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365
신해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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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83



천사한테서 몸을 꾼 시인은 빚에 시달리며

― 생물성

 신해욱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9.9.7. 8000



  아이들은 마을고양이한테 밥을 챙겨 줍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밥을 챙겨 줍니다. 나한테는 나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있고, 곁에서 지켜보는 살붙이가 있으며, 둘레에서 생각해 주는 이웃이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숨결로 하루를 맞이하면서도 가만가만 이어지는 삶이지 싶습니다. 살아서 움직이기에 서로 얽히는 살림이지 싶습니다.


  신해욱 님이 빚은 시집 《생물성》(문학과지성사,2009)에서 흐르는 숨결을 헤아려 봅니다. 서로 얽힌 듯 만 듯 보이면서도 언제나 서로 가늘게 잇닿은 끈으로 맺는 모습을 시 한 줄로 읽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서며 스스로 말하는 목숨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그렇지만 나는 정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 나는 내가 되어가고 / 나는 나를 / 좋아하고 싶어지지만 / 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축, 생일)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 내가 속한 시간과 / 나를 벗어난 시간을 / 생각한다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가지런히 두는 법을 배운 적 없더라도, 아이하고 함께 살며 가지런히 두는 법을 새롭게 배워서 가르칩니다. 더 맛나게 밥을 짓는 길을 배운 적 없더라도, 아이하고 함께 지내며 맛나게 밥상을 차려서 나누는 길을 새삼스레 배워서 물려줍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길을 문득 돌아봅니다.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는 길을 새로 살핍니다. 둘레에서 저마다 다른 살림을 가꾸는 이웃을 품는 길을 하나씩 천천히 헤아립니다.



귀가 몇 개만 더 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 물이 물에 녹는 / 소리 속에서 / 오래오래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 (귀)



  귀가 둘뿐이기에 소리를 더 적게 듣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귀가 둘이어도 소리를 더 넉넉히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귀가 열이나 스물이어도 아뭇소리를 안 듣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어요.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어요. 마을고양이가 배고프다며 우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어요. 택배 짐차가 서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어요. 물 끓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어요.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어요. 나비가 번데기를 벗고 깨어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어요.



실은 내가 부러웠던 건 / 네가 아니라 / 너의 부드러운 손가락 . // 너의 손가락으로 / 내 손을 잡고 / 내 얼굴을 만지고 / 그리고 네 얼굴을 만지는 것. // 사랑은 왜 세 사람이 할 수 없을까. / 왜 세상에는 / 너와 밖에 없는 것일까. (손)



  시집 《생물성》에 흐르는 ‘생물성’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우리가 사람이라는 목숨으로서 어떤 숨결을 짓거나 이루거나 나누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 손하고 네 손가락이 얼크러지는 사이를 생각합니다. 네 얼굴하고 내 이마가 맞닿는 틈을 생각합니다. 바람 소리하고 구름 소리는 어느 만큼 벌어지는가를 생각하고, 풀잎하고 나뭇잎 사이에 어떤 소리가 흐르는가를 생각합니다.



한쪽 눈에 하얀 안대를 하고 / 하얀 마스크를 썼다. // 쥐에게도 개에게도 얼굴이 있다는 걸 생가하면 / 나는 터무니없이 부끄러워지고 / 풀이 죽는다. (생물성)


천사에게 / 몸을 꾸었다. // 부족하지 않을 만큼 나에게도 있었는데 / 시간과의 비례가 / 나는 아주 좋지 않은 경우였다고 한다. // 천사의 몸으로서 / 앞으로 나는 빚에 시달리게 된다. (빚)



  시를 쓴 신해욱 님은 천사한테서 몸을 꾸는 바람에 내내 빚에 시달릴밖에 없다고 합니다. 모자라지 않을 만큼 몸뚱이가 많았는데에도 천사한테서 새삼스레 몸을 꾸었다고 합니다.


  허울 같은 몸을 여럿 건사한다면 이 허울을 벗는 날부터 홀가분할 만할까요. 자꾸 새로운 옷을 꾸려고 하기보다는 내 낡은 몸이 오늘부터 새로운 몸이 되도록 가꿀 수 있을까요. ‘빚’하고 ‘빛’은 고작 삐침 하나가 다를 뿐이지만, 두 말은 아주 크게 벌어집니다. 그러고 보면 ‘나’하고 ‘너’도 고작 삐침 하나가 엇갈릴 뿐입니다.


  빚을 지면서 빛을 바라고, 빛을 가꾸면서 빚을 텁니다. 나를 아끼는 손길로 너를 아끼고, 너를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나를 스스로 사랑합니다. 이제 시인은 나비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천사한테서 꾼 몸을 돌려주고 스스로 허물벗기를 하면서 나비로 깨어날 하루를 맞이할 만할는지요. 그동안 짊어진 빚은 참말 낡은 허물로 내려놓고서 스스로 새 몸이 되어 깨어날 수 있을까요.


  시를 읽는 사람은 싯말에 흐르는 숨결을 받아먹으면서 스스로 깨어나려는 꿈을 짓고 싶은 마음이지 싶습니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바람이 천천히 바뀝니다. 뭍바람이 어느새 바닷바람으로 바뀌는 2월입니다. 2017.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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