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 - 한국인 같은 일본인, 일본인 같은 한국인 부부의 일본 이야기
케이 지음 / 모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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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89



“이 쉐끼, 나쁜 여자.”

― 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

 케이 글

 모요사 펴냄, 2016.12.26. 15000원



  일본으로 배움길을 떠난 케이(정현숙) 님은 석사논문을 발표하고 나서 어느 건축회사 디자인 일을 맡기로 합니다. 이때에 만난 어느 일본사람하고 끈이 이어져 혼인을 했고, 일본에서 살며 틈틈이 한국으로 마실을 오는 나날을 보낸다고 합니다. 일본사람인 곁님은 한국을 좋아하고 틀림없이 예전 삶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리라 여긴다고 합니다. 일본 한자 이름을 풀이하여 ‘깨달음’이라는 한국 이름을 써 보기도 하고, 한국에 있는 장모님은 이녁을 ‘깨 서방’으로 부른다고 해요.


  한 지붕 두 나라 살림 이야기를 엮은 《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모요사,2016)은 책이름처럼 일본사람인 곁님을 두면서 지내는 동안 겪거나 느끼거나 배우거나 지켜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본 이름으로 불릴 때의 내 모습과 한국 이름으로 불릴 때의 내 모습이 약간 다를 때가 있다. 일본 이름으로 불리면 가끔 내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일본인 모드로 행동한다. 더 예의 바르게, 더 상냥하게, 더 열심히, 더 바르게 몸이 움직인다. (21쪽)


외국인, 특히 한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을 당연시하는 단체와 그룹들이 아직도 일본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게 놀랍지만 그것이 엄연한 21세기 일본의 현재 모습이다. (23쪽)



  일본에서 사는 케이 님은 ‘외국인 차별’이나 ‘한국인 차별’을 곧잘 보거나 겪는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이 같은 사람(일본사람)이 있다니 무척 놀랍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만 그와 같지 않아요. 한국도 어느 대목에서는 놀라울 만큼 바보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차별’이 있어요. ‘이주노동자’가 아직 차별을 받아요. 한국으로 시집오는 아시아 여성도 아직 차별을 받지요. 이 같은 모습은 차츰 나아진다고 하지만 아직 뿌리뽑히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부정부패가 얼룩진 한국 정치·경제·사회도 무척 놀랄 만한 바보스러운 모습이지 싶어요. 더구나 부정부패를 일삼은 정치권력자를 따르거나 믿거나 추켜세우는 이들이 꽤 많기도 합니다. ‘일본 극우’는 일본에서 바보스러운 모습으로 놀랍다면 ‘한국 극우’는 한국에서 바보스러운 모습으로 놀랍다고 할 만하다고 느껴요.



(남편) 깨달음이 얼굴을 내 얼굴에 바짝 들이대고는 한국말로 “이 쉐끼, 나쁜 여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 어디서 그런 말을 …… 배웠어?” “한국 영화에 많이 나오잖아?” “그래도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38쪽)


“조카들이 나를 위해서 일본어로 한마디씩 준비해 준 게 정말 감동적이었어. 일본인인 나를 위해서 일본어를 준비한 그 마음과 정성이 정말 예쁘고, 고맙고, 미안했어. 우리 조카들은 한국인 숙모를 위해 한국어 인사를 준비하려는 생각은 아마 못할 거야.” (51쪽)



  케이 님 곁님이 어느 날 “이 쉐끼, 나쁜 여자.”라고 말했답니다. 뭔가 못마땅한 일이 있어 케이 님한테 그 마음을 나타내려고 ‘어설프게나마 배운’ 한국말을 썼다고 해요. “이 쉐끼, 나쁜 여자.” 같은 말을 듣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나 느낌일는지까지는 모르지만, ‘영화에 자주’ 나와서 이 말이 익숙했고, 못마땅하다고 느낄 적에 이런 말을 쓰면 되겠거니 하고 여겼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국 영화에 거친 말이 퍽 자주 나옵니다. 연속극에서도 그렇고요.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 영화나 연속극이 일본이나 중국이나 여러 나라로 퍼지곤 하는데, 이런 영화나 연속극에서 흘러나오는 ‘한국말’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 본다면, 꽤 아찔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영화에 나오는 바보스러운 거친 말’이 ‘한국에서 가볍게 쓰는 여느 말’인 줄 생각할 수 있어요.



