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6. 우리는 한국말을 어떻게 배울까



  ‘두껍다’하고 ‘두텁다’는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낱말입니다. 두께나 켜를 가리킬 적에는 ‘두껍다’를 쓰고, 마음이나 사랑이나 믿음을 가리킬 적에는 ‘두텁다’를 써요. 종이는 두껍고, 믿음은 두텁습니다. 책이 두껍고, 둘 사이가 두텁습니다. ‘두껍다’하고 비슷하게 ‘두툼하다·도톰하다’를 써요. ‘두텁다’가 큰말이라면 ‘도탑다’는 여린말이 될 테고요. ‘두껍다·두툼하다·도톰하다’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두께나 켜를 가리킬 적에 쓰고, ‘두텁다·도탑다’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이나 숨결이나 사랑이나 느낌을 나타낼 적에 써요.


  어린이한테 이 낱말을 가르치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어쩌면 어려울 수 있어요. 어른 가운데 ‘두껍다·두텁다’를 헷갈리며 잘못 쓰는 분이 꽤 많거든요.


  그러나 ‘두껍다·두텁다’를 잘 가누거나 살피는 어른도 많아요.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한테서 제대로 배워 슬기롭게 쓸 줄 안다면 잘못 쓰는 일이 없어요.


  ‘구제불능’이라는 한자말을 쓰는 어른이 있고, 이런 한자말은 낯설고 어려운 어린이가 있어요. ‘삼삼오오’쯤 되는 한자말은 어른한테 쉬울는지 모르나, 어른 가운데에서도 이 한자말이 어려울 수 있고 어린이한테는 매우 어려울 수 있어요.


  어떤 말을 쓰든 그 말에 우리 느낌이나 생각을 담아요. 그래서 ‘틀리게’ 쓰는 말은 없어요. 눈높이를 안 헤아리면서 쓰는 말이 있을 뿐이에요. 글이나 책은 으레 어른이 쓰고, 어린이책도 으레 어른이 써요. 어른으로서는 ‘구제불능·삼삼오오’ 같은 말이 쉽거나 흔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어린이로서는 이런 말이 너무 어렵거나 낯설 수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지요. “넌 구제불능이야”라 말하면 한결 나을까요, “넌 못 말려”라 말하면 한결 나을까요? “넌 도와줄 수 없네”나 “넌 어쩔 수 없구나”라 말해 보면 어떨까요? “삼삼오오 모였습니다”라 말하면 더 나을까요, “둘씩 셋씩 모였습니다”나 “여럿이 모였습니다”라 말하면 더 나을까요?


  시를 쓰는 어른 가운데 ‘작시(作詩)’라는 한자말을 쓰는 분이 있어요. 이분은 “작시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작시’를 찾아보면 “= 시작”으로 풀이해요. ‘시작(詩作)’은 “시를 지음”으로 풀이합니다. 곧 ‘작시 = 시작 = 시를 지음’이에요.


  ‘작시한다’나 ‘시작한다’라 말하면 무엇을 하는 줄 알 만할까요? 이러한 말을 듣거나 이러한 글을 읽으면 무엇을 알 만할까요? 한국말로 “시를 짓는다”나 “시를 쓴다”라 하면 무엇을 알 만할까요? 우리가 서로 즐겁게 주고받을 말은 어떠한 모습이나 얼거리일 적에 한결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웁거나 즐거울까요?


  한자말 ‘작업(作業)’은 “일을 함”을 뜻합니다. ‘일하기 = 작업’인 셈입니다. 한국말사전에 ‘일하기’는 안 실립니다. ‘작업’만 나오지요. 한국말사전에 ‘일·일하다’는 실려요. ‘일하기’는 한국말사전에 새 낱말로 실을 만할까요, 안 실어도 될 만할까요? 일을 할 적에 “일을 합니다”나 “일합니다”라 말하면 될까요, “작업을 합니다”라 말하면 될까요?


  곁에 어린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셔요. 어린이한테 어른으로서 “이 아저씨는 작업을 하지.” 하고 말할 적하고 “이 아줌마는 일을 하지.” 하고 말할 적을 헤아려 보셔요. 어느 말을 아이들이 잘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 만할까요? 아이가 늘 듣고 배우면서 새롭게 가꿀 말은 어떻게 가다듬거나 이끌 적에 좋을까요?


