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탐미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시루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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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4


아름다운 이웃인 나비를 그림에 담다
― 나비 탐미기
 우밍이 글·그림·사진
 허유영 옮김
 시루 펴냄, 2016.7.19. 14000원


  나비가 알 낳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애벌레가 번데기를 튼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번데기를 벗고서 깨어나는 나비를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다만, 알을 낳든 번데기를 틀든 나비로 깨어나든, 동영상이 아닌 맨눈으로 코앞에서 지켜보기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요즘 나는 나비를 관찰할 때 그림을 그려 답을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가 나비를 상품으로 여기면 마음속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것을 표본으로 만들고 시장 논리에 따라 판매할 것이고 … 우리가 나비라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그것을 내적 가치를 지닌 특별한 생명으로 여긴다면 오직 거래, 수집, 연구 수단으로 나비를 잡고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11쪽)


  마당에서 나비를 지켜보며 놀던 큰아이가 ‘나비 알낳기’를 처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큰아이는 나비가 알을 낳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해 동안 좀처럼 ‘나비 알낳기’를 못 보았어요. 어쩌면 느긋하게 살펴보지 못한 탓에 못 알아보았을 수 있어요. 다른 놀이가 더 재미있어서 나비 날갯짓에 숨은 뜻을 몰랐을 수 있고요.

  우리 집에서 깨어나는 나비가 몇 가지 있는데, 이 가운데 파란띠제비나비 한 마리가 후박나무하고 초피나무 사이를 매우 잰 날갯짓으로 넘나들었습니다. 큰아이는 이런 잰 날갯짓을 궁금해 하면서 한참 지켜보았고, 나비가 문득문득 스치듯 지나간 자리마다 작은 알이 하나씩 남은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관람객들은 여과지도 붙이지 않은 손전등을 반딧불에 마구 비추어대고 주전부리를 손에 든 채로 전시관을 어슬렁거린다. 그들 중 반딧불과 진정 교감하려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왕얼룩나비와 함께 찍은 사진은 그들에겐 그저 남에게 뽐내기 위한 종이 한 장일 뿐이다. (27쪽)


  나비가 낳은 알을 처음으로 알아본 큰아이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온 식구를 부릅니다. 여기에 알이 있고 저기에 알이 있다면서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큰아이는 날마다 알을 쳐다보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알이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슬픈 낯빛인 큰아이를 달래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얘야, 나비가 왜 나뭇잎 하나에 알을 하나만 낳는 줄 아니?” “아니. 몰라.” “그러면 생각해 보자. 나비가 나뭇잎 하나에 모든 알을 다 낳았어. 그런데 이 나뭇잎이 똑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 알은 다 죽어?” “그래. 다 죽지. 그래서 나비는 나뭇잎 하나에 알을 하나만 낳아. 그렇게 온갖 잎마다 알을 하나만 낳으려고 매우 부산하게 날갯짓을 하면서 알을 낳을 만한 잎을 살피지.” “그렇구나.” “네가 찾아낸 알은 어쩌면 다른 벌레가 먹이로 삼았을 수 있어. 그렇지만 모든 알이 다 벌레먹이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우리가 못 본 자리에는 틀림없이 나비가 낳은 알이 살아남았을 테니까.”


나는 배추흰나비를 잃어버린 밭두렁에서 채소들이 얼마나 외롭게 자랄지 상상할 수 없었다. (45쪽)

래리가 말했다. “올해 설에 저어새를 보러 갔는데, 가는 도중에 길가에 노점상이 많았어. 저어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 주변에 가 보니 저어새 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없는 것 없이 다 팔고 있더라니까. 빈난공업단지, 툰텍스화학단지, 메이능저수지가 전부 완공되면 그 노점상들이 저어새 기념 머그잔이나 연노랑나비티셔츠, 가방 같은 걸 팔게 되겠지.” (71∼72쪽)


  대만사람 우밍이 님은 지난 2000년에 《나비 탐미기》(시루 펴냄)를 썼다고 해요. 이 책이 2016년에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나비 전시관에서 일하는 동안 사람들이 나비를 얼마나 못살게 구는가를 지켜보았고, 전시관장은 나비를 언제나 한낱 돈푼으로만 여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대만 곳곳을 누비면서 나비를 살필 적마다 대만이 일제강점기였을 적에 일본 학자가 얼마나 대만 나비를 꼼꼼히 살펴서 적바림했는가를 새삼스레 느꼈다고 합니다.

  한국도 대만하고 엇비슷합니다. 한국 나비를 놓고도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가 깊고 넓게 살폈어요. 한국 사회는 그무렵 식민지살이를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만, 나비 한살이를 눈여겨보거나 아끼는 손길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웠어요.


