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한 수학자의 탄식
폴 록하트 지음, 박용현 옮김, 이승우 감수 / 철수와영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6


‘수즐이’ 아닌 ‘수포자’를 기르는 학교
―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폴 록하트 글
 박용현 옮김
 철수와영희 펴냄, 2017.3.30. 12000원


  ‘수포자’라는 말을 처음 듣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제 입에서 나오는 첫말은 “뭔데?”입니다. 이 아리송한 말을 누가 왜 지어서 쓰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러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수포자 = 수학 포기 자’를 줄인 낱말이더군요. 저라면 ‘수그이(수학을 그만둔 이)’나 ‘수집사(수학을 집어치운 사람)’쯤으로 줄여서 쓸는지 모르지만, 수포자이든 수그이나 수집사이든 다 그 말이 그 말일 테지요.

  그나저나 ‘수포자’라는 말은 꽤 묵은 말이로구나 싶고, 이 이름을 받거나 붙이거나 듣는 사람이 제법 많구나 싶어요. 그러면 이 말마따나 ‘영포자(영어 포기)’나 ‘국포자(국어 포기)’나 ‘과포자(과학 포기)’, 나아가 ‘학포자(학교 포기)’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미학적 원칙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단순한 게 아름답다’. 수학자들은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즐긴다 … 바로 호기심을 느끼고, 놀이를 하고, 상상력을 이용해 스스로 즐기는 것이다. (24, 25쪽)

학교에서 이뤄지는 수학 교육을 보면서 가슴이 아픈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저토록 다채롭고 환상적인 상상의 모험인 수학을 고작 메마른 암기와 문제 풀이법 따위로 쪼그라뜨려 놓았다 … 예술은 ‘정답’이 아니라 설명과 논증에 있다. 정답이 나오는 맥락을 밝히고 그것이 왜 그런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게 논증이다. 수학은 논증의 예술이다. (28, 30쪽)


  저는 수학이라고 하는 갈래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미워하거나 때려치우자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퍽 재미있으면서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풀어내는 길을 스스로 새롭게 찾는 수학이라는 놀이를 그야말로 놀이로 여겨요. 공부나 과목이나 학문이라기보다 놀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교과서를 펴거나 시험종이를 코앞에 놓으면 이때부터 아찔하더군요.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오직 숫자하고 기호만 춤추는 지식이나 정보나 시험 문제일 적에는 수학은 그야말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녀석이 되었어요.

  그렇지 않을까요? 이는 수학뿐만이 아니에요. 윤동주 님 시나 김소월 님 시를 문학으로 읽지 않고 낱낱이 쪼갠다면 어떻겠어요? 시 한 줄을 문학이 아닌 ‘문장 분석’이나 ‘성분 분석’ 따위를 한다면 어떠할까요? 재미난 이야기를 재미나게 누리지 않고, ‘주제·구성·교훈·소재·비유·은유’를 찾는다면서 갈갈이 쪼개 놓으면 너무나 따분하면서 골이 아프기까지 할 테지요.


아이들은 지금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니까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수학 수업을 받느니 아예 수학 수업을 없애버리는 게 낫습니다. 적어도 누군가는 아름다운 무언가를 스스로 발견할 기회를 얻게 될 테니까요. (36쪽)

수학을 한다는 것은 발견과 추측을 해나가며 직관과 영감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혼돈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 학교 수학 교육의 핵심 문제점은 ‘문제’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 수학 수업에서 ‘문제라고 하는’ 게 있기는 하다. 저 재미없는 ‘연습 문제들’ 말이다 … 좋은 문제는 당신이 푸는 방법을 몰라야 한다. 그래야 좋은 퍼즐이 되고 좋은 기회가 된다. (39, 43, 44쪽)


  폴 록하트라는 수학자가 쓴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철수와영희,2017)를 읽었습니다. 참으로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수학자인 글쓴이는 수학이 대단히 아름답고 재미난 ‘놀이배움’이나 ‘배움놀이’인데 그만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갈갈이 쪼개 놓으면서 거의 모든 학생이 이 놀이배움·배움놀이를 지긋지긋한 것으로 여기고 만다고 밝힙니다.

  글쓴이가 말하는 수학은 ‘방정식·수식·공식’이 아닙니다. 글쓴이가 말하는 수학은 ‘스스로 생각을 지어서 실마리를 찾고 수수께끼를 푸는 기쁨을 누리는 놀이’라고 합니다.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놀도록 이끄는 수학이 될 때에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활짝 웃음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예요, 정작 이렇게 수학을 즐겁게 가르치거나 기쁘게 배우지 못한다고 하는군요.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한국사람이 쓴 책이 아닌 외국사람이 쓴 책입니다. 그러니 한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수학 교육을 즐겁거나 아름답게 못 한다는 소리입니다. 꽤 많은 나라에서 수학을 골치가 아픈 지겨운 과목으로 굴러떨어뜨린다는 소리예요.


