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빨래터에서 읽는 책 2017.3.28.


사월이 가까운데 낮이 그리 덥지 않다. 삼월부터 낮이 덥다면 날씨가 얄궂다 할 테지만 올봄은 따스한 바람이 퍽 더디다. 우리 집뿐 아니라 마을 다른 집도 동백꽃잔치가 늦다. 딸기꽃은 더더욱 늦고. 마침 볕이 잘 드는 아침이라 아이들하고 빨래터 물이끼를 걷으러 간다. 바닥 물이끼를 긁기 앞서 다슬기를 훑어서 옮기는데 다슬기 숫자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이곳에 다슬기가 살기에 우리 마을은 물이 맑고 넉넉히 살 만하다고 느낀다. 물이끼를 다 걷고서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 열어섯째 권을 읽는다. 예전에 읽었어도 새롭게 읽으면서 그야말로 새롭게 생각을 북돋운다. 별을 보고 싶은 아이 이야기가 애틋하고, 교수식당 아주머니를 짝사랑하다가 속내를 털어놓는 아저씨 이야기도 애틋하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이 궁금해서 장만하여 함께 읽는다. 무척 좋은 뜻으로 엮은 책일 텐데, 여든 가지 올림말이 퍽 어수선하게 뒤섞인다. 아무래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말풀이를 고스란히 따오거나 살짝 바꾸는 데에 그치면서 이 책에 옮겼기 때문이로구나 싶다. 사전 말풀이에 기대지 말고 글쓴이 나름대로 여든 가지 낱말을 새롭게 풀이하면 좋았을 텐데. 문학을 하는 이들 스스로 말풀이를 새롭게 붙일 때에 비로소 말이 새롭게 깨어날 수 있는데. 국어학자는 국어사전을 키우지 못한다. 국어학자는 학문으로 사전을 엮을 뿐이다. 사전에 담는 말을 살찌우거나 북돋우는 몫은 바로 ‘문학을 하는 어른’을 비롯해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이 맡는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은 좋은 뜻에 견주어 알맹이가 대단히 모자라다. 그리고 집·학교·학원 사이를 맴도는 아이 모습만 나올 뿐, 마을 이야기라든지 아이 나름대로 놀이를 짓거나 흙을 만지는 이야기는 따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대목도 여러모로 아쉽다. 아홉 살 나이란 ‘삐삐 긴양말’이 아버지한테서 떨어져서 살뜰한 동무들하고 어울리려고 그 큰 집을 혼자 건사하면서 살림을 꾸리는 나이가 아닌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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