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교육 어떻게 할까 - 초등학교 통일 교육 이야기
김현희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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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42



‘안보·분단’에 밀리는 ‘평화·통일’ 초등교육

― 통일 교육 어떻게 할까?

 김현희·박희나·양미정·이경아·장세영·함규진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6.12.25. 13000원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고 할 적에는 무기를 들지 않아요. 너랑 내가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면, 너뿐 아니라 나도 무기가 없어야 해요. 어느 한쪽에 다른 한쪽을 괴롭힐 무기가 있다면, 둘은 사이좋게 지낼 수 없어요. 그렇다고 둘 다 무기를 잔뜩 갖추어 놓는다면, 아무리 입으로는 사이좋게 지내자고 말한다 하더라도 막상 사이좋게 지내기는 어려워요.


  남녘하고 북녘 사이에 전쟁무기가 대단히 많습니다. 남북을 가르는 곳은 흔히 비무장지대라고 하지만, 이 이름하고 다르게 ‘어마어마한 무기’가 그곳에 있어요. 대인지뢰도 발목지뢰도 엄청나게 묻혔고, 총을 든 군인이 엄청나게 많으며, 남북은 서로 미사일과 대포로 겨누어요. 이러다 보니 남녘이든 북녘이든 ‘통일 교육’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남녘이나 북녘 모두 ‘안보 교육’으로 기울어요.



교사가 수학이나 과학을 한 번 더 봐 준다면 부모님들이 좋아하시겠죠. 하지만 자기 반만 데리고 통일 교육 현장 학습을 간다고 하면 부모님들이 높게 평가해 줄 것 같진 않아요. 오히려 ‘저 교사, 혹시 의식화된 거 아냐?’라며 사상을 의심한다거나 하는 게 보통이죠 … 교사 모임에서 대화를 해 보면 교사들도 학부모니까, 수학이나 영어는 어느 학원이 좋고 어디는 나쁘다는 등등의 이야기들만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제가 통일 교육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 ‘도덕 교과서에 통일 이야기가 있었나?’ 하는 식이지요. (24, 27쪽)



  김현희·박희나·양미정·이경아·장세영·함규진, 이렇게 여섯 사람이 ‘통일 교육’을 놓고 이야기를 벌여서 엮은 《통일 교육 어떻게 할까?》(철수와영희,2016)를 읽으면서 오늘날 남녘에서는 어떤 통일 교육이 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분단이나 전쟁이나 안보가 아닌, 평화나 통일이나 민주를 아이들한테 가르치고 싶은데, 막상 ‘평화·통일·민주’를 가르치기에는 교과서로는 턱없이 모자라다고 해요. 교과서로도 모자라고, 수업 시간도 모자라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교과서에서는 통일보다는 안보로 기울어지고, 북녘을 ‘통일을 이룰 한겨레’로 바라보려는 눈길이 매우 얕다고 합니다.


  어쩌면 북녘에서도 남녘 사회를 놓고 ‘통일을 이룰 한겨레’가 아닌 ‘안보’라는 허울로 덮어씌울는지 모릅니다. 남북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기 바란다면, 남녘뿐 아니라 북녘도 전쟁무기를 새로 만들거나 늘리려는 몸짓을 멈출 수 있어야 하거든요. 전쟁무기를 뒤에 감추어 놓는다면 어느 누구도 어깨동무를 못 하니까요.



북한 주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이미 반공 교육과 언론 등을 통해서 오랫동안 우리한테 학습이 되어 왔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남한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 불신감과 우월 의식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 도덕 교과서에서도 북한에 대한 부정적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좋은 점이나 우수한 점, 북한 출신 중에 누가 뛰어나다는 내용은 없고, 낙후됐고 살기 힘들고 너무 비안간적인 곳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53, 56쪽)



  남녘 정부는 갑작스레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밀어붙였습니다. 아직도 이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밀어붙이려 합니다. 그런데 사회 한쪽에서 불거진 모습으로는 ‘국정 역사 교과서’ 하나이지만, 막상 초등학교 다른 교과서를 보면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사회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바라보도록 할 수밖에 없는 얼거리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국정 역사 교과서’만 몰아내면 될 일이 아니라고 해요. 분단과 전쟁과 안보로 치우친 ‘초등 교과서’ 모두를 깊이 파헤쳐서 제대로 다시 엮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도덕’ 교과서도, ‘사회’ 교과서도, 그리고 ‘국어’ 교과서에다가 다른 교과서까지, 어떤 줄거리를 어떠한 눈길로 다루는가를 찬찬히 살펴서 슬기롭게 바로세울 때라야 비로소 평화와 통일과 민주를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틀이 옳게 설 수 있다고 해요. 아찔한 노릇입니다.



국가를 위해서 안보를 강화하면 할수록 개인의 안보는 점점 위협받는 상황인 거예요. 애당초 개인의 안보를 위하여 국가가 존재하는 것인데 말이지요. 하지만 인간 안보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남북한이 모두 군축을 하고, 긴장 완화를 하고, 서로간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들자!’라고 하게 되죠. (149쪽)


통일 전망대에서 군인들이 안보를 강조한 설명을 하지 않나요? 그리고 땅굴 체험을 과연 통일 교육으로 볼 수 있을까요? 어찌 보면 통일 전망대에서 이뤄지는 설명이나 땅굴 견학은 통일 교육이 아닌 반공 교육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해요. (169쪽)



  서울에 ‘전쟁기념관’이 있습니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일이 말이 될 수 없을 테지만, 전쟁기념관이 섰습니다. 전쟁기념관에는 한국이 그동안 치러야 했던 수많은 전쟁이나 아픔이나 슬픔이나 생채기를 다루기보다는 2/3에 이르는 전시물은 한국전쟁하고 얽힌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보다도, 이에 앞서 이 나라가 막아낸 숱한 전쟁보다도 한국전쟁하고 얽혀 안보와 분단을 내세우는 전시물이 지나치게 많다고 해요.


