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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여행하는 법 -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 장석훈 옮김 / 유유 / 2016년 3월
평점 :
책읽기 삶읽기 280
먼길 여행 말고 ‘우리 집 나들이’ 즐기기
― 내 방 여행하는 법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글
장석훈 옮김
유유 펴냄, 2016.3.24. 12000원
1790년 어느 날, 프랑스 어느 곳에서 살던 어떤 사람이 어떤 장교하고 결투를 벌인 뒤 마흔이틀에 걸쳐 ‘가택연금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흔이틀 동안 집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나설 수 없었다는데, 감옥에 갇힌 일도 아니고 그저 집에만 있으면 될 뿐이라지만, 너무도 심심하고 더없이 따분한 나머지 문득 ‘새로운 나들이’를 하기로 다짐을 했대요. 이러면서 이 아무개 씨가 한 일은 “우리 집 나들이”입니다.
이 “우리 집 나들이”는 곧 글로 태어났고 책으로도 나왔다고 해요. 한국말로는 《내 방 여행하는 법》(유유,2016)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우리 집”에서 고작 “내 방”만 맴돌았는데 ‘여행’을 했다는군요.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에 더 환호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냐고? 누구긴, 바로 부자들이다. 병약한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인 새로운 여행법이 아닐 수 없다. 날씨와 기후의 변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15쪽)
1700년대를 살던 아무개 씨는 프랑스사람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님입니다. 이녁이 사는 집은 클까요? 집에 거느리는 사람이 여럿 있으니 아무래도 작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렇다고 아주 크지는 않을 듯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읽는 동안 글쓴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나오는 ‘내 방에서 새롭게 만나고 느낀 것’들은 글쓴이 가까이에 있고, 글쓴이는 방에서 몇 걸음 옮기지 않거든요.
먼발치에 있는 것에서 새로움을 찾지 않습니다. 늘 곁에 있다고 여겼으나 늘 잊거나 지나치던 작고 수수한 것에서 새로움을 찾습니다.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멀디먼 곳으로 가야만 여행이 아니라고 느꼈대요. 글쓴이는 마흔이틀 동안 집에 갇힌 몸이 되어야 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녁 집을 꼼꼼히 낱낱이 샅샅이 뜯어보았다 하고, 이러면서 그야말로 새로운 여행을 누렸다고 해요.
정해진 길을 고집하지 않고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듯 정신의 상념을 좇는 것보다 더 매혹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내 방 여행을 하면서 곧바로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22쪽)
물질에서 벗어나 영혼이 언제든 홀로 여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하고도 유용한 일이다. (37쪽)
나는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발견의 여정에 있다. (64쪽)
어느 모로 보면 돈 한 푼 안 드는 여행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내 삶을 차분히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내 살림살이가 어떠한 모습인가를 곰곰이 살펴보는 하루예요.
먼 곳으로 길을 나설 적에 새로움을 느끼려면, 먼저 우리 집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겠구나 싶습니다. 내가 발을 디딘 이곳에서 새로움을 못 느낀다면, 다른 곳에서도 새로움을 못 느끼지 않을까요? 다른 곳에서는 그야말로 ‘다른 것(다름)’만 느끼지 않을까요?
다름이 아닌 새로움을 느끼면서 비로소 스스로 새롭게 깨어나는 느낌을 맞아들일 만하지 싶어요. 새롭게 깨어나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비로소 하나씩 새롭게 배울 테고, 새롭게 배우면서 우리 삶을 즐겁거나 기쁘게 바라볼 만하지 싶어요.
거울이라는 작품은 지금 내가 여행하는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경이로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여러분도 인정할 것이다. (112쪽)
이 편지들을 보면서 재미있던 젊은 시절의 일을 되새기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136쪽)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쓴 분은 이녁 방에 붙은 그림을 보면서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그림에 깃든 사람한테 말을 걸기도 합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이녁 스스로 ‘말을 걸고 말을 듣’습니다. 책상서랍에서 묵은 편지를 꺼내어 읽다가 옛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집에 갇힌 몸’인 줄 잊습니다. 묵은 편지 한 통으로도 즐겁게 꿈나라로 날아가요.
그러니 우리는 “우리 집 나들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마루랑 마당에서도 얼마든지 나들이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도 신나게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아주 먼 고장까지 가야만 여행이 되지 않겠지요. 가까운 이웃마을로 가도 여행이 되고, 가까운 이웃집으로 찾아가도 여행이 돼요. 아이들은 심부름으로 마을가게를 다녀오는 동안에도 여행을 누릴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 어느 자리에 섰는가를 돌아보기에 여행이라고 할까요. 우리 스스로 어느 삶터에 깃들면서 어떠한 삶을 짓는가를 되새기기에 여행인 셈이라 할까요. 작은 몸짓과 손짓과 눈짓으로도 마음을 살찌우는 길을 “우리 집 나들이”에서 찾아나설 수 있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2016.12.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