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 잊혀지는 신앙과 사라진 신들의 역사 ㅣ 지도에서 사라진 시리즈
도현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8월
평점 :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67
오래된 나무를 섬기던 리투아니아 사람들
―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도현신 글
서해문집 펴냄, 2016.8.13. 13900원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는 수메르나 바빌론에서 이루어진 종교, 또 미르라교나 조로아스터교, 만주족이나 오나족이 품은 종교, 여기에 핀란드나 몽골 옛 믿음을 두루 살피는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서해문집,2016)입니다. 이 책은 ‘지도에서 사라진’이라는 대목에서 여러 종교를 살핍니다. 오늘날 같은 ‘나라’를 이룬 사회 얼거리에서 설 자리를 잃거나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아 버린 ‘오랜 믿음’이 무엇인가를 다룹니다.
(수메르 신화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대신해 힘든 노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19쪽)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라 하더라도 지도에서만 사라졌을 뿐, 이러한 종교가 무엇을 바탕으로 생겨났고 어떠한 생각을 담으며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 스몄는가 하는 대목은 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수메르 옛이야기뿐 아니라 여러 ‘오랜 믿음’에서 흔히 나오기를 ‘신이 사람을 지은 까닭’은 ‘종(노예)으로 부려서 일을 시키려는 뜻’이었다고 해요.
사람이 무슨 ‘종’인가 하고 되물을 만할 텐데, 어느 모로 보면 오늘날 우리 모습도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신을 섬기는 종’과 같았다면, 오늘날에는 ‘돈(자본주의)을 섬기는 종’과 같거든요. 돈 때문에 신분이나 계급이 갈리고, 돈 때문에 고단하거나 힘겨운 살림이어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으로 예배당을 어마어마하게 올리고, 돈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짓도 곳곳에서 일어나요.
물리적 힘이 아니라 음악을 사용해 고비를 넘기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마치 마법 같다. 실제로 고대인들은 신의 경지에 이른 최고의 음악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동물과 식물을 매료시키며 날씨마저 조종한다고 믿었다. (33쪽)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아니어도 ‘노래’는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달래거나 포근히 감싸 준다고 느낍니다. 풀이나 나무한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면 참말로 풀이나 나무도 잘 자란다고 과학 연구로도 나와요. 시끄러운 소리를 늘 들어야 하는 풀이나 나무는 잘 자라지 못할 뿐 아니라 일찍 시들어 죽기까지 한다지요. 그러니 아주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지어서 부르거나 들려주는 노래는 ‘사람 마음을 움직일’ 뿐 아니라 ‘신까지 움직일’ 만하리라 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물과 흙과 불은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쳤으며,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물에 빠뜨리거나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지 못하도록 했다. 시체로 인해 자연이 더럽혀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58쪽)
기독교 선교사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 제국도 기독교를 믿었으니 당신들도 기독교를 믿으면 로마와 친구가 되어 뛰어난 문명이 주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119쪽)
한겨레한테는 어떤 오랜 믿음이 있을까요? 한겨레한테도 마을마다 집집마다 오랜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오랜 믿음은 조선 사회 유교를 지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몹시 짓밟힙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이 퍼지면서 아예 뿌리까지 뽑히고요. 서낭도 장승도 지킴이도 모두 자취를 감추어요. 조로아스터교는 물과 흙과 불은 거룩하다고 가르쳤다는데, 종교라는 이름이나 옷을 입지 않은 수많은 겨레 수많은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물도 흙도 불도 고이 아끼고 섬겼어요. 비를 섬기고 땅을 섬기며 하늘과 해를 섬겼어요. 종교라기보다는 ‘숲을 가꾸고 숲에서 살림을 지으며 숲에서 옷밥집을 얻는 동안’ 물이나 흙이나 불은 참말로 고이 아끼면서 섬길 수밖에 없지요.
리투아니아인들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처럼 신전을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깊은 숲속에 들어가 가장 크고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 한 그루를 골라서 신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성스러운 도구로 삼았다. (175쪽)
아즈텍 신앙의 사제들은 지금 인류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미 네 번이나 멸망했다가 다시 재생되었으며, 현재 다섯 번째 세상도 머지않아 멸망하고 여섯 번째 세상이 새로 들어선다고 믿었다. (186쪽)
리투아니아사람은 ‘오래된 나무’를 거룩히 여겼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한겨레도 옛날부터 오래된 나무를 거룩히 여겼습니다. 마을마다 ‘마을나무’가 있어요. 마을에는 ‘숲정이’라고 하는 자리를 알뜰히 돌보았습니다.
아마 인도네시아에서도 베트남에서도 버마에서도 필리핀에서도 ‘오래된 나무’ 한 그루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거룩한 숨결이 되어 살림을 지키거나 감싸 주는 구실을 했지 싶어요. 높은 봉우리도, 커다란 바위도, 우람한 골짜기와 폭포와 냇물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저마다 우리를 돌보거나 보듬는 숨결이라고 여겼지 싶어요.
옛 사람들은 사람의 말에 힘이 담겨 있다는 이른바 언령言靈 신앙을 믿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도 그렇다. (238쪽)
테마우켈은 기본적으로 하늘의 신이지만, 언제든지 땅 위와 지하세계로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는 인간들에게 자신이 내린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엄격하게 명령했다. (289쪽)
도현신 님이 쓴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만 수많은 종교를 살피면서 ‘종교라는 이름’에 깃든 오랜 살림과 이야기를 짚어 봅니다. 종교라는 이름을 넘어서 오랜 옛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지으면서 마음자리를 정갈히 다스리도록 이끌던 넋이란 무엇인가를 건드리려 합니다.
다툼이나 싸움으로 일삼는 삶이 아닌, 스스로 즐겁게 누리려는 삶을 꿈꾸면서 조그맣게 믿음을 이루어요. 평화로우면서 사랑스러운 살림을 바라면서 이 바람을 하나둘 엮어 자그맣게 믿음이 태어나요.
사제나 예배당이 없이 얼마든지 아름답게 어깨동무를 하고 이야기를 누리던 옛사람들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책이나 경전이 아니어도 서로서로 마음으로 아끼고 섬기던 사람들이 빚은 고운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문득 돌아보면 ‘지도에서 사라진’ 것은 ‘종교’일는지 모르나,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름다움과 꿈과 사랑이 새롭게 피어나면서 흐르리라 봅니다. 2016.8.2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