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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지음 / 돌베개 / 2017년 4월
평점 :
책읽기 삶읽기 302
소설가 김탁환이 그린 ‘세월호 사람들’
―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글
돌베개 펴냄, 2017.4.3. 13000원
소설을 쓰는 김탁환 님은 《거짓말이다》라는 소설책을 2016년 8월에 선보인 적 있습니다. 2017년 4월에는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돌베개 펴냄)를 새롭게 내놓습니다. 두 작품은 2014년 4월에 가라앉은 세월호라는 배와 얽힌 이야기를 다룹니다.
발목과 허리까지 물에 잠길 때도 계속 나만 올려다봤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말해야만 했다. 그러나 끝내 말할 수 없었다. 내 눈물이 선내로 떨어져 그녀(여학생)의 눈에 닿았다.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나도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먹였다. 입술로 나가지 않은 말들이 송곳처럼 잇몸과 혀를 찔러댔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30∼31쪽)
소설책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는 세월호를 둘러싸고 응어리가 맺힌 사람들 이야기를 여러 자리에서 들려줍니다. 작가 눈으로, 사진가 눈으로, 잠수사 눈으로, 살아남아서 대학교에 간 뒤 교사가 되었다는 ‘먼 앞날’ 눈으로, 또 세월호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자리에서 딱히 걱정 없이 살다가 아주 뜻밖에 사고로 죽은 곁님을 둔 출입국관리소 직원 눈으로, 여기에 특조위 조사관 눈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펼칩니다.
소설이라지만 소설이 아닌 듯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소설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뚜렷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라면, 2014년 4월에 세월호라는 배가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배가 바다에 가라앉기 앞서,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마땅히 모두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이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배를 몬 사람이나 배를 둘러싼 행정이나 조치는 터무니없다고 할 만한 모습이었습니다.
물갈퀴가 물컹한 물체를 미는 순간 객실 안 전체가 움직였다. 헤드랜턴을 올려 갑작스런 움직임의 정체를 확인했다. 잠수사들이 찾고자 한 남학생들이었다.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좁은 객실에서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짱을 낀 채 한 몸처럼 뒤엉켜 있었다. 그의 물갈퀴가 그중 한 학생의 옆구리에 살짝 닿자 다른 학생들까지 모두 출렁인 것이다. (99쪽)
배가 가라앉고 나서, 또 배가 가라앉아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나서, 뒤늦게 온갖 잘잘못이 불거집니다. 바다에 띄울 만한 배가 아닌데 바다에 띄운 배라 했습니다. 구명조끼이며 선원이며 선장이며, 온갖 곳에서 말이 안 될 만한 뒷모습이 드러났어요. 부끄러운 민낯이랄까요, 그동안 한국 사회와 정치가 먹고살기 바쁘거나 힘들다는 핑계로 뒤로 밀쳐둔 속살이 환하게 드러났습니다.
“우리 형수를 …… 어떻게 데리고 나왔는지 …… 말씀해 주세요. 이 늙은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114쪽)
가만히 있으란 지시가 그때부터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겨우 객실로 들어섰을 때 안내 방송이 나왔어요. 가만히 있으라. 지겹도록 반복해서 그 방송이 나오고 또 나왔어요. 가만히 있으라, 현재 위치를 이탈하지 말라, 움직이면 훨씬 위험해진다! (144쪽)
소설책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에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하는 이야기가 곳곳에 살그마니 흐릅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몸으로 겪지 않았으니 모르고, 마음으로 함께하려 하지 않으니 모르지요.
저는 이 소설책을 읽다가 마음속에서 거의 지웠다고 생각하던 어느 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큰아이가 네 살 무렵이었는데, 어느 못가에서 저보다 세 살 위인 언니하고 노는데, 큰아이한테 세 살 위인 언니가 갑자기 큰아이를 뒤에서 밀어 못에 빠뜨렸습니다. 오십 미터 즈음 떨어진 데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라 바람같이 달려가서 못에 뛰어들어 큰아이를 건졌지요.
허우적거리다가 살아난 아이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작은 웅덩이만 보아도 무서워했습니다. 아이가 물에 발을 담그도록 하기까지, 또 아이가 바닷가에서 놀도록 하기까지 꽤 오래 더디 걸렸습니다.
재서를 1년 동안 저만 꼭꼭 품고 지냈어요. 이젠 우리 재서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해요. 꼭 함께 전시해 주세요. (229쪽)
소설을 쓰는 김탁환 님은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라는 책에서 굳이 잘잘못을 따지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아픈 사람과 아픔을 늘 안고 사는 사람과 아픔을 늘 안고 사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을 다룹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있으나 서로 아름답게 이어지는 사람이라고 하는 대목을 바라보려 합니다.
어느 모로 보자면 세월호 이야기를 어떻게 벌써 소설로 쓸 수 있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르게 보자면 세월호 이야기를 바로 요즈막에 더 일찍 소설로 쓸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세월호를 둘러싼 모든 속내와 참모습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거든요.
“이 카메라를 재서의 방에 그냥 놔두지 마세요. 사진을 찍지 않는 카메라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들과 같습니다. 재서 어머니가 지금부터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세요. 셔터를 누를 때마다 재서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한다고 여기셔도 좋습니다.” (252쪽)
대통령을 끌어내리니 비로소 세월호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끌어올린 세월호에서 아직 파묻힌 채 안 드러난 속살과 뒷모습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끌어내릴’ 만한 짓을 하는 이들이 더는 대통령이나 공직자가 안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디 아름다운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공직자가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4.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