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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의 곧은 나무 ㅣ 한티재시선 10
김수상 지음 / 한티재 / 2017년 6월
평점 :
시를 노래하는 말 298
고르면서 곧게 자라는 나무가 되고 싶어
― 편향의 곧은 나무
김수상 글
한티재 펴냄, 2017.6.19. 8000원
시집 《편향의 곧은 나무》(한티재,2017)를 읽으며 시집에 붙은 이름을 생각합니다. ‘편향’이라는 한자말은 ‘치우침’을 뜻합니다. 그러니 “치우치면서 곧은 나무”를 이야기하는 시집이라는 뜻이에요. 치우치면서 곧다니 그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참말 한쪽으로 ‘곧게 치우친’ 모습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치우친 모습이 아니라 마냥 한쪽으로 곧게 치우친 모습이 있어요.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면,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나와서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하고 말했다 그 말이 거북의 등처럼 듣기에 거북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하고 쓰면 되는 말을, 마치 자기가 아주 커다란 집단의 우두머리라도 되는 것마냥 (개인적이란 말)
‘개인적’이란 무엇일까요? ‘-的’을 붙인 일본 말씨라고도 할 터이나, 쉽게 쓰지 않는 말씨라고도 할 터입니다. 시인은 ‘개인적’이라 말할 까닭 없이 ‘내가 보기에는’이라고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와 맞서는 ‘집단적’도 매한가지가 될 테지요. ‘집단적’이라 하지 말고 ‘우리가 보기에는’이나 ‘사람들이 보기에는’이라 하면 되어요.
그런데 어느 모로 보면 ‘개인적’이란 말이 듣기 거북한 시인처럼 ‘편향’이란 말도 거북할 수 있습니다. 굳이 ‘편향의’ 같은 일본 말씨를 써야 할까 궁금해요. ‘치우친’이라고 하면 되거든요.
이틀 내리 내린 소낙비에도 우리 아파트의 백일홍은 꽃을 매달고 있었어요 기특한 마음에 사진을 좀 찍어주려고 속옷 바람으로 스마트폰을 내밀었더니 꽃나무 바로 옆, 테니스장에서 공을 치다가 모자 벗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땀을 닦는 아주머니, 저를 보더니 옴마얏! 하네요 (치한이 살고 있다)
우리는 서로 같은 자리에 있으나 서로 다른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시인은 배롱꽃(백일홍 꽃)을 찍고 싶어서 속옷 차림으로 아파트에서 문을 슥 열고 손전화를 내밀었다는데, 배롱꽃 둘레 테니스터에서 공을 치던 아주머니는 어떤 미친 사내가 속옷 차림으로 저를 몰래 찍는다고 여겨요.
같은 자리에 있으나 다른 마음으로 다른 일을 했습니다만, 두 다른 사람은 그만 마음도 생각도 엇갈려요. 배롱꽃을 찍으려던 시인은 어느새 치한이라는 옷을 입습니다.
벚꽃과 살구꽃의 구별이 안 되었다
팻말이 없었더라면 지나칠 뻔하였다 (살구꽃을 보았다)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 놈은 방학이라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먹고 자고 먹고 잤다
나는 오늘도 밥을 하고
어제 널은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였다 (안심을 따라가다)
한쪽으로만 간다는 길, 이쪽하고 저쪽을 두루 살피지 않고 마냥 치우치기만 한다는 길, 둘레를 고루 헤아리지 않고 그저 한쪽으로 뻗기만 한다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누구는 벚꽃하고 살구꽃을 못 가릴 테지만, 누구는 매화하고 벚꽃을 못 가립니다. 복숭아꽃하고 살구꽃을 못 가릴 수도 있을 테고요. 오얏꽃은 또 어떨까요? 꽃이 아닌 열매는 얼마나 가릴 만할까요? 푸른 매실이 아닌 누렇게 익은 매실하고 살구를 가리지 못하는 분이 많아요.
그리고 나무마다 다른 결을 못 가리는 분이 많습니다. 느티나무를 보며 느티나무인 줄 못 알아본다든지, 탱자나무를 보며 탱자나무인 줄 못 알아보는 분이 많아요. 우리는 다들 아는 만큼만 알아요. 우리는 다들 모르는 것은 도무지 몰라요.
그래, 우리는 술집하고 다방하는 것들이다
별고을에서 술 팔고 차를 팔아서
토끼 같은 내 새끼들 기르고 늙은 부모 모시는
술집하고 다방하는 것들이다 (저 아가리에 평화를!)
누구나 평화를 바랄 수 있습니다. 평화운동가만 평화를 바라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는 할매도 평화를 바랍니다. 그러나 기자는 국회의원이나 이름난 몇몇 이들이 목소리를 높일 적에 사진을 찍더라도, 시골 할매나 아지매가 목소리를 높일 적에는 사진을 안 찍고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곤 합니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기자가 모일 테지만, 시골 할매랑 아지매가 목소리를 높이려는 자리에 찾아오는 기자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시집 《편향의 곧은 나무》는 우리 사회를 둘러싼 한쪽으로만 냅다 뻗는 곧은 길이란 무엇인가를 가만히 짚는다고 할 만합니다. 두루 뻗지 못하는 가지를 이야기한다고 할 만합니다.
나무가 가지를 한쪽으로만 뻗으면 나무 스스로 못 버티고 무너져요. 나무는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가지를 뻗기에 아름드리로 아름답게 자랍니다. 사람도 나무와 같이 고루 가지를 뻗듯 이웃을 헤아리고 사랑할 적에 아름다운 어른으로 살아가리라 느껴요.
고르면서 곧게 자라기에 아름답습니다. 골고루 곧게 살피기에 사랑스럽습니다. 나무처럼 씩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나무처럼 넉넉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2017.7.2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