“일본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는 말 그대로 화장실에서만 쓰는데 한국에서는 여러 용도로 쓰잖아. 이렇게 이사 선물로도 쓰고 식당에서도 쓰잖아. 내가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식당 테이블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놓여 있어서 좀 거북했거든. 한국에서는 화장실 용과 방 안에서 쓰는 휴지를 구분하지 않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지.” (133쪽)



  《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에 나오는 ‘깨달음’이라는 분은 ‘일본사람이기에 더 예의 바르거나 상냥하거나 바지런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한국에도 예의 바르거나 상냥하거나 바지런한 사람이 많아요. 일본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일본이나 한국에도 건방지거나 짓궂거나 게으른 사람이 똑같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모습을 보면서 ‘일본다운’ 모습이거나 ‘한국다운’ 모습이라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우리가 서로 아끼거나 헤아리려는 몸짓으로 어우러질 적에 느끼거나 마주하는 모습이지 싶어요.


  따스한 숨결이 되기에 서로 따스한 마음을 나누지 싶습니다. 매몰찬 몸짓으로 부딪히기에 그저 서로 매몰차다고 느끼지 싶습니다. 나고 자라며 지켜보는 살림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 사이뿐 아니라, 같은 한국이나 일본 사이에서도 집집마다 달라요. 김치 맛이나 된장 맛이 집집마다 달라요. 옷가지를 개거나 설거지를 하는 손길도 집집마다 다르지요.


  다 다른 살림을 생각할 수 있기에 서로 즐거이 만나요. 서로 다른 삶을 고이 바라볼 수 있기에 동무로 사귀거나 짝꿍이 될 수 있어요.



배추에 속을 넣는 작업을 하는데 역시 눈썰미가 있어서인지 그녀는 한 번밖에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아주 잘했다. 정중히 무릎을 꿇고 차분히 김치를 버무리는 모습이 역시 일본사람 같다고 했더니 한국사람처럼 양반다리를 하는 게 자기는 너무 힘들다고 했다. (308쪽)


지금껏 한국 역사를 일본에서 발행된 역사책으로만 보다가 한국어로 된 역사책을 접하게 되고 그 역사를 생생히 알려주는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던 한일관계와는 전혀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웠단다. (324쪽)



  일본에서 나오는 역사책이라고 해서 ‘우 편향’이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역사를 올곧게 바라보면서 책으로 쓰는 학자가 많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역사를 뒤틀거나 비틀려는 학자가 있어요. 이리하여 ‘국정 역사교과서’가 크게 말썽이지요. 더 따진다면 역사를 다룬 교과서뿐 아니라 사회나 문화나 노동이나 경제를 다루는 교과서에서도 ‘우 편향’이니 ‘극우’로 치달을 적에는 엉터리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



“난 솔직히 받고 싶었어. 어머님이 뿌리치는 내 손을 잡고 꼭 쥐어주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그냥 받았어. 다시 돌려드리더라도 그때는 그냥 어머님이 하시는 대로 놔두고 싶더라고.” (82쪽)



  케이와 깨달음이라는 두 분이 짓는 아기자기한 살림 이야기는 누리사랑방(http://keijapan.tistory.com/)에 틈틈이 올라옵니다. 처음에는 한국이 그리워 누리사랑방에 글을 올렸다는데, 이제 이 수수한 글은 한 지붕 두 나라 사이에서 가꾸는 따스하고 즐거운 이야기로 거듭나리라 봅니다. 아끼는 마음이 서로 닮아 가고, 헤아리는 마음도 서로 닮아 가는 길에서, 두 가시버시뿐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서도 슬기롭게 이어지기를 빕니다. 2017.1.2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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