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플라크, 스물세 번의 노크 - 어느 예술가 부부의 아주 특별한 런던 산책
송정임.김종관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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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63



프레드 머큐리가 살던 집 앞을 서성이면서

― 블루 플라크, 스물세 번의 노크

 송정임·김종관 글

 송정임 그림

 뿌리와이파리 펴냄, 2015.11.20. 15000원



  영국 런던에는 ‘파란 이름표(blue plaque)’가 붙은 집이 무척 많다고 합니다. 파란 이름표는 아무 집에나 붙지 않지만 영국 런던에서 살거나 지냈던 이들이 ‘머문 집’에 붙는다고 해요. 사람들한테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보람이나 사랑이나 웃음이나 눈물을 자아낸 어느 한 사람이 ‘머문 집’을 기리면서, 그 집에 깃들었던 고요하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넋을 떠올리도록 한답니다.


  어떤 이는 어느 집에서 나고 자랐을 수 있어요. 어떤 이는 어느 집에서 몇 달이나 몇 주만 머물렀을 수 있어요. 이제 그 집에는 그 어떤 이하고 아무것도 안 얽히는 사람이 살 수 있지만, 기나긴 나날이 흐르면서 우리가 저마다 남기는 발자국을 찬찬히 되돌아보도록 이끌려는 뜻에서 ‘파란 이름표’를 붙인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의 결정에 스스로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용감했으니까. 진실이었으니까. 사랑 때문에 가슴이 두근대고 즐거워서 고통이나 근심 따위는 그저 단어일 뿐 자신들은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33쪽)


한 시대가 강요하는 관습과 지배논리에 대한 랭보의 냉소와 반항은 펑크정신의 뿌리가 되었고, 이는 비단 펑크의 대모라 불리는 패티 스미스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랭보라 불렀고 패티 스미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엇던 도어스의 짐 모리슨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67쪽)



  송정임·김종관 두 분이 함께 글을 쓰고, 송정임 님이 따로 그림을 그려서 빚은 《블루 플라크, 스물세 번의 노크》(뿌리와이파리,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을 함께 쓴 두 사람은 가시버시입니다. 두 사람은 영국에서 노래도 그림도 삶도 사랑도 새롭게 배우면서 지내는 동안 바지런히 나들이를 다녔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사는 집에서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니는 나들이였고, 이 골목 저 골목 조용히 거닐면서 생각에 잠기거나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해요.


  《블루 플라크, 스물세 번의 노크》라는 책은 두 사람이 영국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골목에서 마주친 ‘스물세 가지 파란 이름표’하고 얽힌 발걸음을 들려줍니다. 스물세 군데 집을 골목에서 만났고, 스물세 군데 집을 거친 스물세 사람하고 얽힌 발자취를 되새깁니다.



그는 그 이후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내었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끊임없이 창조했고 어떠한 복종도 없는 자유인으로 살아갔다. (151쪽)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연일 장사진을 이루는 셜록 홈스 뮤지엄과는 대조적으로 환자가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던 그때처럼 지금도 이 집 주변은 한산하기만 하다. 그저 현관 입구의 벽에 ‘아서 코난 도일, 여기서 일하고 글을 썼다’는 내용의 녹색 플라크만이 쓸쓸히 붙어 있다. (191쪽)



  ‘파란 이름표’는 퍽 작다고 합니다. 길을 가다가 쉬 지나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이름표를 찾아보려고 눈여겨보아도 못 볼 수 있다고 해요. 담쟁이덩굴이라든지 나무에 가릴 수 있다고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좀 엉성하게 붙인 이름표일 텐데, 이렇게 붙인 데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 싶어요. 무엇보다도 ‘지난날 살던 사람’보다 ‘오늘 사는 사람’을 헤아리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며 새롭게 살림을 짓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난날 이곳에서 살림을 지은 사람들 발자취를 떠올리거나 기릴 수 없어요. 이른바 ‘문화 유적지’는 ‘담당 공무원’이 있어야 지킬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을에서 살며 마을을 돌보는 여느 사람들 손길이 바로 ‘옛사람 발자취’를 고이 지켜 줄 만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지난날 대단했던 누군가 이 집에서 살았어도,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누군가 대단하게 이야기를 지을 수 있어요. 앞으로 이곳에서 다시금 새롭게 누군가 태어나면서 아름다운 삶을 노래할 수 있을 테고요. 이러면서도 오늘 이곳을 일구거나 짓거나 빛낸 사람들이 흘린 땀방울하고 웃음을 늘 마음으로 돌아보자는 뜻으로 조그맣게 파란 이름표를 붙이지 싶습니다.



이 집에서 제임스 배리가 《피터 팬》을 썼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개를 데리고 집에서 가까운 켄싱턴 가든으로 산책을 다녔다. 그리고 피터 팬 이야기의 영감이 되어 준 이웃집 데이비스 부인의 아이들을 켄싱턴 가든에서 만났다. (251쪽)



  기념관이나 전시관을 세워도 나쁘지 않습니다. 박물관이나 도서관까지 지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그마한 이름표 하나로 고운 넋을 기릴 수 있도록 해 주어도 좋아요. 마을사람으로서 마을길을 걷다가 ‘내 이웃집’에 붙은 파란 이름표를 문득 알아채고는 ‘아, 이 집에서 이런 사람이 이런 일을 하기도 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역사책에 적히는 역사로 ‘훌륭한 사람 이름을 외우는’ 몸짓이 아니라, 날마다 수수하게 살면서 늘 내 곁에 감도는 즐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예전에 어떤 사람이 즐겁게 걷던 길입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예전에 어떤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걷던 길입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예전에 어떤 사람이 노래하고 춤추며 걷던 길입니다. 우리가 걷던 이 길은 예전에 어떤 사람이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픈 채 걷던 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집에서 죽었다. 프레디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죽음이나 그의 병에 대한 어떤 말도 입에 담지 않았고 오로지 음악 얘기밖에 하지 않았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보드카 몇 잔을 주욱 들이키고는 녹음실로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298쪽)



  오늘 이 길을 새롭게 걸으면서, 또 오늘 우리 보금자리에서 저마다 새롭게 살림을 지으면서, 파란 하늘 같은 바람을 고요히 마십니다. 먼 옛날 흐르던 바람이 오늘에도 흐를 수 있고, 몇 해 앞서 이웃집에서 흐르던 바람이 지구별을 골골샅샅 돌다가 오늘 내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갈 수 있어요.


  내가 걷는 길을 이 다음에 누가 또 걸을는지 몰라요. 우리 아이들이 걸을 수 있고, 낯선 이웃이 걸을 수 있어요. 어쩌면 내가 걷는 이 길은 내가 잘 모르는 이슬떨이 한 분이 씩씩하게 갈고닦아 놓은 길일 수 있습니다. 쉰 해나 백 해 앞서뿐 아니라, 오백 해나 오천 해 앞서 누군가 웃음지으며 걷던 길일 수 있어요.


  파란 이름표가 붙은 집이건 아무 이름표가 붙지 않은 집이건 저마다 발자취가 깃듭니다. 앞으로 어느 집은 푸른 이름표라든지 노란 이름표라든지 빨간 이름표라든지 하얀 이름표가 붙을 수 있어요. 아무 이름표가 없어도 마음으로 느끼거나 읽을 이야기가 서릴 테고요. 2016.8.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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