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3.4.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는 길에는 내내 선다. 마침 오늘은 저잣날이었네. 군내버스는 할매랑 할배로 빼곡하다. 나는 사진틀 석 점을 한 덩이로 묶은 묵직한 짐을 한쪽에 세우고서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가만히 눈을 감는다. 대중노래가 흐르는 군내버스에서 오직 내 마음을 그리고 내 꿈을 생각해 본다. 이렇게 이십 분을 달리니 읍내. 순천 가는 버스표를 끊고 나서 비로소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가방에서 꺼내려는데 순천 가는 버스가 마침 읍내 버스역에 들어온다. 짐칸에 사진틀하고 짐가방을 싣는다. 책 한 권만 가벼이 들고 자리에 앉는다. 책을 펴려는데 졸음이 엄청나게 쏟아진다. 하기는, 어제는 내내 밑반찬 두 가지를 하느라 애썼고, 바깥일을 보러 나온다며 이것저것 집 안팎을 치우고 갈무리하느라 바빴다. 이러면서 두어 시간만 눈을 붙이고 밤 한 시부터 짐을 꾸리고 글을 썼으니 졸릴 수밖에.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는 어떤 책일까? 이토록 졸음이 쏟아질 적에 읽을 수 있는가, 아니면 책을 덮고 단잠에 빠지면 좋을까? 아무튼 몇 쪽을 읽는데 졸음은 더 떠오르지 않는다. 순천에 내려서 도시락을 먹은 뒤 포항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끝까지 다 읽는다. 이 책을 쓴 분은 어릴 적부터 뚱뚱한 몸 때문에 너무 크고 깊게 마음이 다쳤다는데, 이렇게 다치면서 자라는 동안 어느덧 스스로 일어서서 바라보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았다고 한다. 뚱뚱한 그대여, 날씬한 자네여, 뚱뚱하건 날씬하건 우리가 눈을 가만히 감으면 겉모습은 하나도 안 보일 뿐 아니라 몸무게조차 알 길이 없는 줄 알 테지요? 마음을 읽고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때라야 바야흐로 사람다운 삶터라고 느낀다. 이를 헤아리지 않는 이가 많으니, 아니 지나치게 많으니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이 샘솟는다. 사회가 평등하지 않은 계급으로 얼룩졌으니 계급을 떨치고 평등한 길로 나아가도록 땀을 쏟는 이들이 있을 수밖에. 부디 앞으로도 씩씩하면서 즐겁게 삶을 사랑하며 이웃들한테도 기쁨을 이야기하는 이 길에 서시기를.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