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화살 애지시선 56
고영서 지음 / 애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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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80



‘엑소·빅뱅’ 아닌데 아이들이 금남로에 섰다

― 우는 화살

 고영서 글

 애지 펴냄, 2014.11.15. 9000원



  1980년 5월 전라도 광주에 들이닥친 계엄군이 헬리콥터를 띄워 총을 쏘아댔다는 이야기가 2017년에 이르러 비로소 밝혀집니다. 이때에 누가 ‘헬기사격’을 하라고 시켰는가 하는 대목은 아직 안 밝혀집니다만, 이 대목도 머잖아 밝혀질 테지요.


  군사쿠테타와 계엄령과 학살하고 얽힌 묵은 실타래가 낱낱이 밝혀지기까지 참 오래 걸립니다. 그날 뒤로 어느덧 마흔 해가 가까워요. 그날 그곳에서 그 피비린내를 지켜본 사람이 있고,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있으며, 살붙이와 동무와 이웃을 잃은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여기에 어느 만큼 귀를 기울이거나 마음을 두었을까요.



밀림지역에서 봉사를 하다보면 / 말라리아는 수도 없이 걸린다는데 / 한국의 수녀들은 말라리아가 도지면 / 우리나라 라면을 약으로 생각하고 / 끓여 먹는단다 / 밍밍한 그곳 음식만 먹다가 / 매운맛에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 감기조차 뚝, 떨어졌다는 것 (그들의 처방전)



  시집 《우는 화살》(애지,2014)에는 ‘1980년 광주’하고 얽힌 사람들 이야기가 줄줄이 흐릅니다. 살았어도 살았다고 하기 어려운 나날을 보내야 하던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죽었어도 이 땅을 고이 뜨지 못한 사람들 이야기가 나란히 흐릅니다. 살아도 산 듯하지 않고 죽어도 죽은 듯하지 않은 사람들 곁에서 애면글면 하루하루 보낸 사람들 이야기가 같이 흘러요.



“저 사람이 나를 때리려 한다” “뛰어, 뛰어!” “전두환이 내 일을 방해하고 있다” 병세는 갈수록 악화되었으나, 신체적 피해만 인정해 준다는 5·18 특별법 탓에 월 17만원의 기초생활 수급자로 홀로 살아오다 2012년 6월 24일 새벽,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했다 세상을 떴다 향년 53세 (부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고 그러고도 그렇게 얼굴 둘르고 살고 있는거 보믄은 비참헌 일이고 귀신이 있다믄 원흉들 그대로 놔두지 않고 다 잡아 죽였을 턴디 귀신도 없는 것 같으고 (닦아도 닦이지 않는)



  시집 《우는 화살》은 애면글면 눈물아는 삶을 시로 그리면서 다른 삶 하나를 시로 그립니다. 생채기를 그득 짊어지며 하루하루 힘겨운 사람들 삶 곁에 새롭게 일어서려는 아이들 삶을 함께 비추어 줍니다. 이른바 “엑소에 열광하던 아이들”이 노란 꽃댕기를 가슴에 달고 금남로에 서는 이야기를 시로 그립니다.



승객들을 놓아둔 채 / 줄행랑을 치던 선장이 / 이 나라에 한둘이겠습니까? / 청와대는 재난수습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 발뺌하는 무리들이 / 따스한 생명을 구할 수나 있었겠는지 (그때 이후로)


엑소에 열광하던 아이들이 / 소녀시대 카라 미쓰에이 빅뱅이 / 온 것도 아닌데 / 5월 17일 금남로에 섰다 // 34년 전 그날, / 세월호로 가슴 아픈 오늘을 / 잊제 않겠어요 / 손 피켓을 들고 / 촛불을 들고 (세월호 꽃영정)



  “엑소에 열광하던 아이들”만 금남로에 서지 않습니다. “서태지에 열광하던 아이들”이나 “이문세에 열광하던 아이들”도 금남로나 광화문에 섭니다. “전인권에 열광하던 아이들”도 “신중현에 열광하던 아이들”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이를 먹은 몸짓으로 함께 금남로나 광화문에 서요.


  푸르게 자라던 풋풋한 날에 교과서만 들여다보지 않던 아이들이 사회를 함께 바라보면서 꼿꼿하게 섭니다. 푸르게 빛나는 얼굴로 웃고 춤추던 아이들이 사회를 마주할 적에 찬바람과 눈보라에도 씩씩하게 맞서면서 섭니다.



마당 한 귀퉁이 무쇠솥이 끓는데 / 어머닌 행주도 대지 않은 손으로 / 뚜껑을 열고 / 뜨건 물을 푹푹 퍼 나르시네 (푸른 손)


꽃이 암만 이뻬도 쳐다볼 새가 있을랍디여 / 죽은 서방 생각할 짬이 있다요 / 저 너른 양파밭 누가 봐도 오지제마는 / 당최 품삯도 못 건지는 가실 아닌게라우 / 사방간디 쑤시고 애리다가도 해 뜨먼 벌떡 인나지고 / 금메, 봄이면 씨앗을 또 안 뿌리겄소 (풍년의 역설)



  화살이 웁니다. 날아가는 화살이 울고, 꽂힌 화살이 웁니다. 손에 쥔 화살이 울고, 저 멀리 바람을 가르며 나는 화살이 웁니다. 시집에 깃든 사람들 삶이 눈물겹고, 이들 언저리에서 애틋하게 하루하루 일구는 사람들 손길이 눈물겹습니다.


  그러나 이 눈물겨운 삶은 눈물로만 젖은 채 고이거나 멈출 수 없습니다. 노래로 거듭날 삶이요, 웃음으로 다시 태어날 살림입니다. 금남로에도 광화문에도 촛불잔치를 넘어서 덩실덩실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기쁨잔치가 벌어지도록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어두운 곳일수록 밝게 빛나는 별처럼, 싱그럽게 푸른 아이들이 자라 슬기로운 어른이 되어 온누리를 아름답게 갈아엎을 수 있겠지요?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다가오면 쟁기와 호미와 삽을 챙겨서 땅을 갈아엎어 씨앗 한 톨 새로 심을 수 있겠지요? 2017.1.2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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