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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공주 ㅣ 난 책읽기가 좋아
다이애나 콜즈 글, 로스 아스키스 그림, 공경희 옮김 / 비룡소 / 2002년 4월
평점 :
어린이책 읽는 삶 154
똑똑한 공주님은 어떤 ‘세 가지 꿈’을 꾸었나
― 영리한 공주
다이애나 콜즈 글
로스 아스키스 그림
공경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2.4.24. 7000원
‘소원을 이루어 주는 반지’가 있다면, 이 ‘소원 반지’가 세 가지 꿈을 이루어 준다면, 우리는 어떤 꿈을 빌 만할까요? 우리는 세 가지 꿈으로 무엇을 빌면서 우리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요? 어떤 세 가지 꿈을 이루면서 우리 살림과 사랑을 즐겁거나 신나게 북돋울 수 있을까요?
왕은 평생 보물을 모으며 살았고, 이 세상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것 또한 보물이었습니다 … 왕은 보석을 세고 지키는 것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어서 딸과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놀 시간이 없었습니다. (7, 8쪽)
아레트 공주는 말타기 수업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말을 타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숲 속을 달리는 것이 좋았지요. 또 무용 수업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경쾌한 음악이 나올 때면 더욱 좋았지요. 하지만 매력적인 대화법 시간은 따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9쪽)
다이애나 콜즈 님이 쓰고 로스 아스키스 님이 그린 어린이문학 《영리한 공주》(비룡소,2002)에는 ‘똑똑한 공주’가 나옵니다. 이 똑똑한 공주는 머리가 좋은 공주일 수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을 깊고 넓게 할 줄 아는 공주예요. 이 똑똑한 공주는 이것저것 많이 알거나 잘 아는 공주일 수 있지만, 이보다는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생각을 넉넉하게 할 줄 아는 공주예요.
그런데 말이지요, 어머니(여왕)가 일찍 돌아가신 뒤 아버지(임금)만 남았는데, 아버지는 이 아이(공주)를 돌보거나 사랑하거나 지켜보는 데에는 마음을 하나도 안 썼대요. 아버지는 그저 보석하고 돈만 바라보았다는군요. 게다가 가시내는 가르칠 까닭이 없다고 여겼다는군요. 가시내는 좋은 사내(왕자)를 만나도록 해서 ‘더 많은 보석하고 돈’을 선물로 받을 수 있도록 시집을 보내면 된다고 여겼대요.
공주는 이러한 집안에서 어떻게 자라야 할까요? 공주는 아무것도 못 배우는 채 커서 시집만 ‘잘 가면(?)’ 될까요?
‘그래! 세 가지 소원을 빌 수 있잖아. 그중 한 가지만 써야지.’ 공주는 붓과 물감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반지를 문질렀습니다. 그러자 무지개 빛깔의 물감이 생겼습니다. 아레트는 행복한 마음으로 사람과 용, 성채, 배, 나무와 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지요. (33쪽)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상쾌했습니다. 일주일 동안이나 지하실에 처박혀 있었으니까요.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서 목이 마르면 시냇물을 마셨고, 사과를 먹고는 사과 씨앗을 땅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피곤해지면 햇볕을 쪼이며 쉬었지요. (42쪽)
《영리한 공주》에 나오는 공주는 아기 적부터 곁에서 보살피는 유모 할머니가 도와주었기에 ‘아버지(임금) 모르게’ 이것저것 배우고 익힙니다. 책으로도 배우지만 말타기도 배워요. 머리로도 즐겁게 생각을 살찌우고 몸으로도 튼튼하게 팔다리를 가꿉니다. 그렇지만 공주는 임금한테 보석과 돈을 잔뜩 주겠다고 하는 사윗감(알고 보면 사윗감으로 몸을 숨긴 마법사)한테 팔리고 맙니다.
딱한 노릇이지요. 그러나 공주는 이 딱한 일에도 기운이 꺾이지 않아요. 공주는 앞으로 제 길을 스스로 닦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공주를 보석과 돈으로 가로챈 마법사가 공주를 지하감옥에 가두었어도 공주는 늘 즐겁고 씩씩한 마음입니다. 지하감옥에서 공주는 ‘세 가지 소원’ 가운데 하나를 쓰기로 해요. 자, 공주는 어떤 꿈을 빌까요? 지하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바보스러운 아버지(임금)한테 앙갚음을? 아니면 마법사 큰코를 다치게?
