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기다리다 - 황경택의 자연관찰 드로잉, 두 번째 이야기
황경택 글.그림 / 도서출판 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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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1


어떤 겨울도 봄을 못 막아요
― 꽃을 기다리다
 황경택 그림·글
 가지 펴냄, 2017.3.20. 18000원


  봄은 우리한테 수많은 이야기를 알려줍니다. 무엇보다도 따스한 기쁨을 알려주어요. 아무리 길디긴 겨울이 이어져도 봄을 그릴 수 있기에 견디고, 아무리 모진 추위와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봄이 오면 모두 녹으리라 생각하면서 버티지요.

  봄은 따스한 기쁨으로 피어나는 꽃하고 잎을 알려줍니다. 햇볕 한 줌일 뿐인데 들이며 숲이 푸른 물결이 일렁입니다. 햇살 한 조각 비치는데 환하게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햇빛이 드리울 뿐인데 새벽이 일찍 찾아오고 낮도 길며 온누리가 환합니다.

  봄은 무엇보다 어떤 겨울도 이 따스한 바람을 못 막는다는 대목을 알려줍니다. 겨울은 마침내 수그러들어 봄으로 거듭나는 줄 알려주어요. 새로운 철이 곧 다가오니 이 겨울에 씩씩하게 기운을 내어 마음속에 꿈을 지피자는 마음이 되도록 이끌어요.


(양버즘나무는) 잎자루로 겨울눈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인지 잎이 오랫동안 매달려 있다. (34쪽)

겨울눈은 언제 생길까? 정답은 날 때부터다. 겨울눈에서 새싹이 나올 때 이미 그 싹 안에도 겨울눈이 붙어 있다. 다만 아주 작아서 눈에 안 띌 뿐이다. (38쪽)


  새로 찾아온 봄에 《꽃을 기다리다》(가지 펴냄)를 읽습니다. 들이며 숲이며 벌레이며 하늘이며 꽃이며 나무이며 바라보고 마음으로 담아 그림으로 옮기기를 즐기는 황경택이라는 만화가 한 사람이 빚은 책입니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던 풀이며 나무가 봄에 어떻게 깨어나는가를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담은 그림으로 빚은 책이에요. 이 책은 겨울, 봄, 여름, 가을 이러한 얼거리로 풀하고 나무를 마주합니다. 겨울눈이 얼마나 야무지면서 이쁜가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봄꽃이 얼마나 고우면서 환한가를 그림으로 보여주어요. 여름꽃이 얼마나 짙으면서 싱그러운가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가을꽃이 얼마나 향긋하면서 사랑스러운가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보고 다음날에도 보고 그 다음 주에도 보고, 적어도 일 년은 꾸준히 관찰해야 그 식물의 모습을 잘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멋진 곳을 찾아 낯선 곳에 가기보다는, 익숙한 곳에 자주 가서 보고 그리기를 추천한다. (74쪽)

냉이를 우리 동네에서는 ‘나순개’라고 불렀다. 봄이 오면 아이들끼리 “나순개 캐러 가자” 하고 박구니 들고 나서곤 했다. 어려서 내가 알던 들풀이며 나무 이름이 도감에 나와 있는 것과는 다른 게 많다. 어쩌면 그렇겍 지역마다 입에서 입으로 뜻도 모르고 전해지던 이름들이 더 우리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92쪽)


  황대권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얼마 앞서 회고록을 낸 전두환이라는 군사독재자가 대통령 노릇을 하며 떵떵거리던 무렵 붙잡혀서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나라를 말아먹을 뿐 아니라 짓밟는 군사독재자를 어떻게 몰아낼까 하고 생각하던 이들은 ‘반국가 및 간첩’이라는 죄를 뒤집어써야 했어요. 황대권 님은 자그마치 열세 해하고도 두 달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황대권 님한테는 한 가지 남다른 대목이 있어요. 이분은 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동안 이녁이 ‘몰랐던’ 일을 배우기로 했어요. 바로 ‘들풀’을 배우기로 합니다. 옥살이를 하기 앞서까지는 거의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하던 들풀인데, 옥살이를 하는 동안 더없이 살가운 벗이 되어 준 들풀이라고 하지요.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은 있었으되, 늘 먹는 밥조차 풀열매인 줄 ‘모르던’ 삶을, 그러니까 여태 ‘모르는 채 먹던’ 밥을 되새겨 보았고, 들풀을 하나씩 새로 배우기로 했대요. 이리하여 황대권 님은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쓸 수 있었고, 감옥에서 나온 뒤에 숲과 흙을 살리는 길을 걷는 고운 넋으로 거듭납니다.


