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4. ‘따뜻함’을 잃으면서 망가뜨리는 말
도시는 높직한 건물이 많고 찻길이 넓지만 곳곳에 나무를 심습니다. 도시를 처음 닦을 적에는 나무가 없어도, 어느 도시이든 스무 해쯤 지나고 보면 나무가 제법 우거집니다. 시골에도 나무는 많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해를 가려 그늘을 드리운다고 하기에 커다란 나무를 자꾸 베기 일쑤입니다. 들판 사이에 난 길에는 나무가 한 그루조차 없기도 합니다. 이 ‘나무’를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나무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써서 집을 지으면 ‘나무집’이라 안 하고 ‘목조 주택’이라 일컫기 일쑤입니다. 나무를 만지는 사람을 두고 ‘나무꾼·나무지기·나무장이(나무쟁이)·나무님’ 같은 이름은 거의 안 쓰고 으레 ‘목수’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나무로 집을 짓거나 예술을 할 적에도 ‘나무’라 안 하고 ‘목재’라는 한자말을 써요. 나무를 다루는 일도 ‘나무질·나무일·나무짓기’가 아닌 ‘목공·목공예’라고만 하고요.
‘고목나무’는 겹말입니다. ‘고목’이라는 한자말이 나무를 가리키니 ‘-나무’를 덧달 수 없어요. ‘동해·남해’가 바다를 가리키니 이대로만 써야 하는데 ‘동해 바다·남해 바다’처럼 얄궂게 쓰는 겹말하고 같은 얼거리입니다.
‘고목’은 무엇일까요? 한글로만 적으면 알 수 없습니다. ‘古木’은 “큰 나무”를 가리킨다 하고, ‘枯木’은 “죽은 나무”를 가리킨다 해요. 한자를 안 밝히면 ‘고목’이 어떤 나무인지 모르는데, 누구나 알기 쉽도록 ‘큰나무’나 ‘죽은나무’처럼 새 낱말을 지어서 쓸 만해요. ‘큰나무·죽은나무’처럼 쓰면 ‘古木·枯木’ 사이에서 헷갈릴 일이 없고, ‘고목나무’ 같은 겹말은 사라져요.
어떤 일을 겪는다고 할 적에 한자말로 ‘체득·체험·경험’을 쓰기도 합니다. ‘체득’은 “몸소 체험하여 알게 됨”을 가리키고, ‘체험’은 “자기가 몸소 겪음. 또는 그런 경험”을 가리키며, ‘경험’은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을 가리킨다고 해요. 이러한 뜻을 살핀다면 세 낱말은 서로 돌림풀이인데, “몸소 체득하다”나 “몸소 체험하다”나 “몸소 경험하다”처럼 쓰면 모두 겹말인 줄 알 수 있어요. ‘몸소’라는 말을 쓰고 싶으면 “몸소 하다”나 “몸소 부딪히다”로 쓸 노릇이요, 한국말로는 ‘겪다’만 쓰면 됩니다.
‘망연자실’이라는 한자말이 있어요. 이런 한자말을 한국말사전에서 말뜻을 찾아보는 사람은 퍽 드물지 싶어요. 둘레에서 이런 한자말을 쓰니 그냥 따라서 쓰는 사람이 많아요. ‘망연자실’ 옆에 ‘茫然自失’ 같은 한자를 달아 놓는다고 해서 말뜻을 알 만하지 않아요. “멍하니 정신을 잃음”이란 말뜻을 밝혀 주어야 비로소 느낌을 헤아리겠지요. 이런 말뜻을 헤아려 본다면 “망연자실하여 넋을 잃었다”처럼 쓰면 겹말이로구나 하고 깨닫겠지요. 여기에서 더 생각할 수 있다면 “넋을 잃었다”만 써도 넉넉한 줄 알아차릴 테고, 비슷한말로 ‘멍하다·얼떨떨하다·얼떨하다’가 있어서, 이 여러 가지 낱말을 알맞게 쓸 수 있어요.
따뜻하다 : 1. 덥지 않을 정도로 온도가 알맞게 높다 2. 감정, 태도, 분위기 따위가 정답고 포근하다
포근하다 : 2. 감정이나 분위기 따위가 보드랍고 따뜻하여 편안한 느낌이 있다
정(情) : 1.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2.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
정답다(情-) : 따뜻한 정이 있다
“따뜻한 정”이라는 말마디를 생각해 봐요. 사회에서 무척 널리 쓰는 말마디 가운데 하나인 “따뜻한 정”이에요. 도시에 있는 이웃님은 시골에 와서 “따뜻한 정”을 느낀다는 얘기를 흔히 하고, 도시에서는 서로 “따뜻한 정”을 찾자는 목소리가 높아요.