  기념관이나 박물관을 생각한다면, 또 이러한 기념관이나 박물관에 아이들을 이끌고 찾아가서 역사를 가르치는 길을 헤아린다면, 우리는 ‘전쟁기념관’이 아닌 ‘평화기념관’을 세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평화를 기리고, 평화를 생각하며, 평화를 꿈꿀 수 있도록 해야지 싶어요.


  평화를 지키려고 몸을 바친 이야기를 기념관에서 보여주어야 하겠지요. 평화를 이루려고 힘을 쏟은 이야기를 기념관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하겠지요. 온갖 전쟁무기를 ‘유물’로 다루지 말고, 평화로운 삶과 살림과 사람 이야기가 흐르는 터전을 세워서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 하겠지요.



우리나라 역사가 몇 천 년 동안 치러낸 전쟁이 1천 번에 가깝다는데 전쟁 기념관 전시물은 3분의 2가량이 한국전쟁 관련 전시물입니다. (171쪽)


전통 음악에 대해서 남한은 전해져 내려온 음악 체계를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해야 맞다는 식이고, 북한은 ‘음악이란 본래 당대의 인민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아서 시대가 변한 만큼 서양적 요소 등도 통합시켜야 맞다고 보니까 접근법이 다르죠. (189쪽)



  《통일 교육 어떻게 할까?》를 읽다 보면 한국 사회나 학교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무척 답답할 만합니다. 통일을 바라지 않는 듯한 ‘교육부 통일 교과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아니,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기보다 오직 ‘안보와 전쟁만을 바라는구나’ 싶은 교육부 교과서 모습을 엿볼 수 있어요.


  남녘하고 북녘은 서로 다른 정치로 나뉘면서 사회와 문화도 서로 다르게 흘렀습니다. 이 책에서 밝히기도 하는데, 남녘은 전통 음악이라 하면 손끝 하나 안 건드리는 노래로 여기고, 북녘은 전통 음악을 오늘날 새롭게 읽어서 가꾸는 노래로 여긴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남녘은 일제강점기에 스며든 수많은 일본 말투나 일본 한자말이나 번역 말투를 제대로 손질해 내지 못했고 고쳐쓰지도 못해요. 북녘은 수많은 일본 말투나 일본 한자말이나 번역 말투를 꽤 손질해 내거나 고쳐씁니다. 그러나 북녘은 당 정책이나 정치와 얽혀서 쓰는 말에는 일본 한자말이나 번역 말투가 있습니다. 북녘에는 ‘러시아말’이 퍽 많습니다. 남녘에서는 요즈음 들어 ‘쉬운 한국말’을 새로 지으려는 물결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영어가 대단히 많이 스며들었지요.



북한말도 그냥 하나의 사투리로 받아들이면 거부감이 사라질 것 같아요. 오히려 동질성 차원에서 자꾸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게 북한을 열등하게 만들고, 남한이 더 우월하니까 우리를 따라야 된다는 강제성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2쪽)



  ‘안보·전쟁’에 밀리는 ‘평화·통일’ 초등교육을 그대로 둘 적에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교육부가 아직도 붙잡는 ‘국정 역사 교과서’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역사를 제대로 읽지 못하도록 뒤틀려는 속셈이라면, 안보와 전쟁으로 가득한 초등 교과서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역사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도 제대로 읽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는 몸짓이라고 할 만하지 싶습니다.


  너와 내가 어깨동무를 하려면, 남녘하고 북녘이 어깨동무를 하려면, 우리가 서로 평화롭게 살림을 지으려면, 참말로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 교육이란 평화 교육이에요. 통일 교육이란 민주 교육이에요. 전쟁무기를 내려놓고서 어깨동무를 하는 길을 슬기롭게 밝힐 통일 교육이에요. 이제는 남북녘 모두 전쟁무기에 엄청난 돈을 퍼붓는 몸짓을 그치고서, 남북녘 모두 삶과 사회와 마을을 서로 아름답게 가꾸는 길에 온힘을 쏟는 얼거리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통일 교육이에요.



정부가 통일을 정말 원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어요. 통일을 원한다는 나라에서 보여주는 것이 북한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만을 강조하고 있잖아요. (28쪽)


사실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의 해방과 분단 과정을 제대로만 다뤄 준다면, 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을 충분히 이끌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교사들 또한 그에 대한 역사의식이 있어야 되겠죠. (42쪽)



  자꾸 안보에 힘을 실으며 ‘통일비용’이 많이 든다는 걱정을 정치권에서 비추기도 하지만, 남북녘은 서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된 채 있기 때문에 ‘분단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요. 남북녘 모든 전쟁무기는 바로 ‘분단비용’이에요. 비무장지대에 넘치는 전쟁무기가 바로 분단비용이지요. 남북녘 젊은이가 군대에서 서로 적이 되어 맞서야 하는 일이 바로 분단비용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깎아내리거나 미워하는 모든 짓이 바로 분단비용이에요. 평화와 민주를 바라는 통일을 가르치지 못하고 안보와 전쟁으로 기울어지는 모든 몸짓이 곧 분단비용이지요.


  초등 교과서가 안보와 전쟁으로 물든 때를 벗기지 못하는 우리네 학교라면, 《통일 교육 어떻게 할까?》 같은 책을 교과서 옆에 두고서 아이들하고 평화·통일·민주를 새롭게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서로 죽음길로 치닫는 분단비용을 몰아내고서, 서로 살림길로 거듭나는 통일비용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갈 길은 분단과 전쟁이 아닌 평화와 통일과 민주이니까요. 2017.1.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인문책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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