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4.10.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는데 자꾸 잠이 쏟아진다. 오늘 마실을 나오려니 어제는 새벽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한숨도 안 쉬고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잠자리에 누울 적에 종아리가 잔뜩 뭉쳐서 끙끙 앓았다. 이러고서 새벽 한 시 사십오 분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고 부엌일을 마저 했다. 살짝 쉴 겨를이 없이 일찌감치 집을 나서서 읍내를 거쳐 시외버스에 올랐으니 아무래도 잠이 쏟아질밖에. 그래도 어찌저찌 기운을 내어 김명수 님 시집 《침엽수 지대》를 다 읽는다. 아아,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런 데에서는 야무지다. 쏟아지는 잠을 이기고 끝끝내 책 한 권을 떼려고 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기운인가. 1945년에 태어난 김명수 님이 1991년에 낸 《침엽수 지대》이니 이녁으로서는 한창 문학으로 꽃을 피울 무렵에 선보인 시집이다. 오늘 2017년 눈으로 보자면 이 시집이 나온 지 스물여섯 해나 되었다. 이제 시인 김명수 님은 ‘할아버지’이다. 싯말이 노래처럼 무르익은 아저씨가 쓴 시집에는 삶을 여러모로 아프면서 애틋하게, 때로는 구성지면서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른다. 요즈음 젊은 시인 가운데 이만 한 글힘을 뽐내는 이는 몇이나 있을 만할까. 시에 한자를 요리조리 붙이는 모습은 ‘낡은 나날이 저무는 마지막 글버릇’이리라 느낀다. 한자라는 기호를 넘어서 삶이라는 말을 녹여낼 때에 시는 더욱 시다운 꽃으로 그윽하리라 생각한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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