그런데 말뜻을 찬찬히 짚으면 ‘따뜻하다 = 정답고 포근하다’라고 해요. ‘정답다 = 따뜻한 정이 있다’라고 해요. ‘포근하다 = 보드랍고 따뜻하여 편안하다’라고 해요. 말뜻이 빙빙 돌아요. 돌림풀이예요. 그러니까 “따뜻한 정 = 따뜻한 따뜻한 정”인 얼거리요, 다시 “따뜻한 따뜻한 따뜻한 정”처럼 끝없이 ‘따뜻한’이 되풀이되고 말아요.
눈이 밝은 분이라면 이 대목에서 아하 하고 알아차리리라 생각해요. ‘정 = 마음’을 가리키니, “따뜻한 마음”이라고 하면 넉넉하네 하고 알아챌 만해요. 단출하게 ‘따뜻함’이라고만 해도 “따뜻한 마음”을 나타낼 수 있어요. 비슷하게 ‘따스함·다스함·따사로움·다사로움’을 쓸 수 있고, ‘포근함’도 좋아요. 이밖에 “따뜻한 기운”이나 “따뜻한 손길”이나 “따뜻한 눈길”이나 “따뜻한 품”이나 “따뜻한 숨결”이라고 해 볼 만합니다.
숙련(熟鍊/熟練) : 연습을 많이 하여 능숙하게 익힘
능숙하다(能熟-) : 능하고 익숙하다
능하다(能-) : 어떤 일 따위에 뛰어나다
익숙하다 : 1. 어떤 일을 여러 번 하여 서투르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익다 : 1. 자주 경험하여 조금도 서투르지 않다 2. 여러 번 겪어 설지 않다
솜씨 : 1. 손을 놀려 무엇을 만들거나 어떤 일을 하는 재주 2. 일을 처리하는 수단이나 수완
재주 : 1.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
어떤 일을 훌륭히 할 적에 “숙련된 솜씨”라고 일컫곤 해요. 이 말마디도 한번 헤아려 봐요. ‘숙련’은 “능숙하게 익힘”을 가리킨다는데, ‘능숙’은 “능하고 익숙함”을 가리키고, ‘능하다’는 ‘뛰어나다’를 가리킨대요. 이모저모 따지면 ‘숙련(숙련되다)’은 ‘솜씨’ 있는 모습을 가리키기에 “숙련된 솜씨”는 겹말이에요. ‘숙련’이라는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숙련된 손길”이나 “숙련된 몸짓”이라 해야 올발라요. ‘솜씨’라는 한국말을 쓰고 싶다면 “빼어난 솜씨”나 “훌륭한 솜씨”라 해야겠지요.
한자말을 쓰든 한국말을 쓰든 말뜻을 제대로 짚지 않거나 말결을 올바로 살피지 않으니 겹말 얼거리가 돼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슬기롭게 못 쓰지요. 말을 뛰어나게 하거나 훌륭하게 해야 하지는 않을 테지만 제대로 알맞게 살뜰히 가다듬을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솜씨’나 ‘말재주’가 모자라더라도 틀린 말이나 엉뚱한 말이나 얄궂은 말은 안 쓸 수 있어야지요.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보통’이 있어요. 그러면 ‘보통’이란 무엇일까요? 한자말 ‘보통(普通)’은 “1.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2. 일반적으로. 또는 흔히”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평범(平凡)’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를 가리킨다고 해요. 한국말사전 뜻풀이는 돌림풀이로군요. 그런데 ‘흔히’를 “보통보다 더 자주 있거나 일어나서 쉽게 접할 수 있게”로 풀이하고, ‘특별(特別)’을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으로 풀이하기에 겹말풀이가 되기까지 합니다. ‘보통 =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 =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지 아니하고 + 보통보다 자주 볼 수 있어 + 보통임’인 꼴이기 때문이에요. ‘보통’을 풀이하면서 나타나는 세 가지 낱말이 모두 ‘보통’이거든요.
자, 그렇다면 참말로 ‘보통’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보통’은 어떤 낱말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흔히’라 할 수 있고, 때로는 ‘여느’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수수한’으로 손볼 만한 자리가 있고, ‘으레’로 손보면 어울리는 때가 있습니다.
‘매일(每日)’은 “1. 각각의 개별적인 나날 2. 하루하루마다”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에는 “≒ 일일(日日)·과일(課日)·식일(式日)”처럼 비슷한말을 싣는데 ‘일일·과일·식일’은 모두 “= 매일”로 풀이해요. 그러나 이 같은 한자말은 모두 털어내어도 될 만하다고 느낍니다. ‘날마다’나 ‘나날이’를 쓰면 되고, ‘하루하루’나 ‘늘’이나 ‘언제나’로 손질하면 돼요. 그나저나 이런 말뜻과 말결을 안 살피기에 ‘매일마다’ 같은 겹말을 쓰는 분이 퍽 많아요. 날마다 쓰는 한국말이지만 깊고 넓게 살피지 않는 탓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그러니까 시나브로 한국말을 날마다 망가뜨리는 짓을 하고 맙니다. 2016.11.1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