 테이프를 자주 써야 합니다. 이제까지 가위 한쪽 날로 테이프를 끊어서 쓰다가 아무래도 번거롭구나 싶어서 읍내 문방구에 가서 연장을 따로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문방구 일꾼한테 “테이프를 끊어 주는 연장 있잖아요.” 하고 말씀을 여쭙는데, 이 연장을 두고 어떤 이름으로 말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읍내 문방구 일꾼은 “아, 가위손이요.” 하고 알아들으신 뒤 물건을 내어줍니다.

  넓은 테이프를 끼워서 척척 끊을 수 있도록 나온 연장은 이삿짐을 나르는 분들이든 상자를 꾸려 소포를 부치는 분들이든 무척 흔하게 써요. 제가 읍내 문방구에서 장만한 연장에는 ‘가위손’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이 이름 말고도 ‘커터기·카타기·컷터기’처럼 영어를 섞거나 ‘절단기’ 같은 한자말을 쓰기도 해요.

  가만히 생각하면 영화 〈가위손〉에서 좋은 보기를 얻으며 테이프를 끊는 연장에 ‘가위손’ 같은 이름을 붙였구나 싶어요. 한국말사전에서 ‘가위손’을 찾아보면 “1. 삿자리 따위의 둘레에 천 같은 것을 빙 돌려 댄 부분. 또는 그 천 2. 그릇이나 냄비 따위의 손잡이”를 가리키는 뜻풀이가 나옵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가위손’은 가장자리를 대는 천이나 가장자리에 있는 손잡이를 가리키니, 테이프를 끊는 연장하고는 사뭇 달라요. 재미나게 잘 살려서 쓰는 낱말이 하나 있고, 이 땅에서 오래도록 흘러온 살림말 하나를 새삼스레 익혀 볼 수 있어요.

  요즈막에 사회에서 ‘흙수저·금수저’ 같은 말이 나돌면서 ‘꽃길’이라는 말이 함께 나돕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꽃길’이 올림말로 있습니다만 “꽃이 피어 있거나 꽃으로 장식된 길”이라고만 풀이해요. 꽃이 있으니 꽃길일 테고, 꽃으로 꾸몄기에 꽃길일 텐데, 요즈막 사회에서 널리 쓰는 꽃길은 이와는 다른 결입니다. 앞으로 밝게 이어지거나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는 길을 나타내려는 새로운 꽃길이라고 할 만해요.

  또 한 가지 생각해 본다면 영화 〈화양연화〉가 널리 사랑받은 뒤로 ‘화양연화’라는 이름도 제법 퍼지곤 합니다. 사전에 안 나오는 중국말인 ‘화양연화’는 “꽃다운 나날”을 뜻해요.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낱말을 짓는 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꽃다운 나날”이나 “꽃 같은 날”을 간추려서 ‘꽃날’이라는 낱말을 써 볼 만합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꽃날’이 올림말로 있습니다만, 어느 변말로 다루기만 해요. 꽃다운 나날이나 꽃 같은 날을 가리키는 뜻하고는 좀 동떨어져요.

  눈부신 꽃과 같은 삶을 가리키는 자리에 ‘꽃날·꽃삶’ 같은 새말을 즐거이 써 볼 만합니다. ‘꽃빛·꽃길’ 같은 새말을 함께 써 볼 수 있어요. 낱말에 더 힘을 실어 본다면 ‘꽃잔치날·꽃잔치삶’처럼 써 볼 만하고, ‘꽃잔치빛·꽃잔치길’이라 해 보아도 무척 좋아요.

  수저를 두고 살림살이를 빗대어 보려 한다면 ‘꽃수저’ 같은 이름을 써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하건 가멸차건 어버이가 아이를 꽃다이 돌보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받는 사람을 두고서 꽃수저라 해 볼 만합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라면 ‘시골수저’가 될 테고, 서울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라면 ‘서울수저’가 될 테지요. 여기에서 더 생각한다면 ‘숲수저’나 ‘들수저’ 같은 이름을 써 볼 만해요. 어릴 적부터 숲이라고 하는 너른 터전을 마음껏 누리는 아이라면 숲수저입니다. 들을 시원스레 달리듯이 신나게 뛰노는 어린 나날을 누리는 아이라면 들수저가 되어요.

  바닷가에서 태어난 아이는 ‘바다수저’라 할 수 있습니다. 골목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는 ‘골목수저’라 할 수 있어요. ‘바람수저’라는 이름을 지어서 바람처럼 홀가분하면서 넉넉하고 고운 숨결을 물려받았다는 뜻을 나타내 보아도 돼요. 해님 같은 따사로운 사랑을 받는다는 뜻에서 ‘해수저’라 해 볼 수 있고요.