날개를 펼치면 10cm도 넘는 그 거대한 나비를 어째서 보지 못하는 걸까? 온몸이 검은 그 나비를 밤낮이 바뀐 아둔한 박쥐로 오인해서일까? 아니면 먹색 날개를 가진 새로 착각해서일까? 어쩌면 눈을 크게 뜨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92쪽)

나비들과 사귄 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그들이 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또는 소풍을 즐기기 위해 도시락을 싸 들고 오는 나들이객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103쪽)


  여름이 저무는 즈음 시골마다 뻥 뻥 하는 소리가 곳곳에 울려퍼집니다. 총을 쏘는 소리입니다. 노루가 밭으로 들어온다면서 이 마을이나 저 마을이나 총을 쏩니다. 총알을 재워서 쏘는지 빈 총으로 소리로만 쏘는지 모르나, 아침 일찍 뻥 뻥 소리가 나고, 해질 무렵까지 이 소리가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시골에 어린이나 젊은이는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만 계시니 밭 언저리에서 총을 하루 내내 쏠 수 있구나 싶습니다. 마을에 어린이나 아기가 산다면, 또 젊은이가 북적거린다면, 노루나 멧돼지가 밭에 드나든다고 해서 함부로 총소리를 내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노루를 미워하며 총소리를 내는 시골에서는 나비도 몹시 싫어합니다.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 애벌레일 적에 잎을 얼마나 갉아먹느냐면서 싫어하지요. 그렇지만 애벌레에서 나비로 거듭나기에, 나비는 수없이 많은 ‘열매 꽃가루받이’를 해내요.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자리에 맺는 꽃마다 살포시 앉아서 꽃가루를 조금 먹으면서 꽃가루받이를 살뜰히 해 줍니다.


그 후 일본군은 계획적으로 숲을 죽이고 철거하고 운반했으며 그 증거로 나무 처형장으로 향하는 철도와 도로를 남기고 떠났다. 뒤이어 들이닥친 국민당 정부는 산맥과 강을 독살하고 마구잡이로 갈라놓았다. 산소와 하늘은 재벌들에게 독점당하고 재벌들은 그 대가로 몇 푼 안 되는 이자를 내놓으며 스스로 해친 땅을 ‘보호하는’ 자비를 베풀었다. (128쪽)


  나비는 그저 겉보기로만 날갯짓이 고운 목숨일까요? 나비가 알을 낳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까요? 나비 애벌레는 몽땅 잡아서 죽여야 할까요? 오직 사람만 있고 벌도 나비도 잠자리도 새도 사라져야 할까요?

  《나비 탐미기》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떠올립니다. 말썽거리가 터졌다 하면 닭이고 달걀이고 수십만 수백만 목숨이 땅에 묻혀서 죽어야 하는 사회 얼거리를 떠올립니다. 알맞게 먹고 나누는 사회보다는 더 돈이 되는 길로 나아가는 사회 얼거리를 떠올립니다.

  《나비 탐미기》를 쓴 대만사람 우밍이 님은 잠자리채를 안 쓰려 한다고 합니다. 사진기조차 안 챙기려 한다고 합니다. 나비를 지켜보거나 살필 적에 오로지 두 눈으로 살피면서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 넣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가장 투박하고 수수하면서 더딘 길을 가는 셈이겠지요. 잠자리채로 낚아채면 더 가까이에서 손으로 쥐면서 지켜볼 수 있을 텐데, 나비를 따라서 숲을 헤매고 온 골짜기를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사진기로 찍어 놓으면 그림 그리기가 한결 수월할 테지만, 나무 곁에 서거나 앉아서 한참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그들(나비)의 엄지손가락만 한 문신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처럼 지면에 닿을 듯 가깝게 엎드려 아주 조금씩 느리게 움직이며 눈을 최대한 그들 가까이 가져다 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야성적인 붓터치이자 생명의 먹물이 퍼진 모습이다. (156쪽)

세잔 작품의 복제품을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림 실력이 세잔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것은 영혼을 선과 색채 속에 가두어버린 그림일 뿐이다. 황세줄나비도 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경치다. (31쪽)


  큰아이는 나비가 알을 낳은 모습을 지켜본 뒤, 오래오래 들여다본 다음, 즐겁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비가 어떻게 날갯짓을 하며 알을 낳는지 그리고, 나비가 알을 낳은 잎을 그렸어요. 아이는 마음에 담은 우리 집 나비를 그림으로 옮겨서 앞으로 새로운 목숨(애벌레)이 깨어나서 즐겁게 잎을 갉다가 번데기를 틀고, 바야흐로 고운 나비가 다시금 태어나기를 꿈꿉니다.

  나비를 그림으로 담으면서 나비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무인지를 생각합니다. 나비를 담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나비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웃인지를 헤아립니다.

  그림에 담으려고 오래도록 지켜봅니다. 그림으로만 담을 생각이기에 억지로 잡지 않습니다. 그림에 담고 싶기에 나비 날갯짓을 따라서 함께 들길이나 숲을 달립니다. 그림으로 담은 뒤에는 따뜻한 눈길로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우리가 나비뿐 아니라 둘레에 있는 사람들을 따사로이 바라보며 넉넉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싶습니다. 기쁨도 평화도 사랑도 따사로우며 넉넉하게 바라보는 눈길에서 피어나리라 봅니다. 2017.8.2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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