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날



  처음이 있다고 여기니 마지막이 있고, 이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저곳이 있어요. 처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고 여길 만하니, 한 해를 열두 달로 나눌 수 있고, 한 달을 서른 날로 가를 수 있어요. 그런데 어느 해 어느 날이든 우리한테는 모두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열 살 나이에 맞이하는 12월 31일도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서른 살 나이에 맞이하는 1월 1일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나는 이를 아마 아홉 살 즈음에 불현듯 깨달았다고 느끼는데, 어릴 적에는 집이나 학교나 마을에서 ‘하도 얻어맞는 일’이 잦아서 ‘빨리 나이를 더 먹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박정희에 이은 전두환 독재는 어디에나 시퍼런 서슬을 뻗었어요. 그렇지만 꼭 정치 탓만 할 수는 없을 테지요. 그런 어두운 때에도 아이를 한 번도 안 때리고 따스히 돌본 보금자리는 틀림없이 있었으니까요. 2016년 12월 31일이든 2017년 1월 1일이든 대수로울 일은 없으나,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언제나 꼭 한 번만 찾아와서 누리는 새로운 날이라고 생각하며 아침을 엽니다. ‘ㅅㅎㄱ’을 어떻게 엮으면 즐겁거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2016.12.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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