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을 쳤다 문학의전당 시인선 225
김양아 지음 / 문학의전당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말 249

 


지긋지긋한 뒷북질도 애틋한 이야기가 되어
― 뒷북을 쳤다
 김양아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6.5.23. 9000원

 

  뒤늦게 깨닫는 일이 잦습니다. 처음부터 깨달으면 좋으련만 나는 자꾸 뒷북을 치듯이 뒤늦게 깨닫곤 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내 뒷북치기를 바라보며 나 스스로 깎아내리곤 했어요. 요즈음에는 이 생각을 좀 바꾸기로 합니다. 어떻게 바꾸느냐 하면, ‘뒷북을 친대서 나쁘지 않아. 나를 스스로 미워하지 말아.’ 하고 생각해요.

 

  그리고 ‘남보다 늦게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깨닫는 셈이지?’ 하고 달래요. 이러면서 ‘처음부터 깨닫지 못할 뿐, 나중에 꼭 깨달으니까 더 느긋하게 살림을 꾸리자고 다짐하면 되지.’ 하고 마음을 다스려요. 어떤 일을 맞이하든 곧바로 달려들기보다는 하루나 이틀, 때로는 사흘이나 나흘쯤 묵혀 보자고 여겨요.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뒷북’이어도 나 스스로 제대로 깨닫기까지 기다리기로 해요.

 

갓 나온 따끈한 두부가 입맛을 당긴다 / 두부는 말랑하게 살아 있다 // … // 오늘도 내 앞에 덩그랗게 놓인 과제는 / 선택과 결정을 요구한다 / 넓적하게 잘라 지지거나 조려야 할지 / 작게 썰어 찌개에 넣고 끓일지 (두부 한 모)

 

그토록 태연하던 그가 뒷북을 쳤다 / 제 몸에 보이지 않게 실금을 그으며 / 어느 날의 반란을 키우고 있었다 / 그의 능청스러운 음모에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동안 / 이 지긋지긋한 무게를 언제 던져버릴까 궁리하고 있었다 (뒷북)

 

  김양아 님 시집 《뒷북을 쳤다》(문학의전당,2016)를 읽습니다. 이 시집을 쓴 김양아 님은 첫 시집을 냈다고 합니다. 첫 시집이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어느 모로 보면 느즈막하게 내놓은 시집일 테지만 아직 시집을 한 권도 못 낸 시인도 많아요. 아니, 굳이 시집을 내지 않아도 즐겁게 시를 쓰고 삶을 노래하는 사람도 많지요.


  시집을 내기에 시인이 아니라, 삶을 노래하고 살림을 노래로 지을 수 있을 적에 시인이겠지요. 《뒷북을 쳤다》를 써낸 시인은 이녁한테 무엇이 뒷북이었나 하고 되새기면서 ‘뒷북’도 ‘앞북’도 ‘옆북’도 아닌 오롯이 누리면서 지을 삶을 조곤조곤 밝히려 합니다.

 

그곳의 돌담은 얼기설기 / 바람에게 길을 내어주고 있다 / 이곳과 저곳을 구분하는 경계일 뿐 /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 키 낮은 돌담 사이로 파도 소리가 드나들었다 (돌담)

 

둥글게 둘러앉아 / 단물 가득한 수박 한 덩이 베어 먹고 / 평상에 누우면 쏟아지던 밤하늘 / 머리맡 여름 별자리 가물거린다 (먼 여름밤)

 

  지긋지긋한 뒷북질은 얼마든지 떨칠 수 있고, 얼마든지 붙안은 채 살 수 있어요. 비록 늦게 깨닫고서 뒷북을 친다지만 스스로 즐겁게 짓는 살림이라면 언제나 마음껏 웃을 수 있어요.


  느긋하게 살며 돌담을 바라봅니다. 돌담 곁에 서며 물결 소리를 듣습니다. 돌담 곁을 떠나 아파트에 깃들면서도 바닷가 돌담에서 들은 물결 소리를 돌아봅니다. 아득한 옛날 나무 그늘이 시원한 평상에서 수박을 베어물고 드러눕던 일을 돌아봅니다. 어제는 아이였고 오늘은 어버이로 지내는 삶을 돌아봅니다. 나를 낳아 돌본 어버이도 틀림없이 먼 옛날에는 아이였을 테지 하고 생각하면서 빙그레 웃음을 짓습니다.

