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동네 게시판 크레용하우스 동시집 1
박혜선 지음, 김정진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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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6



새봄에 깨어날 개구리를 기다리며 읽는 시

― 개구리 동네 게시판

 박혜선 글

 김정진 그림

 크레용하우스 펴냄, 2011.6.29. 9000원



  겨울이 지나고 봄이 가까우면 몇 가지 그리우면서 반가운 님이 우리 곁에 새롭게 찾아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설렙니다. 첫째, 개구리가 곧 깨어나겠지 하고 생각해요. 둘째, 개구리에 이어 풀벌레도 깨어날 테지 하고 생각해요. 셋째, 겨울을 앞두고 이 땅을 떠난 숱한 철새가 다시 찾아오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박혜선 님이 빚은 동시집 《개구리 동네 게시판》(크레용하우스,2011)을 읽으며 새봄에 반가울 님 가운데 개구리를 떠올려 봅니다. 아, 개구리 노랫소리란! 개구리 뜀박질이란! 이슬 내린 풀잎에 앉아서 아침을 맞이하는 풀개구리를 보는 기쁨이란!



내가 아플 때 / 엄마 맘은 / 더 아프다 하셨다 // 개나리 엄마도 그랬을까? / 내가 노란 꽃 똑똑 따서 / 꽃비처럼 뿌리며 놀았을 때 (후회)


도장 콩, 찍는 대신 / 꽃잎 한 장 붙여 둔 / 개구리 동네 게시판 (개구리 동네 게시판)



  동시집 《개구리 동네 게시판》은 시골에서 사는 아이가 바라보는 모습이 잔잔히 흐릅니다. 오늘날 나오는 거의 모든 동시집이나 동화책은 도시 이야기가 바탕이에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도시에서 학교랑 학원 사이에서 맴돌이질하는 이야기만 지나치도록 넘치는 어린이문학이지 싶어요. 아무래도 시골에 사는 아이가 매우 적고, 거의 모든 아이가 도시에서 사니까, 이른바 ‘거의 모든 독자’ 눈높이를 맞추자면 시골 이야기보다 도시 이야기가 걸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 한 마디를 묻고 싶어요. 그러면 시골 어린이를 헤아리는 동시나 동화는 없어도 될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얼마 안 되는 독자’를 헤아리면서 이 시골 아이가 시골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아끼도록 북돋우는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은 없어도 될까요?



나보다 더 어렸을 때 / 엄마가 한 낙서 // 늙지도 않고 / 그대로 있다. (외갓집에 가면)


어스름한 저녁 / 엄마보다 먼저 / 대문을 들어서는 흙냄새 // 엄마가 자고 일어난 자리에 / 소르르 / 흙이 떨어져 있다. (우리 엄마)



  시골스러운 이야기를 시골스러운 목소리로 들려주기에 ‘시골 아이만 읽는 어린이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길어올린 시골 동시도 ‘도시 아이가 즐길 어린이문학’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만해요. 도시에서 살더라도 도시사람이 늘 먹는 모든 밥은 시골에서 지어요. 시골이 있기에 밥도 나물도 뭍고기도 물고기도 먹어요.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서 책걸상을 짜고 종이를 빚고 책을 엮어요. 시골에 아름드리 숲이 있기에 도시에서도 싱그럽고 푸른 바람을 마실 수 있어요.


  아무리 시골사람 숫자가 적더라도, 시골은 도시를 이루는 바탕이라 할 만해요. 아무리 시골 아이들이 아직도 빠르게 줄어들면서 도시로 빠져나가더라도 온누리 아이들은 시골스러운 숨결을 먹고 마시며 자란다는 대목을 놓칠 수 없어요.



