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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시전집 - 1953-1992
이연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11월
평점 :
시를 노래하는 말 272
성노동자 곁에서 아픔을 받아쓴 이야기
― 이연주 시전집 1953-1992
이연주 글
최측의농간 펴냄, 2016.11.2. 13500원
1953년에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서, 1992년에 숨을 거둔 이연주 님이 있습니다. 이녁은 1985년부터 ‘풀밭’이라는 시 동인으로 뛰었고, 1989년에 《월간문학》에 신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1991년에 첫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을 냈고, 1993년에 유고 시집 《속죄양, 유다》가 나왔다고 해요. 그리고 2016년에 《이연주 시전집 1953-1992》(최측의농간)이 나옵니다.
《이연주 시전집》을 읽으면서 ‘아프니까 아프다고 쓴다’라는 글월이 문득 떠오릅니다. 누가 이런 글을 썼는지 떠오르지는 않으나, 이 시집은 참으로 이 말이 잘 맞아떨어진다고 느낍니다. 시를 쓴 이연주 님 스스로 더없이 마음이 아프기에 이 아픔을 시로 삭여내고, 이연주 님이 이녁 삶자리에서 마주하는 이웃들 살림이 그지없이 아프기에 이 아픔을 고스란히 시로 그려냅니다.
가보라 하더구만, 끊어진 길 어귀에서 / 그래, / 내 갔지. / 어허, 어둡고 / 천지사방 막혀 / 갈퀴진 길, 벌건 살 뻐드러진 험한 / 내 갔던 길. (길)
바느질감을 내려놓으시며 어머니, 긴 한숨이 차고 슬프다. / 나는 시계를 본다. / 왜 이렇게 어수선한지 모르겠군요, 날 좀 / 내버려둬요. / 가족을 버리겠다는 거냐? /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하진 않아요, 벌써 오래된 일이잖아요. / 그건 네가 환상을 꿈꾸어 왔기 때문이야. / 이제라도 뜻을 바꾸면 행복해질 게다. / 행복? 그래요, 행복 …… (지리한 대화)
맑게 웃으며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으레 ‘아이들한테서 맑고 즐거운 기운’을 받는다고 말해요. 맑은 웃음을 받고 즐거운 놀이를 저절로 물려받는다고 하지요.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지만, 이때에는 어른이 아이한테서 배운다고 할 만해요.
아파서 앓고, 괴로워서 끙끙거리는 이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으레 ‘아픈 이웃한테서 아픔을 고스란히 이어받’습니다. 아픔을 이어받으면서 ‘아픈 이웃이 홀로 짊어질 무게를 나누어’ 준다고 할까요.
기쁨은 나누면 곱이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토막이 된다고 해요. 《이연주 시전집》에 깃든 싯말은 하나하나 ‘이웃 슬픔을 반토막을 내려는 노래’요, 때로는 ‘이웃 슬픔을 몽땅 도려내고 싶은 노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렇게 살 바엔,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던 / 사내도 있었다. / 이렇게 살 바엔― / 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 쥐새끼들이 천장을 갉아댄다. (매음녀 1)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꼬물거린다. / 한때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매음녀 4)
시를 쓴 이연주 님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고 합니다. 이때에 기지촌 성노동자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간호사 자리에서 바라본 성노동자 삶을 시로 옮기면서 이연주 님은 고스란히 ‘성노동자 눈길하고 마음’이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웃 아픔을 시로 쓰며 내 아픔이 됩’니다. 마음이 아픈 채 시를 쓰다 보니 ‘아프니까 아프다고 쓴다’를 넘어섭니다. 이 아픔은 ‘시를 읽는 사람’한테도 시나브로 스며듭니다.
신문을 찢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다가 / 몇 군데 전화를 걸다가 / 건어포를 우물우물 깨물다가 / 생맥주 한 조끼를 클클클 마시다가 / 개 같은 날씨, 당한 거야, 그래 / 사는 게 음모라는 걸 몰랐으니 / 중얼거리다가 (그렇게, 그저 그렇게)
잠에서 깨어보니 내가 없다 / 위층집 하수구가 꾸르륵거렸다 / 음악을 크게 틀었다 / 꾸르륵 소리를 틀어막았다 / 음악소리로 꾸르륵 소리나 틀어막는 / 조연급으로 사는 게 나는 내 마음에 든다 / 잠에서 깨어보니, 그런데 / 사라진 나는 어디로 갔을까? (성자의 권리·8)
신문을 찢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던 시인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생맥주 한 조끼를 마시다가 날씨 탓을 하며 온누리는 온통 꿍꿍이라고 중얼거리던 시인은 말없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위층집 하수구 소리를 틀어막으려고 노래를 크게 틀던 시인은 어느새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스물 몇 해 만에 새로운 시집으로 우리 곁에 다시 찾아온 시인은 아무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녁이 이웃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껴안던 아픔에 서린 목소리는 고스란히 들을 수 있습니다. 아픈 목소리로 가득한 시집을 읽자니 내 마음도 함께 아픕니다. 아프니까 아프다고 말할밖에 없는데, 이 아픔이 이제는 하나둘 녹을 수 있기를 빌어요. 이 괴로움이 앞으로는 찬찬히 스러질 수 있기를 빌어요.
아픔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기를 빌어요. 슬픔이 웃음으로 바뀔 수 있기를 빌어요. 괴로움이 노래로 바뀔 수 있기를 빌어요. 이리하여 이 땅에서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따사로운 나라를 새롭게 지을 수 있기를 빌어요. 2016.11.2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