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12. 시골사람이 지은 말 ‘다북지다’


  이웃님이 보내 온 글을 읽는데 ‘설렁하다’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설마 ‘썰렁하다’를 잘못 쓰셨나 하고 바라보았어요. 이러다가 다시 생각합니다. 한국말이거든요. 한국말은 아 다르고 어 달라요. 더욱이 한국말은 아랑 어만 다를 뿐 아니라, 아랑 야가 다르고, 어랑 여가 다르지요. 사랑 샤가 다른 한국말이면서, 싸랑 사에다가 쌰까지 다 다른 한국말입니다.

  사전에서 ‘설렁하다’를 찾아봅니다. 올림말로 나옵니다. 말결로 살피면 ‘설렁하다 < 썰렁하다’인 얼거리예요.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설보다 썰을 붙인 ‘썰렁하다’를 쓰시지 싶습니다. ‘설렁하다’처럼 살짝 가붓하게 쓰시는 분은 매우 드물어요.

  말결을 더 살피면 ‘설렁하다·썰렁하다’뿐 아니라 ‘살랑하다·쌀랑하다’가 있어요. 우리는 그때그때 느낌이나 기운을 살펴서 온갖 낱말을 쓸 만해요. 어느 때에는 ‘설렁설렁하다’나 ‘쌀랑쌀랑하다’를 쓸 수 있지요. 마음으로 스미는 결을 고스란히 살려서 이야기할 만합니다.

  익산에 사는 이웃님이 전화를 걸어 말씀을 여쭈셨어요. 그분은 퍽 예전부터 ‘다북지다’라는 낱말을 쓰셨다고 합니다. 때로는 ‘다북차다’라는 낱말도 쓰셨대요. ‘다북지다·다북차다’라는 말을 처음 들을 무렵이든, 이 말을 그분 이웃님이나 동무님한테 쓰든, 누구나 이 말이 무엇을 나타내거나 가리키는가를 잘 느끼거나 알았다고 해요. 딱히 한국말사전을 뒤적여 보지 않아도 도란도란 즐거이 나누던 낱말이라고 합니다.

  이러다가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는데 ‘다북지다’도 ‘다북차다’도 사전에 없어서 놀라셨대요. 사전에 없는 말을 함부로 써도 되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대요. 사전에 없는 말을 아무나 지어서 쓴 셈이 아닌가 하고 느끼셨대요.

  한국은 한국말사전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전을 지은 발자취가 매우 짧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글을 담을 사전을 짓겠다는 생각도 거의 못했다고 할 만합니다. 외국사람이 한국말사전을 먼저 지었고, 한국사람은 한참 늦게 한국말사전을 지었어요.

  한국 발자취를 살피면, 사전을 어떻게 짓느냐 하는 틀이 제대로 서지 않은 채 독립운동 물결을 타고서 한국말사전이 태어나요. 해방 뒤에는 제대로 독립한 나라로 서려는 뜻으로 한국말사전이 태어나지요. 이러다 보니 한국말사전은 꼴이나 결을 제대로 가닥을 잡지 않고서 서둘러 나왔습니다. 이 틈바구니에서 일본 사전을 슬쩍 베껴서 낸 사전이 불티나게 팔리며 엉뚱한 일본 한자말이 마구잡이로 퍼지기도 했어요. 이 엉킨 실타래는 요즈막까지도 무시무시하게 퍼져요.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 살지만, 일제강점기라든지 해방 뒤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 살았어요. 그래서 한국말사전 틀을 처음 짜는 일을 하던 분들은 ‘시골말 찾기’나 ‘시골말 캐기’를 했습니다. 지난날 학문을 하던 분들은 들이나 숲이나 바다가 아닌 서울에 있는 학교에 모여 책으로만 배운 터라, 막상 국어학자로 일한다고 하더라도 한국말(시골말)을 잘 몰랐어요. 사전에 어떤 낱말을 실어야 알차며 아름다운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요.

  일제강점기나 해방 뒤에 문학을 한 적잖은 분들은 이녁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쓰던 고장말을 글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지요. 예전에는 문학을 한다고 할 적에 서울말이 아닌 시골말로 문학을 했어요. 김유정이든 백석이든 이효석이든 현덕이든 이녁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말로 문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사전 발자취가 매우 짧아도 ‘시골말을 고스란히 담아낸 문학’을 발판으로 삼아서 낱말을 모을 수 있었어요.

  오늘날 한국 문학을 살피면 거의 모두 서울말입니다. 전라말이나 경상말로 소설이나 시를 쓰는 분은 찾아볼 길이 없어요. 제주사람이 제주말로 소설이나 시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수도권이 아닌 인천이나 수원이나 안산이나 고양이나 부천 같은 고장에서 인천말·수원말·안산말·고양말·부천말로 문학을 하는 이도 찾아볼 길이 없어요. 다 다른 고장에서 나고 자라면서 다 다른 말결을 물려받은 숨결을 꾸밈없이 살려낸 문학은 오늘날 한국에서 씨가 말랐다고 할 만합니다.