역사 교사는 역사적 사건이 펼쳐지는 이야기와 동떨어져 인물 이름과 날짜만 나열하는 건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왜 수학 교육만 19세기 방식에 고착된 걸까? (64쪽)

우리 학생이 창조적인 추론과 같은 ‘높은 수준’의 사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역사에 대한 글이나 셰익스피어에 대한 에세이는 왜 쓰게 하는 거죠? 학생이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교사가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들은 무엇 하나도 스스로 증명해 본 적이 없습니다 … 수학을 한다는 건 언제나 패턴을 발견하고, 아름답고도 의미 깊은 설명을 빚어내는 것을 의미해야 합니다. (67, 69쪽)


  글쓴이는 문학이나 역사나 다른 여러 가지에 빗대어 오늘날 수학 교육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보여줍니다. 역사를 가르치면서 ‘연표·이름·날짜’만 외우도록 한다면 대단히 지겹고 싫으며 괴롭겠지요. 수학도 이와 같아서 ‘어느 문제를 하나 풀어내는 흐름과 길을 즐기도록’ 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지겹고 싫으며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역사 교육은 ‘임금님 이름 외우기’가 아닙니다. 역사 교육은 ‘어느 사건이 일어난 날짜 외우기’가 아닙니다. 역사 교육은 ‘어느 사건에 얽힌 주제나 교훈 찾기’가 아닙니다. 역사 교육은 우리 살아온 나날을 가만히 돌아보고 헤아리면서 오늘 이곳에서 짓는 살림을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새롭게 찾도록 북돋우는 이야기마당일 때에 뜻있고 참되어요.


살아 있는 인간이 세상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 중 하나로 써내려간 재치 있고 즐거운 논증 대신에, 우리는 이처럼 시무룩하고 영혼 없는, 마치 관공서에서 온 우편물 같은 획일적인 증명을 보고 있다 … 학생은 필요에 따라 정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75, 84쪽)

학교는 그동안 생각하고 창조하는 곳이 아니었다. 학교는 그저 등급을 매기기 위해 아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도록 훈련하는 곳이다 … ‘수학은 유용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이들은 미래에 기업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영혼 없는 노동을 감당할 노동자로 키워질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97, 127쪽)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쓴 분은 누구보다 ‘수학 교사’를 매우 매섭게 꾸짖습니다. 교육 정책이나 교과서도 매섭게 나무라지만, 참으로 수학 교사를 아주 꾸짖어요. 수학 교사가 듣기에는 난데없는 불벼락일 수 있을 텐데, 곰곰이 듣고 보면 수학 교사가 불벼락을 맞을 만하구나 싶기도 해요. 아무리 나라에서 교과서를 쥐어 주고 이 교과서대로 ‘진도를 나가라’고 교사한테 일을 맡겼다 하더라도, 교사로서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도록 ‘공식을 외워 문제 정답 맞추기’만 하도록 닦달하거나 다그쳐서는 안 될 노릇일 테니까요.

  공식을 못 외워도 얼마든지 ‘스스로 새로운 길(공식)을 찾아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야지요.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거의 잘 잡았으나 막상 ‘정답은 틀리게’ 적었어도 ‘문제를 풀어내는 길’을 즐겁게 걸었는가를 돌아보고 북돋울 줄 알아야 할 테고요.

  문학이나 말(한국말·국어)을 가르칠 적에도 같아요. 문학 시험을 치르면서 ‘정답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거든요. 사람마다 문학을 다르게 느끼면서 읽으니까요. 윤동주 님이나 김소월 님 시를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껴서(감동해서)’ ‘똑같은 교훈이나 주제’를 외울 수 있어야 하지 않아요. 똑같은 책 한 권을 놓고서 스무 아이가 있으면 스무 가지 느낌글(독후감)이 나올 수 있도록 북돋아야 참다운 문학 교사이겠지요. 수학 교사도 이와 같으니, 아이들이 공식만 잘 외워서 시험 문제만 잘 풀어 정답만 잘 맞히도록 하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당신의 수학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 교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당신이 내 학생이라면 나는 단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밌게 풀어 봐. 나한테 진행 상황이나 알려줘.” (129쪽)


  교사가 학생하고 문학을 배울 적에는 그저 문학 작품을 읽어 줄 뿐입니다. 이렇게 느끼거나 저렇게 생각하라고 길을 못박아서는 아니 될 노릇입니다. 이 시는 이렇게 느껴야 하고 저 시는 저렇게 느껴야 하지 않아요. 이 노래는 이렇게만 불러야 하지 않아요. 저 그림은 저렇게만 느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다 다른 마음을 다 다르게 가꾸면서 재미있게 배우도록 할 적에 비로소 교사는 교사 구실을 하리라 느껴요. 이때에는 수학은 수학대로 제자리를 찾고 학교는 학교대로 제자리를 찾을 테고요.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어른도 아이도 ‘수포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수포자’ 아닌 ‘수즐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주어요. ‘수즐이’란 무엇일까요? ‘수학을 즐기는 이’입니다. 즐겁게 놀듯이 배우고, 즐겁게 놀다가 배울 수 있는 수학이 되기를, 또 교사나 여느 어른 모두 수학을 즐겁게 가르칠 수 있기를 빌어요. 아름답게 가르치고 아름답게 배울 수 있다면, 또 사랑스레 가르치고 사랑스레 배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17.4.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책/청소년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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