 


면접용 정장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서는 길, / 뿌옇게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에도 / 환하게 웃고 있는 너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로 들어서는 뒷모습을 / 묵묵히 지켜보는 난감한 계절 (미완의 봄)

남쪽지방의 군락지가 고향인 후박나무 / 아무리 둘러보아도 혼자뿐이라고 / 타지에서 맘 붙일 곳 없다고 또 말을 걸어온다 (후박나무를 받아 적다)

  짐을 무겁게 짊어지고 서울 한복판을 걷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왜 어리석게 등허리를 힘들게 하지? 그냥 택시를 타도 되지 않니? 택시삯이 얼마나 한다고 택시를 못 타지? 돈이 없어서 못 탈 수 있지만, 어쩌면 나 스스로 ‘돈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몸을 더 괴롭히지는 않니?


  뒷북질을 하는 까닭은 오늘 이곳에 선 나를 더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하고 느낍니다. 나중에 돈을 넉넉히 벌고서 택시를 타자는 생각이 아니라, 짐이 많아 무거운 바로 오늘 이곳에서 택시를 타자고 생각할 수 있어야겠다고 느낍니다. ‘돈이 없어서 못 한다’가 아니라 ‘돈을 쓸 데에는 즐겁게 쓰자’는 생각으로 거듭날 줄 알 때에 비로소 뒷북질을 스스로 끊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구불구불 벼랑 위 산길 / 덜컹거리며 달리던 버스 종점엔 / 잣나무 숲에 안겨 있는 마을이 있었다 // 설악면 그 작은 동네의 방 한 칸 / 나는 딴 세상에 세 들었다 / 부임 첫날 안개 피어오르는 개울로 나가 얼굴을 씻을 때 / 맑고 청정한 개울물 소리에 이가 시렸다 / 그 후로 새벽은 내게 설렘이라는 말로 다가왔다 // 시간은 느리게 개울을 건너 다녔다 / 여물기 시작한 초가을이 몰려온 바람에 넘어졌다 / 종일 쓰러진 벼를 세우던 아이들 / 풀과 이삭도 구별 못하는 / 촌스러운 새내기 담임마저 소매를 걷어붙였다 // 설악이 건네준 커다란 상자를 안고 / 간신히 버스에 올랐다 / 밤톨 같은 아이들이 주워 담아준 / 밤 한 움큼씩 쪄먹으며 지낸 그해 겨울 / 문득 자욱한 눈송이로 내려온다 (설악雪岳)

 

  시집 《뒷북을 쳤다》에 나오는 후박나무 이야기를 새삼스레 다시 읽어 봅니다. 우리 집 마당에 후박나무가 있거든요. 마을 어르신들은 마당에 그늘을 많이 드리우니 이 후박나무를 베라고들 하지만, 우리 집은 이 후박나무를 살뜰히 아낍니다. 올여름 우리 집은 이 후박나무 그늘을 시원하게 누렸어요. 올해는 유난히 끔찍한 불볕이었다고 하지만 마당에 우뚝 선 후박나무는 아주 고마이 그늘을 베풀어 주었어요. 처음에 우리 집 후박나무를 베라 하신 어르신들도 올여름만큼은 이 후박나무 그늘이 참 좋다고 말씀하셔요.


  어쩌면 이런 몸짓이나 이야기도 뒷북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즐거운 뒷북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리석은 몸짓이었다 할는지 모르나, 하루가 흐르고 한 해가 흐르며 몇 날 몇 해가 지나고 되새기면 ‘그때 그 모습은 뒷북질’이지 않았다고 여길 수 있어요.


  첫 시집을 낸 김양아 님이 ‘교사로 첫 부임’을 하던 해 이야기를 적바림한 싯말을 아주 천천히 꾹꾹 새겨서 읽으며 다시금 뒷북질을 떠올립니다. 도시에서만 살다가 강원도 깊은 두멧자락 아이들을 처음 만나서 ‘시골스러운 도시내기 교사’로 지냈다고 말씀하는데, 이 뒷북질 같은 아스라한 옛이야기는 오늘에 이르러 살며시 웃음을 짓도록 북돋우는 재미난 삶자국, ‘삶 발자국’이 되어 줍니다.


  밤톨 같은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주워 준 그 옛날 그 밤알은 얼마나 맛났을까요? 아득한 그때 그 모습을 가만히 마음에 그리기만 해도 애틋해서 웃음이랑 눈물이 함께 피어나겠지요. 2016.8.3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삶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