아레트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자 슬슬 졸렸습니다. 피곤한 하루였거든요.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누더기 천으로 꼬마 뱀에게 포근한 집을 만들어 주었지요. (50쪽)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를 짓는 거야. 하지만 종이도 펜도 잉크도 없는데 어떡하지? 소원도 딱 한 가지만 남았고…….’ (72쪽)
똑똑한 공주는 이것도 저것도 바라지 않아요. 공주가 바란 첫 꿈은 ‘붓과 물감’이에요. 공주는 지하감옥을 온통 아름다운 그림으로 바꾸어 놓아요.
어느 모로 보면 터무니없는 공주라 할 테지만, 공주는 무척 슬기로운 마음이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가 오늘 있는 이곳’을 아름답게 바꿀 줄 아는 슬기를 보여주었거든요.
가장 좋은 터전에 있기에 가장 좋은 삶이 되지 않아요. 가장 좋은 터전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즐겁게 가꾸는 터전이에요.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한 곳이어도, 바로 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한 곳에 내 사랑을 듬뿍 쏟아서 아름답게 바꾸어 놓을 수 있어요.
똑똑한 공주는 다음 꿈으로 실하고 바늘을 이야기해요. 옷을 짓기로 합니다. ‘공주가 옷을 짓는다니?’ 하면서 갸우뚱할 분이 있을 테지만, 공주는 어릴 적에 유모 할머니 곁에서 책과 말타기와 여러 학문뿐 아니라 바느질이며 살림짓기를 골고루 배웠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배웠다고 할까요.
자, 그러면 이 똑똑한 공주는 어떤 셋째 꿈을 빌까요? 붓과 물감으로 지하감옥을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어 놓고, 바늘과 실로 손수 옷을 지은 똑똑한 공주가 바라는 셋째 꿈은 무엇이 될까요?
꼬마 뱀이 물었습니다.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물론이지. 이제 암말이 널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함께 가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앰플 아주머니와 할머니는 제가 여행하는 동안 이곳을 다스려 주세요, 네?” 공주는 두 사람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두 사람은 입 맞춰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우선 모두를 행복하게 할 훌륭한 법부터 정해야겠어요.” 아레트가 말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백성들과 함께 의논하면 곧 좋은 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예요.” 앰플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94∼95쪽)
아이들은 이 땅에 태어날 적에 돈을 한 푼조차 안 가지고 옵니다. 아이들은 이 땅에 태어날 적에 집이건 옷이건 밥이건 아무것도 안 가지오 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이 땅에 ‘고요하면서 맑은 넋’으로 태어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요. 이러면서 스스로 제 길을 닦지요.
학교를 오래 다니기에 똑똑해지지 않아요. 책을 많이 읽기에 똑똑해지지 않아요. 영화를 많이 보거나 여행을 두루 다니기에 똑똑해지지 않아요. 아이들은 저희 마음속에 사랑이 고요히 깃든 줄 알 적에 똑똑하게 자라지 싶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마음속에 고요히 깃든 사랑을 찬찬히 깨워서 보살피는 손길을 배울 적에 비로소 똑똑하게 자라지 싶어요.
누구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를 비롯해서 동무랑 이웃 모두 즐겁게 아끼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는 마음일 적에 똑똑하게 크는 아이라고 느낍니다. 어른도 그렇지요. 누구를 미워하거나 싫어할 적에는 어떤 살림이 될까요? 즐겁게 노래하면서 일할 적에 즐겁게 노래하는 살림을 가꾸지요. 기쁘게 웃으면서 일할 적에 기쁘게 웃는 삶을 가꾸어요.
세 가지 꿈을 슬기롭게 품는 길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내가 그릴 꿈과 아이들이 그릴 꿈을 천천히 헤아려 봅니다. 다 같이 그릴 즐거우면서 멋지고 사랑스러운 꿈을 하나하나 새롭게 마음에 담아 봅니다. 2016.9.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