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3.22.


밥을 하다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밥을 하다가 굳이 종이책을 읽어야 할까? 밑반찬이 넉넉한 날에는 밥하고 국만 하면 되기에, 냄비에 물을 맞추어 불을 올린 뒤에 십 분 남짓 느긋하게 부엌에 서서 책을 쥘 만하다. 밑반찬을 새로 하는 날에는 숨을 돌릴 틈조차 없다. 아이들을 부엌에 두고 밥짓기를 보여주면서 심부름을 맡길 적에도 매우 바쁘다. 밥하고 국에 불을 올리고서 밑반찬을 하기 앞서 《둘리틀 박사 이야기》 첫째 권을 쥐어 본다. 새 번역이 나왔다. 이 작품은 참 꾸준하게 새로운 책이 나오네 싶다. 그만큼 널리 오래 사랑받을 만하다는 뜻일 테지. 한국 작가 가운데 이렇게 오래도록 다시 나오면서 읽힐 만한 어린이문학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옮김말이 썩 좋지는 못하다. 둘리틀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읽히고 싶기는 하지만, 이만 한 옮김말은 선뜻 건네고 싶지 않다. 책을 연필로 죄다 고쳐서 건네야 할까. 아니면 내가 눈으로 살피며 머릿속으로 고쳐서 입으로 새롭게 풀어서 읽어 주어야 할까. 아니면 이 책은 굳이 안 읽히고 넘어가야 할까. 《둘리틀 박사 이야기》는 ‘어른만 읽는’ 문학이 아니라, 오래도록 ‘아이가 훨씬 좋아하며 읽는’ 문학이라는 대목을 헤아리면서 한국말로 옮겨야 한다고 본다. 《멋진 여우씨》가 겉그림이 바뀌어 새 판으로 나왔던데, 《멋진 여우씨》를 아이들이 스스로 읽게 하려고 사흘에 걸쳐 입으로 천천히 읽어 주면서 책에 나온 얄궂은 번역 말씨랑 일본 말씨를 죄다 바로잡아 놓기도 했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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