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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 삶 ㅣ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8
홍세화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9월
평점 :
푸른책과 함께 살기 128
‘삶’을 배우며 사랑할 수 있는 청소년이 되기를
―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_삶
홍세화·이계삼·조광제·안철환·박영희·노을이·정숙영
철수와영희 펴냄, 2016.9.30. 13000원
내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하고 똑같이 살자’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는데, ‘남하고 비슷하게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가게 일꾼이 되자’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남하고 다르게 살자’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남하고 똑같이 살겠다는 마음이 없으면서, 남하고 다르게 살자는 마음도 나지 않았어요. 그저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는 나대로 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삶이 내 것이어야 한다면 내 생각도 내 것이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죠. 그렇다면 신분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 내 몸이 자유롭다고 해서 내 생각도 자유로울까요? (22쪽/홍세화)
제가 충격을 받은 건 부모님과 제 삶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우리의 현대사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미군이 폭격을 안 했더라면, 만약 할아버지가 탄 배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풀빵 장사를 안 했다면, 저는 태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53쪽/이계삼)
‘나대로 살기’란 무엇일까요? 내 어릴 적을 돌아보면, 나한테 ‘나답게 살기’를 가르치거나 들려주거나 이야기하거나 알려준 어른은 없었다고 느껴요. 둘레 어른들은 ‘학교 공부를 잘 해서 더 높은 대학교에 들어가라’는 말만 들려줄 뿐입니다. 이때에 어른들한테 여쭈어 보지요. ‘더 높은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는요?’ 그러면 어른들은 ‘돈을 더 잘 버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지.’ 하고 대꾸하고, ‘돈을 더 잘 번 다음에는요?’ 하고 다시 여쭈면 ‘좋은 여자를 만나서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지.’ 하고 대꾸하며, ‘좋은 여자를 만나서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요?’ 하고 거듭 여쭈면, ‘예끼! 그만 물어.’ 하고 알밤을 먹이곤 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어릴 적에 둘레 어른들한테 ‘앞으로 어떻게 내 삶을 지으면 즐거울까’ 같은 이야기를 묻지 않았습니다.
땅을 기름지게 하는 지렁이가 있고 결실을 돕는 곤충들도 있습니다.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잡초들도 있겠지요. 그 작은 생명들이 채소를 키우고 열매를 맺게 하지요. 사람은 그저 성심껏 옆에서 보살피면 돼요. (113쪽/안철환)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철수와영희,2016)는 길담서원이 마련한 청소년 인문학교실 가운데 ‘삶’을 놓고 나눈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입니다. 이 나라 푸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깃든 책입니다. 청소년 인문책이지요. 나는 푸름이가 아니지만 이 책을 찬찬히 읽습니다. 내 어릴 적을 떠올리고, 내가 푸름이 나이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을 되새기면서 읽습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인문 강좌’를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라는 곳에 들어간 뒤에도 인문 강좌를 들은 일이 없습니다. 1980년대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인문 강좌라는 수업이 아예 없었어요. 오직 교과서 달달 외워서 시험문제 잘 푸는 입시공부만 있었어요. 이런 학교를 열두 해 다니고서 대학교에 갔어도 따로 ‘젊은 넋을 북돋우는 인문 강좌’는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제가 들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밤새 쏘다니는 이 녀석도, 만져 보면 냄새가 하나도 안 나요. 목욕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자연의 바람, 흙, 이런 것들이 청결을 유지해 주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21쪽/안철환)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읽으면, 홍세화·이계삼·조광제·안철환·박영희·노을이·정숙영, 이렇게 일곱 어른이 일곱 가지 삶을 꾸리는 이녁 발자국을 되짚으면서 푸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삶’을 이야깃감으로 삼아서 꾸린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에서 다룬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 인문학교실에 함께한 푸름이들은 일곱 갈래 어른을 새롭게 만나서 일곱 갈래 길을 새삼스레 마주했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진짜 공부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겁니다. 그걸 알아가는 게 참된 공부이고요. (151쪽/박영희)
어린이나 푸름이가 나아갈 길은 한 갈래가 아니라고 봅니다. 일곱 갈래도 아니지요.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저마다 다른 길을 가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만 어린이가 있으면 백만 갈래 길이 있을 때에 아름답고, 이백만 푸름이가 있으면 이백만 갈래 길이 있을 때에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처럼 다 다르면서 저마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길로 스스로 씩씩하게 나아가는 즐거운 노래를 익히는 길이지 싶어요. 교과서를 외우는 일이란 시험공부이겠지요. 그러니까 우리 어른이나 푸름이나 어린이가는 ‘삶공부’와 ‘살림공부’와 ‘사랑공부’를 넉넉히 맞아들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공부도 할 수 있을 텐데, 시험공부만 하는 푸름이가 아니라, 삶도 살림도 사랑도 배울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집안일도 함께 배우고, 집살림도 함께 익히며, 마을살림이나 마을일도 나란히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너그럽고 포근한 손길을 배울 때에 비로소 ‘맑게 푸른 사람’으로 자랄 만하리라 생각해요.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해야 다른 사람과 관계도 잘 맺게 돼요. (170쪽/노을이)
청소년 인문책을 읽는 동안 나 스스로 푸름이 마음이 되어 봅니다. 나는 열서너 살이나 열예닐곱 살 푸름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붙들리던 지난날, ‘나는 나답게 살겠어’ 하는 다짐은 했으나 이 길이 막상 어떤 길이 될는지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다짐을 오늘날까지 고이 품기 때문에 나로서는 내 삶길을 닦으면서 웃는구나 싶어요.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우리 집 아이들을 먹입니다. 틈틈이 자전거를 몰아 아이들하고 골짜기나 바다나 들판으로 마실을 다닙니다. 밤에는 반딧불이나 별을 찾아서 걷고, 낮에는 풀밭과 서재도서관에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곧 내가 걷는 삶길이란 ‘남과 같을’ 까닭도 ‘남과 다를’ 일도 없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기쁜’ 길이면 된다고 느껴요. 우리 집 아이들도 이웃마을 아이들도 저마다 아이 스스로 저희를 사랑하면서 노래하는 기쁜 길을 걸을 때에 다 함께 얼크러지거나 어우러지는 사랑을 이 나라에서 이룰 만하리라 생각해요.
걸어 다니던 시절에는 세상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풍경을 느끼고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는 자연이든 인간이든 그냥 지나칩니다. (62쪽/이계삼)
중·고등학교 푸름이나 초등학교 어린이가 교과서 공부만 하지 말고,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 같은 ‘인문 강좌’를 널리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더욱 자주 ‘교사 아닌 어른’을, ‘우리 사회에서 저마다 새로운 길을 닦는 즐거운 살림꾼 어른’을 모셔서 조촐하게 ‘이야기 교실’을 꾸릴 수 있기를 바라요.
집에서 살림을 짓는 어른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호미를 쥐어 밭을 매는 할매를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낚는 어른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나무를 깎아 집을 짓는 할배를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저잣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매를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시골버스를 모는 아재를 모셔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빌어요.
어린이와 푸름이 모두 꿈을 따스히 품고서 사랑으로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그냥 사는 하루’가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짓는 하루’가 되어서, 언제나 스스로 기운찬 웃음으로 ‘삶을 짓는 사람’으로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2016.9.2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청소년인문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