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문학과지성 시인선 309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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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2



서로 말을 배우며 평화롭다

―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허수경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5.10.14.



  진주말로 시를 지어 함께 실은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2005)을 읽다가, 그냥 진주말로만 시를 실으면 한결 나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굳이 서울말로 다시 적어야 하지 않아요.


  어쩌면 진주말을 진주나 경상도 사람 아니고서는 못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곡성말을 곡성이나 전라도 사람 아니고서는 못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런데,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는 대로 귀를 기울이거나 눈을 크게 뜰 수 있습니다.



비님 나리시는데

노천밥집 안조로미 밥 드는데


이데는 자근 항구말

조갑데기 배드리

푸성귀소 많은 밥상드럼 들어와 있는 데


서콰내 사무드멘

서더먹케 싱경이무침 뒤더기던 손

들썩 들쏙 물회리 가게 되는 데 (항구마을―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진주말을 마음껏 쓸 수 있다면 이 고운 텃말을 수더분하게 쓰면 가장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고장마다 텃말이 차츰 사라지거나 잊히는 까닭은 그 고장에서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물려준 텃말을 그 고장 사람들 스스로 안 쓰기 때문이에요. 더욱이 글을 쓰는 분들 스스로 이녁 책이나 문학에 텃말을 안 쓰기 때문이고요.


  진주말이라서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주사람이 진주말을 하기 때문에 이 노래는 얼마든지 아름답습니다. 다른 고장에서는 넘볼 수 없는 말이요,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말입니다. 오직 한 곳에서 고이 흐르는 사랑으로 나눌 수 있는 노래입니다.



대구 덤버덩 국 끓이는 저녁 움파 조고곤 무시 숭숭덩

불근 고추가리 마늘 국에서 노닥 눈 헛파는 저녁이먼


어디 먼 데 가고 자파

먼 데 어느 멘지 몰로라 (대구 저녁국―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평화로 가려 한다면 낮고 작은 길을 걸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꿉놀이를 하듯이 소꿉살림을 짓고, 소꿉마을이 되며, 소꿉집을 이루는 자리에는 언제나 평화가 흐른다고 느낍니다.


  커다랗게 올리거나 세우려고 하는 곳에는 좀처럼 평화가 깃들지 못해요. 커다랗게 올라서려는 곳에서는 자꾸 거머쥐거나 움켜쥐려고 하면서 총을 짓고 탱크를 짓지요. 미사일하고 전투기도 짓고요.


  작은 마을이나 집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전쟁무기를 짓지 않아요. 호미 한 자루를 쥘 뿐입니다. 낫 한 자루로 풀을 벨 뿐입니다. 커다란 나라를 이루면서 울타리를 쌓기 때문에 전쟁무기를 짓고, 사람들을 군대로 끌어갑니다.



알 수 없는 거리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총을 들고 아이는 군복을 입고

주머니에 박하사탕을 한 움큼 넣어달라고 했다 (그때)



  서울사람이 진주말을 배우는 자리에 평화가 흐릅니다. 부산사람이 광주말을 배우는 자리에 평화가 깃듭니다. 춘천사람이 평양말을 배우고, 의주사람이 대전말을 배우는 자리에 평화가 감돕니다. 서로서로 다른 고장을 가꾸어 온 사랑을 말 한 마디로 배우려 하기에 평화를 이룹니다.


  더 많은 군대나 더 커다란 전쟁무기를 휴전선 사이에 두기에 평화롭지 않아요. 서로서로 다르면서 같은 숨결이라는 대목을 바라보면서 말을 섞을 수 있기에 평화롭습니다. 진주랑 곡성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이랑 어른이 손을 맞잡기에 평화로워요.



엄마

대포 소리가 저리도 가까운데

꽃 피는 소리가 들려요


얘야, 저건 오레안다꽃이 피는 소리란다

거리에서 자동차에 뭉개지면서 꽃이 우는 소리란다

그 자동차를 타고 가던 여인과 비밀경찰을 기억하니? (엄마)



  미국사람이 쿠바말이나 이라크말을 배우려 했다면 아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러시아에서 미국을 배우고, 일본에서 중국이나 한국을 배울 적에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배우려 할 적에 전쟁이 일어날 틈이 없습니다.


  아주 작은 말 한 마디를 나누면서 평화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시인이라면 살며시 서울말을 내려놓고 고장말로, 텃말로, 마을말로, 사투리로 홀가분하면서 상냥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을 할매나 시골 할배 말씨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 좋겠습니다. 2017.8.2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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