  우리한테는 생각하는 힘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놓고 한자말로는 ‘상상력·창의력’이라고도 하는데, 쉽고 수수하게 ‘생각힘’이라 할 수 있고 ‘꿈힘(꿈꾸는 힘)’이나 ‘슬기힘(슬기롭게 내는 힘)’이라는 이름을 써 보아도 재미있어요. ‘지음힘(새롭게 지어낼 줄 아는 힘)’ 같은 이름을 써 볼 수 있을 테고요.

  생각힘을 살짝 북돋아 본다면 커다란 가게에서 흔히 하는 ‘원 플러스 원’을 ‘더하기잔치’나 ‘더하기’나 ‘더하기날’처럼 가다듬어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앞서 읍내마실을 갔다가 읍내가게에서 “이 물건은 더하기 행사를 해요. 하나 더 가져가셔요.” 하고 들려주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사는 고장은 워낙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계신 시골인 터라, 읍내가게 일꾼이 영어로 ‘원 플러스 원’이라 말할 적마다 다들 못 알아들으셨으리라 느껴요. 이러다 보니 읍내가게 일꾼 스스로 말을 바꾸어 “더하기 행사”라는 이름을 그분들 스스로 지어서 썼구나 싶더군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눈높이를 맞추면서 재미난 말이 하나 태어난 셈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문화나 문명이라고 하더라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낮고 작고 여린 사람들 눈높이를 헤아려 보는 마음이 있다면, 무척 쉬우면서 재미있고 뜻있는 낱말을 누구나 새롭게 지을 수 있어요.

  더 헤아려 보면 지난날에는 ‘덤’이라는 말을 썼어요. “하나는 덤입니다”처럼 썼지요. 더 주기에 ‘덤’인데, 덤에 말꼬리가 붙어 ‘덤터기’가 되면 남한테 씌우거나 남한테서 억지로 넘겨받는 짐이나 걱정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말끝 하나로 뜻하고 쓰임새가 사뭇 달라지는 얼거리예요. 말놀이라고 할 만합니다. 삶을 수수하게 나타내면서 살림을 즐겁게 그리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이웃님이 열 살 아이한테 “아주머니는 바다 근처에 살아요.” 하고 말씀하는데 열 살 아이는 ‘근처’라는 낱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근처’라는 한자말 소릿결이 낯설고 뜻은 도무지 모르는 눈빛입니다. 옆에서 이 말을 함께 들은 제가 다리를 놓아서 열 살 아이한테 한 마디를 거들어 주었어요. “‘바다 근처’는 바다에서 가까운 곳이라는 뜻이야. 아주머니는 바다에서 가까운 곳에 사신대.” 하고 알려줍니다. 그제서야 열 살 아이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근처(近處)’라는 한자말은 어른한테는 퍽 흔하거나 쉬운 낱말일 수 있어요. 이 한자말을 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굳이 안 써도 될 만하다는 대목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옆’이나 ‘곁’이나 ‘둘레’나 ‘가까이’ 같은 낱말을 써 보면 누구나 곧장 알아들어요.

  어느 어른은 ‘근린(近隣)’이라는 한자를 붙여 ‘근린공원’ 같은 이름도 쓰는데요, ‘근린공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는 어린이나 푸름이는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근린’이라는 한자말은 이 자리 빼고는 거의 아무 데도 안 써요.

  마을에 가까이 있는 공원이면 ‘마을공원’이나 ‘마을쉼터’라 하면 됩니다. ‘근린’을 뒤집은 한자말 ‘인근’도 ‘옆·곁·둘레·가까이’ 같은 쉬운 한국말로 부드러이 걸러내어 쓰면 한결 좋아요. 때로는 ‘이웃’이라는 낱말로 걸러낼 수 있습니다. ‘마을쉼터’나 ‘이웃쉼터’라 할 수 있고, ‘손바닥쉼터’나 ‘한뼘쉼터’나 ‘자투리쉼터’나 ‘골목쉼터 같은 이름을 얼마든지 새롭고 아기자기하게 붙일 수 있어요.

  가위손을 쥐고 꽃길을 걸어 볼 수 있을까요. 언제나 꽃날 같은 삶을 누리면서 서로서로 즐겁게 꽃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덤터기 아닌 덤을 나누면서 사이좋은 이웃으로 어깨동무하는 나날을 이룰 수 있을까요. 마을마다 마을쉼터가 있는 나라가 되고, 마을쉼터에는 우람한 나무가 자라서 여름에는 그늘을 베풀고 겨울에는 찬바람을 그어 주는 고마움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 곁에 사랑스러운 말이 있습니다. 우리 둘레에서 쉬운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까이에서 고이 마음을 기울이면 다 함께 눈부시게 피어나는 꽃잔치말을 상냥하게 주거니 받거니 할 만합니다. 꽃내음이 흐르고 꽃노래 같은 기운이 감도는 꽃살림말을 싱그러이 혀에 얹어 봅니다. 2017.7.1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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