불안하다(不安-) : 1.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하다 2.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하다

초조하다(焦燥-) : 애가 타서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조마조마하다 : 닥쳐올 일에 대하여 염려가 되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다


  한국말사전은 ‘불안하다 = 조마조마하다’로 풀이합니다. ‘초조하다 = 조마조마하다’로 풀이하지요. ‘조마조마하다 = 초조하고 불안하다’로 풀이합니다. 이제 찬찬히 짚어 볼까요. ‘불안하다·초조하다·조마조마하다’는 어떤 뜻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낱말일까요? 우리는 어떤 낱말을 알맞게 쓰면서 우리 뜻이나 느낌을 나타낼 만할까요? 한국말사전을 엮은 학자는 어떤 생각으로 말풀이를 이처럼 붙였을까요?


제각기(-各其) : 1. 저마다 각기 2. 저마다 따로따로

각기(各其) : 저마다의 사람이나 사물 2. 각각 저마다

저마다 : 1. 각각의 사람이나 사물마다 2. 각각의 사람이나 사물

각각(各各) : 1. 사람이나 물건의 하나하나 2. 사람이나 물건의 하나하나마다. ‘따로따로’로 순화

따로따로 : 한데 섞이거나 함께 있지 않고 여럿이 다 각각 떨어져서


  ‘제각기·각기·저마다·각각·따로따로’라는 다섯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봅니다. 말풀이가 빙글빙글 돌아요. 이 낱말은 저 낱말로 풀이하고, 저 낱말은 이 낱말로 풀이합니다. 이러한 다섯 낱말하고 얽힌 실타래를 간추리자면, ‘제각기 = 저마다 각기 = 각각 저마다’입니다. ‘각기 = 저마다/각각 저마다 = 각각/각각 각각’입니다. ‘저마다 = 각각’이요, ‘각각 = 하나하나마다/따로따로’인데, ‘각각’은 ‘따로따로’로 고쳐써야 한다지요. 그런데요, ‘따로따로’로 고쳐써야 한다는 ‘각각’인데, 한국말사전은 ‘따로따로 = 각각’으로 풀이합니다.


  우리 어른은 어떤 낱말을 알맞게 가리거나 살펴서 쓰면 좋을까요? 우리 어른은 어린이한테 어떤 말을 가르치거나 물려주어야 즐거울까요?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어떤 한국말을 듣거나 배울 만할까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 어른은 한국말을 어려서부터 어떻게 배우고 살았을는지 아리송합니다. 한국말사전 말풀이가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얽히고 설키면서 돌림풀이에 겹말풀이인데, 한국말을 배울 적에 한국말사전을 곁에 둘 수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더 생각해 본다면, 외국사람이 한국말을 배우려 할 적에 한국말사전을 곁에 두고서 배울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외국사람이 한국말사전을 들추면서 한국말을 배우려 하다가 그만 사전을 내동댕이치지는 않을까 모르겠어요. 이 나라 아이들이 한국말사전을 펼치며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려 하다가도 그만 골이 아프고 어지러워서 “난 한국말 안 배울래! 그냥 영어를 쓸래!” 하고 외치지는 않을까요. 아름다운 외국 문학을 한국말로 옮기려던 번역가도 한국말사전을 살피며 번역말을 고르다가 “난 번역 안 할래! 그냥 외국말만 할래!” 하고 외치지는 않을는지요.


직접(直接) : [부사] 중간에 아무것도 개재시키지 아니하고 바로

손수 : 남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제 손으로 직접

몸소 : 1. 직접 제 몸으로

바로 : 1. 비뚤어지거나 굽은 데가 없이 곧게 5. 시간적인 간격을 두지 아니하고 곧

곧 : 1. 때를 넘기지 아니하고 지체 없이 4. 다름 아닌 바로


  ‘손수’하고 ‘직접’ 같은 한국말을 풀이할 적조차 ‘직접’이라는 한자말을 끼워넣는 한국말사전입니다. ‘직접’을 풀이할 적에는 ‘바로’를 쓰기는 하는데, ‘바로’를 풀이하면서 ‘곧’을 쓰고, ‘곧’을 풀이할 적에 ‘바로’를 쓰면서 돌림풀이예요.


  참으로 수수께끼입니다만, 이 수수께끼를 풀면서 처음부터 새롭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배우는 길을 닦아야지 싶습니다. 나라에서는 억지스레 국정 역사 교과서를 쓴다며 큰돈을 퍼붓지 말고, 한국말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틀과 터를 닦는 길에 제대로 마음을 쏟을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도 생각과 마음을 말 한 마디에 슬기롭게 담도록 스스로 새롭게 배워야 할 테고요. 2017.1.1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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