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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야, 진실을 말해 줘! ㅣ 틀을 깨는 과학 시리즈 1
캐슬린 퀴들린스키 글, 세바스티아 세라 그림, 이재윤 옮김 / 나는별 / 2015년 10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11
과학자와 기상청이 모르는 날씨
― 날씨야, 진실을 말해 줘!
캐슬린 퀴들린스키 글
세바스티아 세라 그림
이재윤 옮김
나는별 펴냄, 2015.10.17. 12000원
그림책 《날씨야, 진실을 말해 줘!》(나는별,2015)는 날씨가 무엇이요 날씨를 어떻게 미리 읽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날씨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기상청은 으레 ‘틀린 예보’를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기상청도 이런 말을 늘 듣는 터라 ‘맞는 예보’를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더 빼어난 슈퍼컴퓨터를 갖추어 날씨를 읽겠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더 빼어난 슈퍼컴퓨터를 갖춘다 하더라도 ‘컴퓨터로 못 읽는’ 날씨가 자꾸 생겨요.
날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태양열이에요. 또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폭풍도 이동하지요. 그리고 지구가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날씨도 바뀌는 거고요. 이밖에도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아주 많아요. (11쪽)
어느 모로 본다면, 날씨를 못 읽는 ‘목숨’은 오직 사람뿐일 수 있습니다. 사람 가운데에서도 ‘오늘날 도시사람’만 날씨를 못 읽는다고 할 수 있어요. 둘레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 대목을 잘 깨달을 만해요. 새나 벌레나 짐승은 날씨를 읽어요. 풀이나 나무나 꽃도 날씨를 읽지요. 사람은 날씨를 미리 못 읽더라도 이 지구에 있는 수많은 다른 목숨은 저마다 날씨를 읽어요.
왜 다른 목숨은 날씨를 읽을까요? 다른 목숨은 컴퓨터에 기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목숨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날씨 예보를 듣지 않아요. 그러면 다른 목숨은 무엇을 할까요? 다른 목숨은 그들 나름대로 스스로 바람을 읽고 해를 읽으며 흙을 읽어요. 개미도 사마귀도 날씨를 읽어요. 베짱이도 민들레도 날씨를 읽어요. 철에 맞추어 움직이고, 철에 따라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아주 잘 알아요.
2천여 년 전, 배를 타던 선원들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날씨를 예측하고 대비했어요. 해가 뜰 때에 하늘이 붉게 물들면 미리 조심했고, 해가 질 때에 하늘이 붉게 물들면 기뻐했지요. (15쪽)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이나 여러 아시아 나라 옛사람은 ‘둘레에 있는 다른 목숨’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찬찬히 살폈어요. 제비 날갯짓을 살피고, 개미 움직임을 살폈지요. 풀잎이나 꽃송이를 살폈어요. 나무와 열매를 살폈어요. 왜냐하면 이 모든 목숨은 ‘어떤 날씨가 다가오겠구나’ 하고 미리 알려주거든요. 사람을 뺀 모든 목숨은 앞으로 다가올 날씨에 맞추어 일찌감치 움직여요.
우리도 바람맛을 보면서 날씨를 어림할 수 있습니다. 책상맡이나 자가용이나 건물에 깃든 몸이 아니라, 해를 죄고 바람을 마시고 흙을 만지면서 날씨를 읽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날씨란 바로 ‘해·바람·흙’이 어떻게 달리 움직이는가를 살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학자들은 날씨에 대해 쉼 없이 연구하고 있어요. 빗방울이 생기게 도와주는 세균을 연구하는 과학자, 토네이도나 태풍이 언제 시작하는지를 예측하는 과학자, 심지어 다른 행성의 날씨를 조사하는 과학자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날씨에 대해 모르는 게 아주 많아요. (28쪽)
과학자와 기상청은 날씨를 여러모로 살핍니다. 다만 ‘이미 일어난 날씨’를 자료로 모아서 통계를 내면서 살펴요. 인공위성이나 적외선사진이라든지 여러 기계와 설비로 뽑아낸 자료를 바탕으로 ‘날씨 통계 예보’를 해요. 다시 말하자면, 과학자와 기상청은 ‘스스로 살핀 날씨’가 아니라 ‘통계와 자료를 바탕으로 평균을 어림한 숫자’를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과학자와 기상청은 날씨를 ‘알’ 수 없어요. 해와 바람과 흙을 스스로 온몸으로 마주하면서 날씨를 살피지 않으니 ‘통계 자료’를 넘어서는 날씨를 알거나 배우거나 깨달을 수 없는 셈이에요.
더욱이 오늘날에는 날씨를 놓고 여러 가지 다른 것이 더 불거집니다. 끝없이 늘어나는 엄청난 자동차가 있고, 이 자동차가 움직이면서 내뿜는 배기가스가 있어요. 줄어들지 않고 새로 늘기만 하는 공장이 있고,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이 한 번 쓰이면 쓰레기가 되어요. 댐을 지어 수돗물을 잇고, 똥오줌은 하수도를 거쳐 쓰레기로 버려져요. ‘온난화’ 테두리를 훨씬 넘어서는 도시 물질문명이 날씨를 끊임없이 흔들어요. 이는 컴퓨터 통계나 숫자로는 더 짚을 수 없겠지요.
핵발전소와 전쟁무기가 뒤바꾸는 날씨는 컴퓨터가 얼마나 잘 알려줄까요? 미국을 비롯한 여러 강대국이 꾸준히 벌이는 핵실험 때문에 날씨는 얼마나 많이 바뀔까요? 최첨단 전쟁무기를 새로 만들고 실험하고 전쟁을 벌이기 때문에 날씨는 또 얼마나 많이 바뀔까요?
사람이 다른 목숨과 견주어 날씨를 참말로 못 읽는 까닭을 들자면, 아무래도 이 모두를 통들어서 생각하지 못하는 탓이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우리 스스로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땅을 굽어살피지 않아요. 도시에서 살더라도 텃밭을 짓는 이들은 텃밭에 쪼그려앉아서 호미질을 하는 동안 날씨를 문득문득 느끼며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새를 지켜보고 나무를 가꾸는 사람도 문득문득 날씨를 헤아릴 수 있어요. 이른바 ‘철이 드는’ 사람이 될 적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하는 ‘철(날씨)’을 읽는구나 싶어요. 2017.1.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