어머니께서 배나무 가지치기를 하셨다. 잘라진 가지를 가져와서 꽃을 그리고 있자니 “부케 같다!” 하신다. 배꽃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없다. 생각보다 화려하다. (133쪽)

땅나리는 꽃이 땅을 보고 있고, 솔나리는 잎이 솔잎처럼 가늘게 생겨서 솔나리다. 꽃이 뒤를 보는 것은 하늘나리이고, 하늘을 보면서 꽃잎이 뒤로 많이 말린 것은 하늘말나리이다. (212쪽)


  이 봄에 《꽃을 기다리다》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갈마듭니다. 이 따사로운 봄날에 봄마실을 가려던 아이들이 탄 배는 그만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틀림없이 싱그러운 봄날이요 봄마실인데, 무척 많은 어버이한테 이 봄은 싱그럽거나 따사로운 봄이 아닌 가슴이 아프고 시린 철이 되고 맙니다. 꽃피우지 못한 푸른 넋으로서도, 그 바다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푸른 넋으로서도, 이 봄에 맑고 싱그러운 꽃을 기쁘게 바라보기 어렵고 말아요.

  겨울을 씩씩하게 이겨낸 풀하고 나무가 새롭게 깨어나며 꽃을 피웁니다. 겨울눈은 잎눈하고 꽃눈으로 거듭납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 가슴이 곱게 어루만져 주려는 잎눈이 피어나고 꽃눈이 깨어납니다. 맑은 새잎은 우리가 다시 맑은 마음으로 일어서라며 살그마니 북돋아 줍니다. 밝은 새꽃은 우리가 다시금 밝은 마음으로 꿈을 지피라니 살몃살몃 이끌어 줍니다.

도라지를 늘 먹기만 했지 꽃을 그려 보는 것은 처음이다. 도라지꽃의 멋진 남색을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물감으로 자연의 색을 내기란 참 어렵다. (230쪽)

까마중 열매가 한여름 따가운 햇볕을 견디며 여물고 있다. 시골에선 이 열매를 ‘먹때왈’이라고 불렀다. (234쪽)


  우리는 꽃을 기다리며 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들꽃이며 나무꽃을 기다리며 긴 겨울을 이겨냈습니다. 저마다 마음속에 등불을 피우고, 두 손에는 촛불 한 자루를 고이 쥐면서 긴긴 겨울을 견디었습니다.

  시린 겨울을 가슴에 새겼기에 봄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추운 겨울에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이었기에 봄을 반갑게 맞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봄을 달갑잖이 여길 분이 있을는지 몰라요. 가슴에 피우는 등불도 두 손에 모으는 촛불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길 분이 있을는지 몰라요. 그러나 봄꽃하고 봄나무는 이런 달갑잖고 못마땅한 이들 앞에서도 환하게 깨어나고 피어납니다. 누구한테나 고운 숨결로 봄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꽃을 보며 배우고, 봄을 마주하며 배웁니다. 들꽃 한 송이를 새삼스레 배우고, 들풀 한 포기를 새롭게 배웁니다. 우리 곁에 있는 작은 들꽃하고 들풀을 쓰다듬으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또다시 배웁니다. 이 봄을 기쁜 봄으로 맞이하면서 누리려는 마음으로 기지개를 켭니다.


배롱나무는 나무껍질이 잘 벗겨지고 줅기 표면이 만질만질한 것이 특징인데, 그 부드러운 줄기를 손으로 간질이면 가지 끝이 간지럼을 탄다는 것이었다. 사실 어느 나무나 줄기를 간질이면 가지 끝이 움직인다. 다만 이 나무를 제외하고는 간질여 볼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220쪽)


  어떤 겨울도 봄을 못 막아요. 어떤 군사독재자도 들풀이 들꽃을 못 피우도록 못 막아요. 어떤 정치권력도 나무에 잎이 돋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는 흐름을 못 막아요. 어떤 총칼도 비구름을 못 막아요. 어떤 제국주의라든지 재벌도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별이 돋는 하루를 못 막지요.

  《꽃을 기다리다》는 꽃을 기다리면서 우리 삶을 스스로 짓고 가꾸는 즐거운 살림을 이야기합니다. 기쁘게 맞이할 봄을 노래하고, 사랑으로 지필 여름 가을 겨울을 두루 노래합니다.

  이 봄에 새로운 나라를 헤아립니다. 새로운 봄에 즐거운 마을을 바랍니다. 이 새로운 봄에 아름답게 춤추며 노래하고 활짝 웃을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두 손으로 가꾸려 합니다. 2017.4.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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