사람이 텔레비전을 보는 게 아니라 / 텔레비전이 사람을 본다 // 말 한마디 없이 / 멀뚱멀뚱 자기만 쳐다보는 사람들 / 텔레비전은 참 우습다 (사람 보기)


빈 항아리 속에 떨어진 / 감 이파리 한 장도 / 따라간다 // 감 이파리 위에서 잠자던 / 달팽이 한 마리도 / 달팽이처럼 장롱 구석을 기웃거리던 / 왕귀뚜리 한 마리도 / 왕귀뚜리 눈처럼 까만 / 풀씨 몇 알도 / 빈 화분에 얹혀 (이사)



  차분하게 흐르는 동시를 읽습니다. 빠르게 내달리지 않는 삶결을 보여주는 동시를 읽습니다. 서로 나누는 살림을 드러내는 동시를 읽고, 철 따라 새롭게 드러나는 이야기가 깃든 동시를 읽습니다.


  달력이나 손전화나 텔레비전 모두 내려놓고 생각해 보아요. 교과서를 들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달이나 날이나 철하고 동떨어져요. 국어 과목도 수학 과목도 사회나 과학이나 영어 같은 과목도, 막상 달이나 날이나 철을 헤아리지 않아요. 철 흐름이 안 담기는 교과서이고, 철 흐름을 살피지 못하는 교육 얼거리예요.


  겨울이 저무는 새봄이기에 들과 밭과 숲을 거닐면 푸릇푸릇 돋는 봄맞이풀하고 봄맞이꽃을 만날 수 있어요. 나무마다 곧 터지려는 조그마한 움을 찾을 수 있어요. 풀 한 포기가 교과서 노릇을 하고, 나무 한 그루가 참고서 구실을 해요. 멧새 한 마리가 교사 노릇을 하고, 풀벌레 한 마리가 강사 구실을 해요.



오월 한낮에 / 하얀 / 싸락눈 // 녹지도 않고 / 가지마다 조물조물 / 매달려 있다. (조팝나무)


전기톱이 / 나뭇가지를 땅으로 / 떨어뜨린다 / 잘려 나가는 / 그 가지 / 까치집일 수도 있는데 / 참새 놀이터일 수도 있는데 (가로수)



  《개구리 동네 게시판》에는 꽃잎이 붙는다고 해요. 사람 마을 게시판에는 무엇이 붙을까요? 개구리 마을에서는 냇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는 일이 없을 테지요? 사람 마을에서는 아직도 냇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는 일을 벌이고, 숲을 밀며, 오랜 골목마을을 부수는 일이 끊이지 않아요.


  도시에서 왜 가지치기를 해야 할까요? 나무가 무엇을 가리거나 막기에 그렇게 모질도록 줄기를 뭉텅뭉텅 베어야 할까요?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닦는 길보다, 사람이 아늑하게 거닐기에 좋은 길로 바꿀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교과서를 빨리 떼면서 시험성적이 잘 나오도록 하는 교육을 내려놓고는, 아이들이 숲바람을 쐬고 햇볕을 쬐면서 싱그럽게 자라도록 이끄는 새로운 배움맏당을 열 수 있을까요?



학교 가는 발걸음 / 바람의 입김이 보태지면 / 더 가볍다 / 체육 시간 / 땀 흘린 내 몸 / 바람이 스치면 / 금방 시원해진다 / 잠들 때도 / 창틈으로 달캉달캉 / 꽃내음 뿌려 주는 바람 (미안하다 바람아)



  새봄에 깨어날 개구리를 기다리며 시를 읽습니다. 새봄에 개구리랑 나란히 노래잔치를 벌일 풀벌레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시를 읽습니다. 새봄에 우리 집 처마 밑으로 제비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시를 읽습니다. 새봄에 흐를 흰구름을 꿈꾸면서, 새봄에 피어날 들꽃을 기다리며, 새봄에 터질 매화꽃이며 모과꽃이며 민들레꽃이며 앵두꽃이며 딸기꽃이며 기다리면서 시를 읽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작은 동시집을 가슴에 품고 즐거울 수 있기를 빕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도 작은 동시집을 두 손에 쥐며 너른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2017.2.2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동시읽기/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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