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다정한 - 엄마와 고양이가 함께한 시간
정서윤 글.사진 / 안나푸르나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사진책 읽기 346



‘우리 집 순돌이’가 된 길고양이

― 무심한 듯 다정한

 정서윤 글·사진

 안나푸르나 펴냄, 2016.5.27. 13800원



  부산에서 살며 일하는 정서윤 님은 어느 날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만납니다. 이 길고양이하고 다섯 달 즈음 만나면서 밥을 챙겨 주었다고 해요. 누군가 이 길고양이를 거두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정서윤 님 스스로 이 길고양이를 건사하자고 생각을 바꾸었답니다. 새끼 고양이 아닌 다 큰 고양이 한 마리는 정서윤 님한테 새로운 동생처럼 한식구가 됩니다.


  사진책 《무심한 듯 다정한》(안나푸르나,2016)은 길고양이를 한식구로 맞아들이고 나서 ‘집에 어떤 바람이 새롭게 불었나’ 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이끄는 이야기 주인공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정서윤 님이 아닙니다. 글쓴이를 낳은 어머니, 바로 ‘할머니’입니다.



솔직히 순돌이를 찍기 전에는 엄마의 모습을 애써 찍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순돌이와의 예정된 이별에 대해서는 늘 생각하면서, 정작 나이 든 엄마와의 이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7쪽)



  할머니한테 ‘다 큰 딸’은 집에 늦게 들어옵니다. 할머니한테 할아버지(남편)은 집에서 거의 아무 말이 없습니다. 하루 내내 몹시 조용한 집인데, 길고양이 한 마리가 새롭게 찾아들면서 집안 바람이 바뀝니다. 길고양이는 ‘순돌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제 순돌이는 조용하던 집이 덜 조용하도록 북돋웁니다. 말을 나눌 살붙이가 거의 없는 집안에서 할머니한테 말동무가 되어 줍니다. ‘우리 집 순돌이’가 되었어요.



겨울철 순돌이를 따라다니면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를 찾을 수 있다. 엄마는 따뜻한 곳만 잘도 골라 눕는 순돌이가 몹시 똑똑하다며 감탄하다가, 곁에 누워 토닥여 주며 ‘등 지지기 모드’에 돌입하셨다. (49쪽)


여름이면 삼베 이불을 즐겨 덮는 엄마는 순돌이 잠자리에도 풀 먹인 삼베 이불을 깔아 주셨다. (119쪽)



  《무심한 듯 다정한》을 빚은 정서윤 님은 처음에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우리 한식구로 받아들이며 아끼는 마음이었다고 해요. 이러다가 이 마음이 ‘어머니(할머니)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로 차츰 달라졌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집안에서 순돌이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새 식구 순돌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다가, 어느새 ‘순돌이 사진’보다는 ‘순돌이하고 함께 있는 어머니’ 사진을 찍는 손길로 달라졌다고 해요.


  이러면서 어머니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껏 다른 사진은 제법 찍었으나 막상 ‘우리 어머니 사진’은 찍을 생각을 거의 해 보지 않았다고 해요. 가장 가까이에 있어 온 숨결을 여태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순돌이가 집안에 새로 깃들면서 글쓴이 삶에서 “무심한 듯 다정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문득 깨달았다고 합니다.



집 안 곳곳 순돌이가 즐겨 머무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엄마가 깔아 놓은 두툼한 수건잉 있다. 순돌이는 자기만의 지정석을 찾아가 야무진 식빵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 창밖을 본다. (135쪽)


순돌이가 가족이 된 후에 찍은 사진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전에 입양 보내려던 고양이가 맞느냐며 다들 놀랐다. 편안한 생활 덕에 살이 올라 예쁘게 보인 점도 있겠지만, 극적인 변화의 가장 큰 이유로 사랑을 꼽고 싶다. (157쪽)



  《무심한 듯 다정한》에는 순돌이 한 마리만 나옵니다. 이때까지 정서윤 님은 나이든 어머니 아버지하고 한집에 살아요. 책을 내고 한 해가 지난 2017년, 정서윤 님은 혼인을 하면서 제금을 난다고 하는데, 함께 살아갈 짝꿍한테도 길고양이 한 마리가 오랜 한식구로 있다고 하는군요. 정서윤 님은 혼인을 하며 제금을 나더라도 주말부부로 지내야 하는 터라 순돌이도 꽃비도 어머니(할머니) 곁에 둘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마치 손자처럼 살뜰히 돌보며 아낀 순돌이를 떠나 보내기 힘들던 할머니(어머니)는 손자 하나가 더 생긴 셈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무심한 듯 다정한” 이야기는 새롭게 거듭나겠군요. 두 손자(순돌이·꽃비)하고 어우러지는 할머니 이야기가 태어날 테고, 어쩌면 할아버지 이야기도 살몃살몃 묻어날 수 있습니다. 얌전한 순돌이와 달리 개구진 꽃비라고 하니까, 집안에서 말수가 거의 없는 할아버지가 말문을 활짝 트는 모습이 되도록 이끌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작은 손길을 뻗어 길고양이 한 마리를 한식구로 받아들인 뒤, 살림살이가 시나브로 달라집니다. 길에서 흔히 보는 고양이가 아니라, 마음을 나눌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손길이었기에, 이 작은 손길에 따사로운 이야기가 흐를 수 있구나 싶습니다. 모두 튼튼하고 즐겁게, 이러면서 넉넉하고 곱게 하루를 짓는 이야기꽃이 되기를 빕니다. 2017.1.16.달.ㅅㄴㄹ


순돌이하고 꽃비가 어우러진 사진을 만나려면 https://www.instagram.com/fly_yuna/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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