  이런 흐름이나 얼개를 헤아려 본다면, ‘다북지다·다북차다’가 사전에 아직 안 오른 까닭을 짚을 만해요. 사전에 없기 때문에 쓰기에 멋쩍거나 꺼릴 만한 낱말이 아니라, 아직 사전에 제대로 담지 못한 시골스럽고 수수한 한국말 몇 가지인 ‘다북지다·다북차다’를 우리 이웃님이 입에서 입으로 지키면서 가꾸어 왔다고 생각해요.

  ‘다북지다·다북차다’는 아직 사전에 없으니 말뜻을 새롭게 붙여야 합니다. 먼저 두 낱말하고 비슷한 다른 낱말을 헤아려 봅니다. ‘소복하다·수북하다’가 사전에 올라요.

  ‘소복하다’는 “1. 쌓이거나 담긴 물건이 볼록하게 많다 2. 식물이나 털 따위가 촘촘하고 길게 나 있다 3. 살이 찌거나 부어 볼록하게 도드라져 있다”로 풀이합니다. 다음으로 ‘다복하다·더북하다’가 사전에 올라요.

  ‘다복하다’는 “풀이나 나무 따위가 아주 탐스럽게 소복하다”로 풀이합니다. ‘더북하다’는 “1. 풀이나 나무 따위가 아주 거칠게 수북하다 2. 먼지 따위가 일어 자욱하다”로 풀이해요. 자, 제 나름대로 새 뜻풀이를 붙여 보겠습니다.

다북하다 : 1. 풀이나 나무가 보기 좋도록 넉넉하게 있다 2. 마음·생각·살림·모습 들이 보기 좋도록 넉넉하다
다북지다 : 1. 풀이나 나무가 참으로 보기 좋도록 아주 넉넉하게 있다 2. 마음·생각·살림·모습 들이 참으로 보기 좋도록 아주 넉넉하다
다북차다 :  1. 풀이나 나무가 더없이 보기 좋도록 대단히 넉넉하게 있다 2. 마음·생각·살림·모습 들이 더없이 보기 좋도록 대단히 넉넉하다

  ‘옹골지다·옹골차다’라는 낱말이 있어요. ‘옹골지다’는 “실속이 있게 속이 꽉 차 있다”를 뜻하고, ‘옹골차다’는 “매우 옹골지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지다·-차다’를 놓고 결이 이처럼 달라요. 이런 결을 살피면서 ‘다북하다·다북지다·다북차다’를 사전에 새롭게 담을 만한 반가운 시골말 한 타래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나눌 말은 사전에 나와야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고받을 말은 표준 말법이나 서울말 얼거리에 들어맞아야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나타낼 말을 즐겁게 나누면서 살림을 기쁘게 지으면 돼요. 우리는 사랑을 말 한 마디에 고이 실어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지으면 돼요.

  예부터 말은 학자나 임금님이 아닌 수수한 시골사람이 지었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은 바로 수수한 시골사람이 지었어요. 게다가 고장마다 말이 다 다른데요, 이는 고장마다 바로 그 고장에서 삶을 지은 수수한 시골사람이 손수 말을 지었다는 뜻이에요. 전라도라는 고장을 놓고 본다면, 곡성이나 고흥이나 구례나 진도나 신안이나 나주에서 쓰는 말이 다 다르지요. 고을마다 삶자리가 다르니, 다 다른 삶자리에 맞추어 다 다른 시골사람이 다 다른 말을 짓습니다. 고을에서도 더 작은 마을로 접어들면 또 마을대로 말이 다르고요.

  남이 지어 주는 말을 쓰던 시골사람이 아니에요. 이른바 학자나 지식인이나 권력자가 지어 주는 말을 쓰지 않은 시골사람이에요. 모든 말을 스스로 지은 시골사람입니다. 모든 말을 즐겁게 지은 시골사람입니다. 모든 말을 삶에서 캐내어 살림을 가꾸면서 홀가분하게 지은 시골사람입니다.

  삶을 짓기에 말을 지을 수 있어요. 살림을 짓기에 이름을 지을 수 있어요. 사랑을 짓기에 이야기를 지을 수 있어요. 시골에 살든 서울에 살든 우리 스스로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스스로 짓는 기쁜 길을 걷는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삶과 살림과 사랑을 슬기롭게 담아내어 생각을 나누는 아름다운 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수수하게 말을 짓고, 스스럼없이 말을 나누어요. 사전을 짓는 사람은 수수한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두면서 말넋을 살찌우는 길을 갑니다. 2017.6.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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