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말
소야 키요시 지음, 하야시 아키코 그림, 정성호 옮김 / 한림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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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9



유리 장난감을 깨뜨린 아이를 나무라지 말아요

― 유리 말

 소야 키요시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정성호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4.8.30. 7000원



  아이를 낳아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일이란, 두 어버이한테는 더없는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자라다가 어른이 되는데, 나이만 먹기에 어른이 되지 않아요. 어버이 곁에서 삶을 배우고 살림을 물려받아 철이 들면서 시나브로 어른이 되어요.


  그런데 어른이 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어른이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되려면 ‘아이를 낳’거나 ‘아이를 거두어 돌보는’ 살림을 꾸려야 해요. 어른 가운데에서도 더욱 많은 일을 하고 살림을 가꾸면서 더 넓게 깊게 사랑을 베풀 수 있을 적에 바야흐로 어버이 자리에 서요.



누리가 태어났을 때, 아빠와 엄마는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누리가 빨리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쪽)


“저 말(유리로 된 인형 말)을 마당에 풀어놓아 주고 싶어. 그러면 틀림없이 달려갈 거야. 저렇게 좁은 곳에서는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가 없잖아.” (14쪽)



  소야 키요시 님이 글을 쓰고, 하야시 아키코 님이 그림을 빚은 어린이문학 《유리 말》(한림출판사,2004)은 아이하고 어버이가 서로 어떤 사이인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이른바 ‘판타지문학’이기도 한 작품인데, 이 이야기책은 ‘어버이로서는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기쁨’을 밝히고, ‘아이로서는 사랑스러운 어버이 곁에서 즐겁게 자라는 하루’를 보여준다고 할 만해요.



잠자는 새는 날개를 퍼덕거리고 나서 ‘쮸루루’ 하고 울고는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나무에 기대고 있으니까 나무 줄기를 타고 네 목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가 쿵쿵 울려 오고 있으니, 내가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23쪽)


“안 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유리 산의 생활에서는 밤이 어두운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오두막집 안이나 바깥이나 밤에는 어두운 법이야. 오늘 밤에는 별이 잔뜩 떠 있으니까 바깥이 더 밝을지도 몰라. 자아, 빨리 시작하거라.” (51쪽)



  아이는 때때로 아프면서 자라곤 합니다. 신나게 뛰어놀다가 넘어져서 다쳐요. 감기나 고뿔에 걸리기도 하고, 더위를 먹거나 몸살을 앓기도 해요. 어른이 되어도 몸이 아프면 괴로우면서도 이윽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데, 아이들은 참말 씩씩하게 앓고 씩씩하게 나으면서 더욱 튼튼하고 싱그러운 숨결이 된다고 느껴요.


  그런데 《유리 말》에 나오는 아이는 한 가지 잘못을 저지른 뒤, 이 잘못을 말끔하게 털어놓으면 될 텐데, 그만 어머니한테 잘못을 털어놓지 않고 감춥니다. 바로 ‘유리 말 장난감을 그만 떨어뜨려서 깨뜨린’ 잘못이에요.


  어른도 곧잘 유리잔이나 유리병을 떨어뜨려서 깨뜨려요. 아이도 얼마든지 떨어뜨려서 깨뜨릴 수 있어요. 깨뜨려서 아예 박살이 나거나 망가졌으면 하는 수 없이 버려야겠지요. 그러나 고치거나 손볼 수 있으면 고치거나 손보면 돼요. 걱정할 일이 없어요. 나무라거나 탓할 일도 없고요. 나무라지 말고 찬찬히 바라보고 살피면서 새로운 장난감을 생각하면 돼요.



“이 물을 물독에 붓고 나면, 유리 산 아주머니가 말에 대해서 가르쳐 줄 거야. 물을 길은 다음에 유리 말을 찾자고 말했으니까 말이야.” (69쪽)


“자아, 큰맘 먹고 용기를 내서 뒤를 쫓아가거라.” 유리 산 아주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누리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유리 말은 이미 반짝반짝한 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리는 물독의 입구에 손을 갖다 대고 유리 말을 쫓아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78쪽)



  어린이문학 《유리 말》에 나오는 아이는 ‘쉬운 길’을 젖히고 ‘어려운 길’을 갑니다. 쉬운 길이란 어머니한테 고스란히 털어놓는 길이에요. 어려운 길이란 꽁꽁 감추며 스스로 끙끙 앓는 길이에요. 《유리 말》에 나오는 아이는 마치 꿈을 꾸듯 ‘유리 산’이라고 하는 곳에 갑니다. 온통 유리로 이루어진 멧골이라고 해요. 이곳에서 마법사 같은 아주머니를 만나고, 마법사 같은 아주머니는 아이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훤히 꿰뚫어봐요. 아이는 마법사 같은 아주머니가 시키는 일을 모두 해내야 하며, 아이는 퍽 힘들지만 대견하게 끝까지 해냅니다.


  아장걸음을 뗀 아이가 새롭게 한 걸음을 더 나아간 셈이라고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차분히 지켜보면서 ‘넌 할 수 있어. 그러니 해 봐’ 하고 북돋아 준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어른하고 어버이는 아이를 믿기 때문에 ‘아이한테 벅찬 일이 아니라, 아이가 찬찬히 오래도록 마음하고 힘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여겨서 일을 맡겨요. 아이도 어른하고 어버이를 믿기 때문에 ‘설마 못 할 일을 시키겠느냐고, 이 일을 해내며 누리는 기쁨하고 보람을 맛보라는 뜻일 테지’ 하는 마음이 되지요.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별도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누리는 그 넓고 넓은 하늘 어딘가에 있을 입구를 찾았습니다. 까마득히 앞쪽에, 검게 뻥하니 뚫린 원이 보였습니다. 누리와 유리 말은 지체 없이 검은 원을 향해 갔습니다. 누리는 검은 원을 발견했을 때부터 매우 낯익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150쪽)



  어린이문학 《유리 말》은 언뜻 읽자면 ‘꿈 같은 이야기’이거나 ‘판타지문학’으로만 여길 수 있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을 ‘어버이 자리’에서, 또 ‘아이 눈높이’에서 새롭게 바라본다면, 이 이야기책은 어버이랑 아이가 서로 믿고 아끼면서 사랑하는 삶과 살림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따사로우면서 부드럽게 들려주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지 싶어요.


  아프면서 자랍니다. 아픔을 훌훌 털어내며 일어섭니다. 노래하면서 자랍니다. 노래를 널리 퍼뜨리며 방긋 웃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살림을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아이들도 조그마한 손길로 살림을 보태고, 어른들도 야무진 손놀림으로 살림을 북돋아요. 서로 돕고 보살피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어버이가 아이한테 기쁘게 물려줄 이야기를 되새겨 봅니다. 2016.11.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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